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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보미 쬬이마마 Aug 26. 2023

나의 흑역사, 엄마의 불청객

치매를 환대하는 방법(1)

"폐 끼치고 다른 사람이 내게 기댈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건 정말 연습이 필요한 일"

_ 에이징 솔로, 김희경 지음








   8월 무더위의 한복판. 에어컨 틀어놓은 실내를 벗어나면 금방이라도 줄줄 땀이 흐르는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아침 9시 55분 엄마와 함께 셔틀을 기다렸다. 구겨진 옷깃을 살피다 시큼한 냄새를 맡았다. '아차 지난 며칠 엄마의 샤워를 챙기지 못했구나' 오늘은 꼭 엄마를 살뜰하게 챙겨야지 했다. 여느 때처럼 해 같은 미소를 띠며 차에 올라 손을 흔드는 엄마를 보니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모퉁이를 꺾어도는 차를 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마음이 이내 아려왔다.


   분명 지난봄까지만 해도 하루 한 번 샤워를 잊지 않으셨던 엄마인데. 이처럼 몇 달 아니 며칠 사이에 달라지는 것들이 생겼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니, 내일은 또 어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엄마에게 찾아온 치매라는 불청객은 엄마와 나 모두에게 여전히 낯설다. 사실 익숙해 진다는 것도 좀 우습다.


   어제와 오늘, 내일이 다른 얼굴을 하는 것이 엄마의 불청객뿐일까. 나는 여섯 살이 된 딸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이춘기가 시작된 거 같아'라고 우리 부부가 정의했던 그 모습이었다.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금세 토라져버리는 얼굴,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아이의 천가지 얼굴이었다.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거예요. 잘 자라고 있다는 뜻입니다."라던 선생님의 말씀도 떠올랐다. 왜 이럴 때 마음과 머리는 따로노는 것인지. 안도했던 마음과는 달리, 끓어오르는 나의 혈기는 아우성을 쳤다. '너는 이춘기, 나는 오춘기냐' 따져묻고 싶었다.


   우리 엄마도 나 때문에 한 뼘 정도는 더 컸을까. 엄마 대신 질문을 던져 보아야했다. 이춘기 여섯 살과 사춘기를 지나온 나는 분명 격이 다를 것이다. 슬쩍 염치라는 전리품을 꺼내보았다. 딸내미를 보며 끓어오르는 혈기를 못 참는다고 말하기 부끄럽게 나의 어린시절은 휘황찬란했다. 슬그머니 한 시절이 고개를 들어 나의 염치와 눈을 마주쳤다. 세상 모든 부모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모든 게 타당했던 까칠한 무례함이 보였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내내   하루도 아프지 않았다. 아마도 고기를 진득하게 끓여 먹은 덕분일 것이다. 3 교실에 배정받은 첫날, 선생님은 무엇보다 체력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체력... 체력... 내가 생각하는 체력은 무엇보다  먹는 것이라 생각했다.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 먹어야  먹었다고 해야 하나를 생각했다.  순간에 머릿속을 스쳤던  하나의 음식이었다. 그걸 나는 현관 중문을 드르륵 열자마자 엄마에게 외쳤다. 3이라는 죽은  공부만 해야 한다는 현실에 정신을 놓은 것일까. 농담처럼 진담을, 진담을 농담처럼 외쳤을까. 하지만 그건 엄마에게 중요하지 않은것 같았다.  한마디에  다음 날부터 우리  뒷마당에는  솥에  달은 먹고도 남는 마르지 않을 국이 끓기 시작했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엄마는 총알을 장전했다. 내가 말하는 것이면 뭐든. 정말 뭐든 해주셨다.


   매일 아침을 국으로 시작했다. 주로 고깃국이었다. 내가 끓여달라고 말해 놓고는 어떤 날은 먹기 싫어하기도 했다. 그런 날에는 들기름을 두른 펜에 계란 두세 개가 후다닥 부쳐지곤 했다. 식탁에 앉아 먹을 시간 없이 분주한 아침이면 직접 기름과 소금을 둘러 구운 바삭한 김에 밥과 들기름 냄새가 잔뜩 나는 계란을 올려 내 입에 쏘옥 넣어주셨다. 그나마도 먹기 싫어할 때가 있었다. 뭐 대단한 거 했다고 따라다니면서 먹으라 한다고 아침부터 짜증, 짜증을 부려댔었다. 그 똥물 같은 신경질을 다 받아가며 기어코 비벼놓은 밥 한 사발을 입에 다 넣어주고야 엄마는 웃었다.


   이뿐일까. 혹여나 엄마가 늦잠을 잤던 날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왜 깨우지 않았냐로 시작한 나의 폭격은 내가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도, 결국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게 될 것도 모두 엄마의 탓이 되어야 끝이 났다. 지랄같은 나의 융단폭격이 쏟아지는 날에도 엄마는 내 아침밥을 걱정하셨다. 단 한 번도 점심 도시락을 못 쌌으니 사 먹어야겠다 하며 돈을 주신 적이 없었다. 교복을 입고 신발을 신는 내 입 속에 끝끝내 뭐라도 넣어주셨고, 도시락은 삼단 사단 도시락이 되어 학교로 배달이 되었다. 그런 날에는 이유를 알턱이 없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스타가 되었다. 앞 뒤에 앉아있는 같은 반 친구의 이름조차 외우지 않을 정도로 공부에 고단했던 시절이었다. 엄마의 도시락은 우정 어린 고3시절로 내 기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주었다.


