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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ZE Apr 29. 2022

호출부호 로마자 발음에 대한 단상 글에 이어

Janglish Callsign Pronunciation in Korea


아마추어무선 동호인들이 모이는 국내 대표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입니다.


아마추어무선의 세계에는 일본식 용어가 참 많습니다. 용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어조차도 일본식으로 발음합니다. 저의 호출부호(Callsign)에 들어 있는 "Z"의 경우에도 음성문자(Phonetic Alphabet)로는 "Zulu"인데, 이것을 우리말로 할 때 [줄루]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국내 동호인이 많습니다. "J"를 뜻하는 "Juliett"로 착각합니다. 조금 어처구니없지만 [주루]라고 하면 모두가 알아듣습니다.


음성문자가 아니라 알파벳 자체를 발음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리고 발음하면 알아듣지 못하고 [제트]라고 발음해야 알아듣는데요. 그에 대한 글을 한 분이 쓰셨기에, 답글 삼아 아래 글을 적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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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내기 회원입니다.

게시판에서, 호출부호 "Z" 발음에 관한 쓸데없는 단상이라는 글을 읽고 댓글을 달다가 길어져서 새글로 써봅니다.


예전에 LA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창륙 전 세관 신고 카드를 기내에서 작성하면서, 옆 자리 학생(고등학생 혹은 대학생)이 카드에 Los Angeles를 잘 적지 못하고 있기에, 제가 '엘 오 에스 에이 엔 쥐 이 엘 이 에스'라고 불러준 적이 있습니다. 일본 학생이었는데, 딱 'L'이라고 한 글자만 쓰고 저를 쳐보다면서 그러더라고요. '에루..?'


우리말의 '위'는 [우이]라고 이중모음으로 발음할 경우도 있고, '쥐'를 발음할 때처럼 단모음으로 발음할 때도 있습니다. 허나 '왜'의 경우에는 우리말에서 이중모음으로만 발음하되 단모음으로 하는 경우는 없는데요. 유럽의 말들을 제2외국어로 배워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œ/같은 발음은 /o/와 /e/를 붙여서 발음기호를 표기하고, 붙여서 표기한 만큼 단모음으로 발음을 해야 합니다. 만약 이걸 외국어 학습자의 편의를 위해, 한글로 '왜'라고 표기해주었을 때, 이중모음으로 [오애]라고 발음해버리면 안 되죠. 편의를 위한 독음 표기가 원음을 훼손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일본 학생의 '에루'처럼요.


'V'의 경우도 한글 독음 표기는 예전에 '븨'였는데, 영어 독음 표기는 'Vee'이고, e가 두 개이니 /vi:/로 발음해야 하는 건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무는 발음임을 고려해, 이걸 한글로 '븨'라고 표기했다고 하여 [브이]라고 하면 똑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모음뿐 아니라 자음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우리말의 'ㅂ'은 어절의 첫머리에 올 때 무성음으로 발음하고, 중간에 올 때 유성음으로 발음합니다. '바보'라는 낱말을 국제 발음기호로 표기해보면 /pabo/가 되는 것이죠. /p/와 /b/만 있는 것이 아니고, 조금은 생소하시겠지만 /β/로 발음할 때도 있는데, '두부'의 비읍이 그렇습니다. 원순 모음 사이에 입술을 붙이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ㅂ'을 발음하니, 입술이 부르르 떨리는 /β/로 발음을 하는 것이죠. 이런 현상은, 발음할 때의 호흡법 등과 함께 관습으로 굳어진 것인데, 좀 더 깊이 있게 알아보고 싶으신 분은 '기식음'이라고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기식음'의 개념을 알게 되면, 미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계 배우들이 우리말을 이상하게 발음하는 이유도 알 수 있죠.

모두가 아는 영어 단어인 'boy'를 /bɔi/로 발음하려면 우리는 좀 어려운데요. 어절의 첫음으로 오는 'b'를 우리말 식으로 발음하면 /pɔi/가 되어버려서 외국인들은 'poy'라고 듣게 됩니다. 이걸 /bɔi/라고 발음하려면 첫음을 낼 때 복식호흡하듯 배를 한 번 출렁이며 유성음으로 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잘 안됩니다. 잘못하면 [뽀이]가 되고, 또 외국인들의 발음이 우리에겐 마치 [뽀이]로 들리기도 합니다만, 정확한 발음은 [뽀이]가 아닙니다. 예전에는 '뽀이'라고 독음을 달고 그렇게 배운 분들도 있을 텐데, 편의상의 표기였지 그걸 그대로 발음하면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Z'도 같은 경우입니다. 영어 독음 표기는 'Zee'이고 /zi:/입니다. 문제는 자음인 'z'인데, 한글로는 모두 [ㅈ]으로 표기합니다만, 가장 근접한 발음은 '두부'의 비읍 발음을 낼 때처럼, '부주'의 지읒 발음을 내면 할 수 있습니다. 연속으로 이어지는 [우] 발음 사이에, 너무 또박또박 발음하지 말고 연속으로 입술이 떨리게 발음하는 것이죠. 그러면 동물원을 뜻하는 'zoo'와 같은 발음이 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도 우리말의 관습에서는, 어절의 첫음으로 오는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발음하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 노력을 해야 발음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흥미로운 주제를 하나 더 말씀드리면, 훈민정음의 순경음 글자나 반치음 등을 모두 사용하면, 외국어 독음 표기는 놀랍도록 정확도가 올라갑니다. 애초부터 순경음 글자들은 우리말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기보다는, 한자 독음을 북경어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니까요. 'cafe'는 '카페'라기보다는 '카ㆄㅔ'라고 해야 중국식 음차인 '咖啡'에 가까워지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최대한 원음에 가깝게 발음하려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표기법과 그 표기음의 발음 관습으로 인해 생겨난 변형이 통용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원음의 대용물이지 그것이 원형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서로 이해는 해줘야겠지요. 다음 부자의 대화를 보면서 우리가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이해를 해주는 것이 미덕이듯이요.


“아드다, 자 따다해봐다. 바담 풍.”

“네 아부디, 바담 풍.”

“바담 풍이 아니고 바담 풍이대도!”

“네 아부디, 바담 풍요, 바담 풍.”


이상 국어학도였다가 엔지니어로 살고 있는 새내기 회원의 단상이었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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