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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May 01. 2019

기회주의자

음모의 추진력

커다란 음모는 머리가 좋은 기회주의자로부터 시작됩니다. 작품 <줄리어스 씨저>에서 씨저 살해의 주범은 브루터스로 알려져 있지만 최초로 거사를 계획하고 공모자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인물은 카시우스입니다. 카시우스는 씨저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나 봅니다. 사람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싫어하게 마련입니다. 카시우스가 브루터스에게 씨저는 약해빠진 늙은이에 불과하다고 폄하합니다. 씨저가 어느 추운 날 티베르강에서 어느 지점까지 시합을 하자고 해서 옷을 입은 채 뛰어들어 수영을 하는데 좀 쫓아오는 것 같더니 그 지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카시우스 살려줘, 빠져 죽겠네"라고 씨저가 소리쳐서 자기가 둘러업고 나왔다는 겁니다. 씨저는 카시우스에 대해서 외모부터 못마땅한지 안토니우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주변에는 살집이 좀 있고 혈색이 좋은 친구들만 있으면 좋겠어. 밤에 잠도 잘 자고 말이야.

저기 삐쩍 마르고 굶주린 낯짝을 한 카시우스 좀 봐. 저 녀석은 음흉한 생각이 많아, 위험인물이야."  


카시우스도 이런 느낌을 아는지 씨저 밑에서는 출세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씨저가 황제가 되어 더 큰 권력을 잡으면 카시우스는 앞날이 캄캄하겠지요. 씨저에 대한 카시우스의 개인적인 반감이 씨저를 시해하려는 계획으로 발전합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거사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씨저가 권력을 잡으면  황제가 될 것이며 공화제를 무너뜨리고 독재자가 될 것이므로 이는 로마에 좋지 않다는 거지요. 로마가 공화제로 간 것도 그전 황제 체제일 때 타르킨의 폭정에 대한 반작용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로마인의 반독재 정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씨저가 아무리 인기가 좋다 해도 황제 체제가 부활는 것에 대해서는 로마 시민들도 복잡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이러한 로마의 정서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던 카시우스는 로마 최고의 지성인 브루터스를 설득하여 동조자들을 모은 후 씨저를 살해하게 되지요. 브루터스가 거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씨저는 살해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카시우스는 모사꾼의 유형이지 사람들이 존경심을 가지고 따르는 지도자는 아니었습니다. 거사파에 가담한 인물들은 카시우스가 아니라 브루터스를 따 셈이지요. 하지만 카시우스는 사건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자질을 브루터스에게서 빌려서 자신이 의도한 거사를 성공시킨다는 점에서 탁월한 음모꾼입니다.


그러면 카시우스는 성공한 것일까요? 씨저 살해에는 성공했지만 권력을 차지하는 데는 실패합니다. 말하자면 쿠데타의 실패인 셈인데 거사에 가담했던 인물들은 반역자로 몰리게 됩니다. 카시우스와 브루터스 일당은 반역자의 입장에서 정통파와 불리한 싸움을 벌이게 되고 결국 패전과 함께 종말을 고합니다. 막상 권력은 그 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씨저의 조카 옥타비우스에게 넘어가고 황제 체제가 됩니다. 카시우스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카시우스는 아마도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씨저를 제거하는데만 집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권력의 승계까지는 세부적으로 생각을 못했던 것이지요. 브루터스는 로마인의 존경을 받는 당대의 지성인이지만 그는 권력지향형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씨저 살해라는 거사에 이론적 명분을 제공해줄 수는 있어도 권력을 차지할 역량도 없었고 공화제를 존속시킬 세부 계획도 없었습니다. 브루터스가 씨저의 죽음 하나로 독재가 방지되고 공화제가 존속될 것으로 믿었다면 너무나 순진한 생각 아니었을까요. 카시우스 역시 음모를 꾸밀만한 인물이지만 최고 권력을 설계할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카시우스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앞길을 막고 있는 씨저를 살해함으로써 자신의 출세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카시우스는 로마의 정의를 내세웠지만 사실 그런 커다란 정의를 실현하기에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을 뿐 역량이나 계획이 모두 부족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카시우스라는 인물을 통해 기회주의자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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