   은밀히 엄마를 속인 적도 있었다. 학교 수업과 야간자율학습까지 마치고 그대로 독서실에 도착해 새벽 1시까지 남은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칸막이가 쳐 있는 각자의 자리에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비디오와 TV가 설치되어 있는 미디어실에서 인터넷강의를 들을 수 있는 구조였다. 물론 휴게실도 있었다. 남녀가 다른 층을 사용하는 독서실은 휴게실만은 구분 없이 하나의 공간을 사용하게 했다. 이 때문에 잠시 커피를 마시거나 밤참으로 라면을 먹으면서 눈이 맞은 고3과 재수생들이 허다했다. 어른들처럼 제대로 된 연애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작은 쪽지들을 주고받거나 늦은 밤 서로의 집을 바래다주며 긴장감을 덜어내곤 했다. 이런 짜릿함은 공부로 가득 채워야 할 시간들에 조금씩 균열을 내기도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집 앞 독서실에서 조금 이른 하원을 했다. 날은 어둑했고 짜릿함은 증폭했다. 너네 집을 먼저 가자, 아니 이번에는 내가 좀 더 데려다줄게 하며 꽁냥꽁냥하게 시간을 보내고 새벽 1시에 맞춰 집에 도착했다. 집에는 인기척이 없었고 엄마도 없었다. 불길한 예감에 독서실로 뛰어가니 불 꺼진 1층 입구에 엄마가 서 계셨다. 오늘은 친구네서 공부를 했다고 대충 둘러댔지만 엄마는 가타부타 더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셨다. 당연히 엄마는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간이 흘렀다. 그 이야기를 엄마는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야 슬그머니 꺼내셨다. 모든 걸 다 알고도 너그럽게 받아주고 품어주었던 엄마를, 혹여나 내 혼삿길이 막힐까 봐 아이까지 낳고 나서야 이야기를 꺼낸 엄마의 깊이를 나는 얼마나 더 지나야 알 수 있게 될까?




   어제저녁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드셨던 식기를 깨끗하게 닦아내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더운 날씨에 뜨거워진 몸의 열기를 식히는 것은 잊은채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식구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은 식기들마저도 깨끗이 씻었다. 대체 엄마의 수고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멈추지 않는 엄마의 수고는 잃어버려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기억만큼이나 아득하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물로 뽀득하게 닦아진 그릇처럼 은은한 광을 내는 엄마의 미소가 오래도록 머물렀다.  


   고등학교 3학년, 나의 건강 그래프는 일정한 상승곡선을 그렸다. 오래도록 앓았던 기관지염도 천식도 없이 단 하루도 아프지 않았다. 다만 성적은 상하곡선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돌아보면 후회스럽고 늘 부끄럽기만 한 나의 일 년. 어쩌면 나보다 혹독한 수험생의 하루하루를 살아냈을 엄마의 시간이 겹쳐졌다. 짧은 시간 내가 빚어낸 흑역사와 민폐는 엄마의 삶과 대조적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엄마가 닦아놓은 그릇들이 더 반짝반짝 빛을 내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에게 그렇게 많은 폐를 끼쳤는데, 왜 엄마라고 내게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삶이란 것은 연결이고, 제대로 연결되기 위해 서로의 부족한 꼴을 봐주는 것인 인생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딸에게만은 끝까지 올곧은 사람이 고픈 엄마의 마음이 반짝이는 그릇들이 대신 전해주는 듯했다. 나는 눈물겨운 생의 연결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는 엄마의 불청객을 좀 받아들여 보는게 어때?'




   오후 4시 45분, 셔틀에서 내리는 엄마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함께 아파트 뒤쪽에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발판에 양발을 올려 앞뒤로 교차하며 흔드는 운동을 엄마는 좋아하셨다. 일부터 백까지 숫자를 외워가며 한참을 운동하던 엄마가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집에 있는 손녀와 사위의 저녁 식사를 벌써부터 걱정하신다. 매일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웃으며 대꾸를 해보았다.


  해가 꺾인 시간이지만 태양의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잠깐 운동을 한 엄마의 팔뚝에 끈끈하게 땀이 고였다. 태양의 열기도 엄마의 끈끈한 땀도 왠지 싫지가 않았다.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다고, 나 여기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 든든했다.  


  "엄마 오늘은 꼭 씻으세요, 들어가면 바로"

   최대한 웃으며 상냥하게 말을 건네어보았다. 얼굴에 있는 근육을 다 쓰는 것이다. 이마에는 주름이 지고 눈썹은 높이 치켜 올라가고, 눈은 더 둥그레 커지고, 양쪽 입꼬리를 귀에까지 당겨 올려보는 것이다. 내 마음이 가닿은 것일까. 엄마는 나를 보고 더 환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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