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이후의 사람들 대상으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물어보는 조사가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대답이 공부였다고 하는 것이 인상 깊더군요. 저 자신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책을 더 많이 읽었으면 좋았겠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비슷한 대답에 이유도 비슷할 텐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도 이렇게 말했다지요.
“책을 읽는데 시간을 할애하라. 남들이 고생한 결과를 쉽게 얻어 자신을 바꿀 수 있다”
시간이 남아서 읽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읽는다는 게 여기에서 중요한 점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큰돈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책 외에 또 뭐가 있을까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보다 더 순수하고 고귀한 개인적인 욕망은 없을 것 같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고 해야 할까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공부이고 공부의 시작은 책입니다. 공부란 일을 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지식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까지를 배우는 일입니다. 내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협지에서 무술의 수련을 통해 쌓인 공력을 말하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내공이란 말은 경험과 학습, 통찰력의 총합으로 한 사람의 잠재적 능력을 뜻합니다. 개인의 내공을 쌓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 책입니다. 인간이 수 천 년에 걸쳐 생각하고 경험한 모든 것이 책 속에 있습니다. 책 속에 인간과 세상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세상을 알게 된 것은 책을 통해서였다”
대학 졸업 후 기업에 속해서 은퇴하기 전까지 저의 세계는 정확히 말해서 업무용 책상만 한 넓이였습니다. 일 때문에 해외에 출장도 많이 다녔지만 돌이켜보면 그 책상 넓이 이상으로 제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언젠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전부를 찬찬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걸리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과정을 통해 저는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저의 세계도 조금씩 확장되었습니다. <햄릿>과 <오셀로>, <맥베스>, <리처드 3세>, <줄리어스 씨저> 등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을 거울삼아 저 자신과 세상을 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레온 블랙 Leon Black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라는 미국 굴지의 자산관리회사의 공동 창업자입니다. 뭉크의 그림 ‘절규’의 경매 최고가 기록을 깼던 사람으로 유명하지요. 이 사람은 아이비리그의 대학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나왔는데, 자신의 성공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답하기를 하버드에서 배운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사업의 통찰력은 대부분 셰익스피어로부터 배웠다고 했다지요. 셰익스피어에 대해 많은 유명인들이 다양한 평을 했지만 저에게는 레온 블랙의 말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다른 것은 저는 너무 늦게 셰익스피어의 통찰을 깨달아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오프라 윈프리 Opra Winfrey 역시 유명한 독서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본인도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었고 마약에도 손대는 등 암담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녀도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데는 책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책은 평등합니다. 재벌이 읽는 책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고위 관료가 읽는 책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독서만큼 모든 사람이 동등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또 뭐가 있을까요? 책살 돈이 없어도 도서관에 가면 거의 모든 책을 원하는 대로 읽을 수 있으니 요즘 세상에 적어도 독서만은 평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