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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ZE Apr 29. 2022

'아이볼'이라는 햄 용어에 대해

HAM slang : eye-ball

아마추어무선 동호인들이 모이는 국내 대표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입니다.


당시 상황을 잠깐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느 날 신입 회원 한 분이 가입인사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새롭게 아마추어무선을 시작하게 된 햄린이입니다"라고요. 언뜻 보아선 별스럽지 않은 인사글인데요. 문제는 '햄린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당시 가입입사 게시판에는 '햄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인사글이 매주 두어 개 정도는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오래된 회원 한 분은, '햄린이'라는 단어보다 '햄초보'라는 말로 바꾸어 쓰자는 댓글을 달았고요. 어떻게 보면 용어에 대한 견해 차이를 나타낸 것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일이 그렇게 흐르지 않았습니다. '햄린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도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냐고 이야기하는 회원들과, 사전에도 없고 조어법도 이상한 단어이니 쓰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회원들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 것이죠.


안타깝게도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도 갈등이 이어지고 있고요. 아래 글은, 당시 새내기 회원으로서 느끼는 바를, 아무추어무선의 세계에서 사용하는 은어 중 하나인 '아이볼'이라는 용어에 대한 생각과 함께 표현한 것입니다.


새삼스레 이 글을 옮겨보는 것은, 당시 사건을 들추어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언어의 사회성에 대한 일례적 관찰과 단상을 기록했던 것이기에 의미가 있을 듯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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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내기 회원입니다.


저녁에 다른 일을 하느라 카페를 못 봤는데, 햄린이라는 말 때문에 여러 글이 올라왔네요. 저는 요 며칠 카페 글을 읽다가 '아이볼'이라는 낱말을 대면이라는 의미로 쓰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요. 아이볼은 영어로 'eyeball'이고, 그러면 '눈알'일 텐데, 그것이 어떻게 '대면하다'라는 동사로 쓰이는지 신기했던 것이죠. 살아오면서 'eyeball'을 그런 의미로 쓰는 것은 처음 보았거든요.


아마도 "on sight"라는 표현을, geek들이 조금은 nerd 스럽게 표현하느라 "on eyeballs" 정도로 뒤틀어서 표현한 것이, 동호인들 사이에서 은어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싶었고, 생각이 그쯤 이르자, 세상을 사는 진리 중 하나인 '그러려니'로 대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face to face"라는 뜻과 같게 "eyeball to eyeball"이라는 표현도 쓰고, "to face"라는 뜻과 같게 "to eyeball"이라는 표현도 종종 쓰더군요.)



아마추어 무선의 '아마추어'도 따져보면 그렇습니다.


사실 '아마추어'의 어원은, 우리도 많이 들어본,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아무르/쥬땜므의'앰므' 라는 말의 뿌릿말인 라틴어 'amare'에서 나온 말로, 거기에다가 행위자를 뜻하는 (영어의 er/or 같은) -eur을 붙이면서,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 -t-를 끼워 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말입니다.


'저 사람은 저 일을 직업으로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랑해서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죠. 거기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애정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 것이고요. 그것이 점차 '애호가'나 '동호인' 같은 현재의 의미로 굳어진 것입니다.


헌데 우리가 가끔 쓰는 표현으로, '프로답지 못하고, 아마추어 같이 왜 그래'라는 식으로, 전문가 정신이 모자란 것을 탓할 때 '아마추어'가 쓰이는 것은, 아마추어의 쓰임 중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례로, 금메달을 따려고 올림픽에 나가는 국가대표 권투 선수를, 프로 복서라도 안 하고 아마추어 복서라고 TV 중계에서도 말하며, 그 올림픽 무대를 "아마추어 복서의 최강자를 가르는 무대"라고 해설합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돈을 받고 경기를 뛰는 선수를 프로 선수라고 하니까요.


저는 그래서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비전문가'라고 읽기보다는 '애호가'라고 읽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를 부를 때 쓰는 용어인 '아마추어'라는 말도, 그 의미가 최초의 의미와는 좀 달라진 상태입니다.


언어는, 40대 이상인 분들은 국어 교과서로 배웠듯이 '언중의 약속'이라고 합니다. 끊임없이 생겨나고 변하고 사라지는 생물이고요.


'아이볼' 같은 단어도, 언어의 혼탁으로 보기보다는 언어의 확장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다만, 제게는 본래 뜻이 너무 많이 떠올라서, '대면하다'라는 의미로 쓰기에는 조금 주저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렇더라도 그건 "좋고 싫음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닌 것"이라고 보기에, 제 의견을 표현할 수는 있어도 주장을 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이상 국어학도였다가 엔지니어로 살고 있는 새내기 회원의 단상이었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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