여전히 붉은 장미처럼 고운 엄마가 낯선 눈동자를 반짝이며 서있었다.
엄마가 오늘 또 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두 시간 거리를 기꺼이 한 숨에 달려와 놓고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출산 한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난 딸이 고생한다며 혼자서는 절대 사먹지 못하는 피자 한 판을 사오는 길이었다. 그걸 한조각도 먹지 못하고 엄마는 쫓겨나듯 다시 집을 나섰다. 네가 낳은 아이가 아들이었어야 했다, 그래야 삼대독자 아들을 둔 시부모님이 좋아하셨을 것이다, 라는 말이 화근이 되었다. 평소답지 않게 대거리를 해댄 딸도 적잖이 당황을 했다.
엄마는 스무 네 살에 선을 봐 결혼을 했다. 엄마의 미모가 빼어나 결혼 후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아빠의 작업실에는 지인들이 구경하듯 들렀다고 했다. 소소한 질투의 시선도 받은 거 같다고 했다. 결혼생활의 즐거움이 미모와 비례했으면 좋았을 텐데. 환갑이 막 지난 엄마는 여전히 고운 구석이 남아있지만 그걸 발견할 때면 가슴 한편이 칼에 베인 것처럼 시려왔다. 어딘지 모르게 조화롭지 못하다며 답답해하기도 했다. 한 겨울 앙상한 가시덤불에 피는 붉은 장미 같았다. 엄마의 피고 지는 일은 지나치게 한결같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던 것이다.
결혼 후 첫아이를 임신한 엄마의 배를 보고 시어머니는 아들 배라고 동네방네 자랑을 하셨다고 한다. 당시에는 병원에서 성별을 알려주지 않았고, 출산 직후 우렁찬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아이가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세상 처음 느껴보는 산고의 고통 뒤에 만난 딸이기에, 자신과 같은 고통을 느껴야 하는 아이이기에 눈물의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 애잔함도 잠시, 엄마는 아들배를 가지고 딸을 낳았다며 날선 환영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 열 달, 공들인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부정된 수고가 된 그날을 그 마음을 오래도록 품고 계셨다. 그리고 그 상처를 오늘, 딸도 고스란히 느끼게 된 것이다.
난생처음으로 출산을 마친 이를 마주했던 기억이 내게 사진처럼 남아있다. 그 연하디 연한 모습이 잊혀 지지 않는 것이다. 차마 그 앞에서 수고했다, 라는 말조차 내뱉지 못했었다. 그저 온 마음과 눈빛으로 존경의 마음을 담아 보내며, 신께 그녀와 갓난아이의 안위를 위한 기도문만을 되뇌었을 뿐이었다. 세상에서 인간이 가장 연약해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게 여성이라면 나는 출산 후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경험과 고통을 겪었다. 몸을 추스르기도 힘든 가운데 뱃속에서 갓 나온 아이를 사나운 맹수처럼 보듬는 것이다. 순두부 같은 몸이 바스러지는 줄도 모르고 자식을 기꺼이 품에 안아 당기는 어리석은 모성인 것이다.
엄마가 나간 자리를 보며 딸은 소리 내어 울었다. 내가 낳은 아이가 아들이라면... 시부모님께 예쁨 받을 방법... 따위의 생각들을 재빨리 쓸어 담았다. 순식간에 흩어지는 유리파편 같은 날카로운 상념들을 우걱우걱 삼켜버렸다. 눈앞에 보이는 아이가 더 소중했다. 소리에도 다칠까 울음을 참지 못해 바들거리는 입마저 두 손으로 틀어막아버린 것이었다.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딸은 엄마의 허전해 보이는 옆자리가 늘 마음에 걸렸다.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신 아빠를 보며 엄마 또한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더 컸을 수도 있겠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아이는 삶과 죽음의 특별한 경계가 없음을 보았다. 오히려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49재가 지나기도 전에 자신의 방을 정리해 엄마와 한 방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다. 친구처럼 때론 남편 역할을 하며 엄마의 옆에 있으려 한 것이지만 자식은 그저 자식일 뿐이라는 말은 아이 낳고 한참을 기른 후에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딸은 늘 불안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식구 중 가장 먼저 씩씩하게 일상성을 회복한 엄마가 가장 먼저 몸의 이곳저곳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무려 3번의 수술이 그것을 증명해주었다. 그 즈음 유명 시사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정폭력 재연을 보며 심하게 분노를 하셨던 것도 있다. 결혼생활에 대한 어려움은 알고 있었지만 늘 온건하게 대응하셨던 엄마였다. 응집된 분노는 뜨거웠고, 그 기억을 품고 살아가고 있기에 분노가 여전히 엄마에게는 현재진행형이었던 것이다.
결혼을 하며 분가를 하게 된 딸은 혼자가 될 엄마가 신경이 쓰였다. 여전히 붉은 장미 같은 엄마라고, 이제는 자신을 위한 미래를 설계해보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안심을 시켜 보아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부부가 될 딸은 신혼이 지나면 엄마와 꼭 함께 살겠다는 비장한 약속을 기어코 받아 놓았다. 새로운 룸메이트와 시작된 신혼은 고요한 호수처럼 평화로웠다. 다만 가만히 그것을 누리를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얼마 뒤, 딸은 장보기를 핑계로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못 이기는 척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줄 장을 하나 가득 담아왔다. 통통한 알뜰 소시지에 입맛을 돋울 새콤한 케찹, 가시를 뺀 친절한 삼치, 삼삼하게 무쳐질 시금치와 들기름에 볶아질 고소한 감자까지. 썰렁했던 식탁이 향긋하고 짭조름한 냄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졌다. 사춘기의 어느 때처럼, 보통의 엄마와 딸이 되어 맛난 음식이 화해의 유혹처럼 펼쳐졌다. 첫 한 술을 뜨니 눈물인지 밥인지 모르게 목이 메여왔다. 꿀꺽 삼키는 소리는 미안해, 괜찮아, 소리로 번갈아가며 들리는 듯 했다.
만족스러운 한 상을 배부르게 먹었다. 두둑해진 배를 만지니 순간이 더없이 평화로웠다. 이제 오십일이 되어가는 아이는 제법 눈을 마주치고 방긋이 잘도 웃는다. 어색한 분위기의 집안이 덕분에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잘 먹어야 아이도 건강하다며, 엄마는 딸에 대한 염려로 미안한 마음을 둥글려 담아내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할 딸이 아니었다.
엄마와 딸은 둥그런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하하호호 웃으며 방실방실 웃는 아이를 목욕 했다. 아이의 부드러운 몸을 따라 슬쩍 엄마의 표정을 살핀다. 엄마의 웃는 모습을 보니 딸은 마음 한편이 시큰해진다.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
“엄마 수건 좀 가져다주세요. 거실 소파 위에 있어요.”
“...”
“엄마 수건이요 수건. 소파 위에 있다고요.”
“......”
여전히 붉은 장미처럼 고운 엄마가 낯선 눈동자를 반짝이며 서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질문을 온 몸으로 되묻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영원처럼 느껴질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 순간은 천국 같았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한 적이 있다. 신이 기도를 잃어버렸는가. 엄마를 응시하는 딸은 맹추가 되어 멍하니 흐릿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