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되도록 며칠 휴가를 쓰는데, 올해처럼 아무 곳도 가지 않고 집에서만 지낸 휴가는 처음이었다. 두어달 전에 계획했던 모처럼의 제주도 여행도 취소해야 했고, 대신 탄천의 산책로를 매일 아들과 한 두시간씩 걸었다. 갈대숲이 우거진 강변은 쓸쓸하지만 평화로왔다. 시가지의 소음이 강변까지 내려오지 않아 조용했고 마스크와 모자로 중무장한터라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니 편안했다.
얼마전 페친의 포스팅에서 보자마자 산 책, 정호승 시인의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휴가 동안 천천히 읽었다. 칠순을 기념하여 자신의 시와 그 시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책인데 오랫 동안 정호승 시인 팬이었던 내게는 대부분 친숙한 시였다. 그 친숙함 속에는 시끄러운 마음을 잠재우지 못하고 그의 시에 의지했던 젊은 날의 내가 있었다. 모든 것이 마음같이 이루어지지 않던 이십대 시절, 고된 하루를 보내고 차가운 방 안에 들어와 낡은 책상에 앉아 그의 시를 읽던 날들이 떠올랐다.
시인의 시와 글은 한결같이 그 맑고 고요함을 잃지 않고 책 속에서 잔잔히 빛났다. 어쩌면 칠순의 나이에도 이렇게 평화롭고 정결한 영혼을 지닐 수 있을까. 내가 나이를 먹으며 때가 묻고 닳은 만큼, 나와 다른 깨끗한 영혼을 더 잘 구별할 수 있게 되었음을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 아름다운 단어들 - 희망, 꿈, 나무, 영혼, 기도, 침묵, 추억, 풀잎, 새벽.... -이 새삼스러웠다.
문학이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고 또 생각을 바꾸던 가장 강력한 -유일한- 도구였던 시기에 태어나 그 정신을 잃지 않고 지켜온 시인의 시 한 줄 한 줄이 보석처럼 귀하다. 우리는 표현할 도구와 채널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외로움'이란 한 마디를 표현하지 못해 화려함에 더욱 집착하며 사는 것 같다.
'종소리도 외로와서 울려퍼진다'고 시인은 말했는데, 올해는 심지어 12월 31일인데도 보신각 종소리조차 울리지 않는다. 산사에 가서 종소리를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마음이 충만해질 수가 없다. 종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파장이 잔잔히 산사 아래의 땅과 숲과 인간과 짐승을 감싸안으며 퍼져나가는 것 같다. 보신각의 종도 12월 31일에만 울릴 것이 아니라 매일 밤 울리면 어떨까. 하루에 한 번씩 종소리를 들으면 그 평화로운 파장으로 하루 동안 마음에 쌓인 짐과 피로를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은 12시가 아니라 10시쯤이 좋겠다. 야근을 끝낸 직장인들, 문닫을 준비를 하는 상인들이 종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도시의 밤 풍경은 얼마나 정겹고 아름다울까.
현실은 이래저래 춥고 마음 쓸쓸하다. 그런 12월 마지막날, 시린 하늘에 불타는 노을이 고왔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고, 삶이 있다고 노을이 내게 말했다. 그러니 내일 내년을 별다를 것 없이 담담히 시작하자. 지금의 고통, 지금의 쓸쓸함, 지금의 외로움은 다 의미가 있을 테니.
.....그동안 당신의 인생은 외로웠는가. 당신은 인생이라는 종루에 매달려 무엇을 기다렸는가. 보신각종처럼 아니면 어느 산사의 범종처럼 당신은 누가 때려주기를 기다리는 숭고한 기다림의 자세를 지녀보았는가. 내가 하나의 종이라면 내 외로움의 고통은 당연하다. 산사에 고통의 종소리가 울려퍼지지 않으면 산사가 아름답지 않듯이 내 인생에 고통의 종소리가 울리지 않으면 내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 <p.262 -263,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