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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마일 Mar 18. 2021

멈추지 않아, 이 노래

팬텀싱어의 노래가 계속되기를



팬텀싱어 올스타전도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작년에 시즌3를 성황리에 끝낸 팬텀싱어가 연초부터 시즌 1,2,3의 결승진출 총 9팀을 모아 올스타전을 매주 화요일밤 방송한다. 늦은 시간에 시작하는 지라 졸린 눈을 비비며 본방사수하다보면 잠은 어느새 달아나고 아름다운 하모니가 귀에 맴돌며 늦게까지 잠못 이루는 일이 다반사이다.

한 때 도스토예프스키가의 그 유명한 문장 '아름다움만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를 인생의 모토로 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내가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아름다움을 탐하는 분야는 음악 뿐인 것 같다. 창작이나 연주의 재능은 없으되 듣는 귀만 점점 예민해지니 이건 신의 저주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재능의 결핍만큼 더 열렬히 음악을 사랑하게 될 수 밖에 없으니 이제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감사한다.

나는 팬텀싱어의 세계관을 사랑한다. 한 명 한 명의 솔리스트가 긴장한 목소리로 프로듀서 오디션을 거쳐, 1:1 death match, 듀엣 경연을 지나 트리오, 콰르텟으로 이어지면서 시냇물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확대되는 하모니는 듣는 이에게 축복 그 자체다. 1+1은 단순히 듀엣이지만 그 종류는 조합마다 모두 다르며, 1+1+1은 세 명의 목소리가 아닌 6명분의 화음이 날 수도 있다. 마침내 콰르텟이 되면 네 명의 목소리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폭발력을 보인다. 그 과정에서 출연자들은 예상을 뒤엎고 무섭게 성장하기도 하고(김성식), 이미 해외에서 인정받은 정상급 기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존재와 역할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걱정하며(카운테테너 최성훈), 경쟁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벌어지는 만남과 헤어짐에 감정적으로 동요하기도(길병민) 한다. 그러나 결국 흔들리는 이들을 일으키는 건 함께 무대에 서는 동료의 목소리이며, 무대 뒤에서 가장 긴장하고 초조해하던 싱어가 무대에 올라 팀원들과 눈빛을 맞추고 소리를 나누며 가장 멋진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심지어 하이 'D'음을 뿜어내는 밀크테너 김민석^^)은 얼마나 흐뭇한 지 모른다.

팬텀싱어의 아름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기존의 수많은 오디션들이 단 한명의 우승자만을 뽑았고, 개개인의 성장보다는 심사위원-엔터테인먼트의 수장들-의 취향에 맞게 변해가는 모습에 주로 무게 중심을 뒀다면, 팬텀싱어는 기본적으로 4인조 남성4중창 팀을 만드는 것이므로 team player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또한, 심사위원이 아닌 '프로듀서'라 불리는 6명의 중견음악인들은 가차없는 비판이 아닌 방향을 안내하고 격려해주는 조력자에 가깝다.

결승에 진출하는 3팀의 12명은 모두 프로그램 이전에 이미 십년 넘게 트레이닝을 받은 전문가들이고 완성된 소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어느 외신에서 '클래식음악에 올림픽이 있다면 성악의 금메달은 단연 한국'이라 할 만큼 한국인의 성악 기량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반면,  한국에서 성악가들을 포함한 순수음악을 하는 이들이 설 무대는 적다. 그렇기 때문에 팬텀싱어라는 큰 판이 벌어지자, 이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이해하고 마음이 맞는 동료를 찾기 위해 끝없이 토론하고 과감히 도전하며 4중창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나아간다. 말 그대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모습을 가장 멋진 방식으로 보여 주며, 치밀한 구성과 연출력으로 개개인이 서사를 쌓아가는 모습이 음악 사이사이 배치되면서, 마침내 출연자들은 자신이 음악 그 자체가 되는 경지에 이른다.

대중음악이 9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한 후 이제 한 세대를 지났다. 그 오랜 시간 사랑받은 조용필 김동률 등 여러 가수들은 자신의 시작을 알고 있는 팬들과 함께 나이들어가며 함께 서사를 완성해 나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클래식이 대중에게 많이 다가가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클래식은 너무 멀고, 기본적으로 외국인의 음악이고, 클래식 음악가들은 대중에게 보여줄 서사가 없었다. 어느 학교 나와 누구에게 사사받고 어느 콩쿨에서 상을 받았다는 건 자기들끼리 따지는 스펙일 뿐, 대중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성악가들(출연자 중에는 뮤지컬 배우도 있고 비전공자도 있지만 일단 팬텀싱어3에서 상당수가 성악가였으므로 일단 기준으로 삼는다)이 학교와 클래식 공연장을 박차고 나와 크로스오버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것은 대단한 용기이고 또 성공적 도전이었다. 그들은 이제 젊고 아름다운 한 때를 치열하게 보내며 성장한 자신만의 서사를 가지게 되었고, 이를 발판삼아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팬텀싱어3는 카운터테너와 국악 판소리 전공자까지 가세하여 과연 음악적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안방 제1열의 관객의 눈과 귀를 의심케하고, 자리에서벌떡 일으켜 세울 정도의 놀라운 레전드 무대가 연이어 이어졌다. 시즌2까지는 비슷한 구성의 비슷한 노래들이 많아져서 프로그램 자체가 매너리즘에 빠진 게 아닌가 싶었는데, 시즌3는 3년만에 열리는 만큼 모두의 음악적 수준이 크게 점프하듯 높아진 느낌이었다.

