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답을 말해주는 책과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자기 계발 서적이나 사회나 경제, 기술 등과 관련된 분야별 서적 등은 해답이 담긴 책이겠지요. 반면에 문학이나 철학 서적은 답을 말해주기보다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져줍니다. 어떤 책을 좋아하세요?
디지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질문을 받기보다는 해답 보기를 원하기 때문에 정보나 지식을 쉽게 정리한 책을 좋아하고, 해답을 원하는 경우에도 즉각적인 해결을 원하기 때문에 책보다는 구글이나 유튜브로 향합니다. 사실은 여기에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인터넷 상의 모든 정보는 진위를 가릴 여유 없이 여기저기로 흘러 다니기 때문입니다. 진실 여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해야 합니다.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사실 여부나 그 안에 숨어있는 진실을 파악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뉴스나 방송을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짜 뉴스나 선동 정치가 판치는 것은 네트워크 시대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적 판단을 내릴 근거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결론을 좋아하기 때문에 선전문구와도 같은 자극적인 구호나 뉴스가 사실로 인식됩니다.
책의 영역에서도 문학 계열보다는 비문학 계열의 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도 독서가로 알려져 있는데 그들이 추천하는 도서 목록을 보면 비문학 계열의 책이 대부분을 차지하더군요. 아마도 현대인의 기호가 해답을 선호하기 때문 아닐까요. 사회 경제분야의 양서들도 대개는 해답을 얘기하는 형식이지만 그것은 저자의 관점과 해석일 뿐입니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라도 불변의 진리를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의 복잡한 사회 환경에서는 개인이 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수 천 년에 걸쳐서 위대한 작가나 철학자들이 진리에 대해서 말해왔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세상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첨예한 대립 사회에서도 우리는 오랜 시간 쌓아온 인간의 지혜를 각자가 추출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진실을 파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이 통합되면 지혜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키워드 검색이 습관이 되면 지식이 구조화되지 않습니다. 정보란 유추나 연상을 거쳐 통합이 되고 구조화가 되는데 요약된 결과만을 짧은 시간에 소화시키는 현대인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예로 들어볼까요.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나오기 전과 후는 운전자의 행동 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전에는 처음 가는 장소를 가려면 지도를 미리 찾아보거나 약도를 그리는 일이 기본이었습니다. 적어도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머릿속에 미리 그려보고 출발했습니다. 지금은 내비게이터에 주소나 키워드만 넣어주면 목소리까지 곁들여 안내해줍니다. 길눈이 밝은 사람과 어두운 사람의 차이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지도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지리적 감각이 점점 둔해집니다. 이게 편리하기는 한데 무조건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불편하게 약도도 그려보고 동서남북도 따지면서 엉뚱한 길로 잘못 들어서기도 하며 배워온 공간 지각 능력이 점점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보나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정보가 필요할 때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이 생활화되었습니다. 그것도 문서화된 정보보다는 유튜브 방송을 찾아보는 게 대세입니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검색 도구로 사용하다 보니, 유튜브 방송의 경우 10분이 넘어가면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합니다. 인내심의 한계가 그 정도인가 봅니다.
학교의 수업시간을 보면 기본단위가 초등학교는 40분, 중학교는 45분, 고등학교는 50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최대 시간으로 그렇게 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대상으로 강의를 한 번 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가끔 외부강사의 날을 정해 학생들에게 특별 수업을 하는 것이지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담당교사가 강사들에게 안내를 하는데, 수업 중 아이들을 보고 너무 놀라지 마시라고 해요. 아이들이 너무 산만하다는 겁니다. 남자아이들은 수업 중에 두세 명씩 번갈아가며 일어서서 교실 안을 돌아다니고 여자아이들은 옆의 아이와 계속 쏙닥쏙닥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외부강사가 걱정이 되어서인지, 돌아다니는 아이들 교통정리하기 바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면 대개는 적극적인 대답이 곧장 돌아옵니다. 자기들에게 별로라고 생각되는 질문에는 못 들은 척합니다. 미국 영화에서 보던 아이들 수업 장면보다 훨씬 더 자유분방한 장면을 보고 놀랐습니다. 사전에 이런 정보를 받지 못했으면 당황할 뻔했습니다.
어린 학생들 뿐 아니라 인터넷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의 정보 역시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진화하게 마련입니다. 정보는 짧고 즉시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보는 결론 위주이고 흥미 본위이며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정보는 빨리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정보의 제작자도 책임감을 별로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려되는 것은 이런 대중의 성향을 이용해 정치적 선동이나 특정 목적을 가진 여론의 오도가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가짜 뉴스에 대한 진위는 점점 더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진위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현상이 일회성으로 끝난다면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계속된다면 사람들은 사고의 균형감각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말한 전체주의와 세뇌당하는 대중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작품 <1984>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대표적인 소설입니다. 디스토피아는 낙원이라는 뜻의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세상인데 시민들이 전체주의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통제받는 사회입니다.
우리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선거직 지도자들을 잘 뽑아 왔나요? 유감스럽게도 대중은 어떤 사람이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지도자의 역할을 잘 수행할지 잘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진실을 알지 못한 채 겉으로 나타난 모습과 TV에 비치는 가짜 이미지만 보고, 뽑아서는 안될 후보에게 표를 던집니다. 지금 당장 약간의 이익을 여러분에게 준다면, 5년 후 10년 후에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날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도 상관없나요? 정치적 포장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일반 시민들이 진실을 보지 못하고 속임수에 넘어가는 건 더 큰 문제입니다.
독서의 가장 중요한 효용은 균형된 관점을 취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진실을 보는 눈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어떤 특정한 책 한 권이 우리가 가진 의문에 대한 해답을 단 번에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책을 읽다 보면 스스로 판단하고 옳은 것을 가리는 능력이 강화됩니다.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는 견해를 가지게 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인물이나 사건의 겉모습뿐 아니라 이면에 숨어있는 진실까지 보는 눈을 가지게 되는 거지요. 인터넷은 놀라운 검색 기능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하지만, 독서가 주는 효용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패스트푸드와 슬로푸드에 비유할 수도 있겠네요. 강력한 인터넷의 영향으로 책이 현대인의 생활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지만, 책에 대한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어서 좋은 책을 찾아 읽기에 엄청나게 좋은 시대인 것은 아이러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