시즌3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클래식, 판소리 등 자신의 기본을 잊지 않고, 크로스오버활동을 해도 균형을 맞추겠다고 자신있고 당당하게 말한다. 이미, 팬텀싱어 클래식 전공자들의 오페라 갈라 콘서트가 여러 차레 공연되었고, 드라마 OST에서 모짜르트의 레퀴엠과 헨델의 아리아를 불렀으며('빈센조'에서 라포엠과 카운터테너 최성훈), 댓글에는 이렇게 클래식이 아름답고 재미있을 줄 몰랐다며 '개안'한 팬들이 넘친다.

클래식 크로스오버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 옛날 Caruso부터,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의 Perhaps Love, 수많은 크로스오버 음반을 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첼로로 노래하는 첼리스트 요요마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에는 영화에서 파가니니 역할을 맡아 열연한 데이빗 가렛(이 친구는 심지어 줄리어드 학비를 벌려고 ARMANI 모델도 했다)까지, 클래식의 천재, 대가라 불리는 음악가들이 크로스오버의 선봉에서 대중에게 쉽고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했으며 그들은 언제나 진지하게 클래식음악으로 돌아갔고 최고 수준의 기량을 놓치지 않았다.

팬텀싱어3의 최고 인재 판소리꾼 고영열은, 자신이 사랑하는 국악이 대중에게 다가가려면 직접적으로는 어렵고 대중과 국악 사이 어떤 장치가 필요할 것인데, 그 장치의 역할을 자기가 하고 싶다고 했다(참고로 나이는 28세). 앞서 말한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빗 가렛은 20세기 최고의 신동이라 불리며 화려한 클래식 음악 경력을 쌓았던 터라 그가 크로스오버 분야에 진출하자 비난의 목소리가 거셌다. 이 때, 그를 가르친 전설의 바이올리니스트 이착 펄만을 포함한 여러 스승들은, '데이빗 정도의 재능이면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하는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며, 그는 대중을 이끌고 클래식 공연장으로 돌아올 것이다'라고 제자를 따뜻하게 격려했다. 그러니, 혹여나 한국 클래식계에서 팬텀싱어를 색안경 쓰고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지나친 우려이고 시대에 역행하는 생각임을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팬텀싱어 프로그램은 한국에 소수의 매니아만 존재하던 성악 크로스오버 시장의 파이를 엄청나게 키워냈고, 판이 커지자 여러 인재들이 모여들어 음악 수준이 점점 높아지는 선순환을 이루고 있다. 더불어 클래식 음악에도 새 바람이 불어오지 않을까.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라비던스는 월드뮤직의 장인답게 해외 원곡자들과 협연을 했을 것이고, 테너 존노와 김민석은 오페라에 출연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쌓아온 서사가 있으니 우리는 새로운 음악, 새로운 서사를 써나갈 그들을 기다릴 것이다.

올스타전을 보며 들었던 생각을 두서 없이 쓰다보니 엄청난 장문이 되어버렸는데, 팬텀싱어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유튜브의 공연 실황 클립 때문이었다. 아이유의 'LOVE POEM'을 두 팀의 리더인 바리톤 길병민과 테너 유채훈이 부르는 이 클립은, 시즌3를 정주행한 사람만이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유채훈은 이 노래를 1;1 death match 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부른 바 있다). 팬텀싱어3를 통해 서사를 쌓는데 성공했다고 한 건 나의 얕은 생각임을 이 영상을 보며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프로그램 이전에 이미 '프리퀄'이라 부를 만한 역사가 있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의 바다를 건너며, 서로의 목소리로 위안을 삼은 두 청년이 마침내 한 곳에서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는 LOVE POEM의 노래 가사와 정확히 같았다. 팬텀싱어 시즌3는 두 사람이 부른 이 노래로 마침내 완성되었다.

그들의 노래가 끝나지 않기를.

https://youtu.be/A4Q--aezrtQ



#팬텀싱어
#유채훈
#길병민
#공연은언제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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