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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Mar 11. 2022

자유인에 대하여

문학에서 자유인 읽기

여러분은 스스로를 자유인이라고 생각하세요? 헌법에서 말하는 법적인 자유 말고 말입니다. 모두가 자유인이기를 바라지만 실제 그게 가능한가요?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대해서 가장 좋아하는 점이 교훈이었는데 그 첫 번째가 '자유인'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그렇게 멋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지금도 처음 교훈을 보고 느꼈던 그대로, 자유인이라는 단어가 가진 참신함과 철학적 어감을 고스란히 느낍니다. 제가 살면서 주변에 자유인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책 속에서 발견한 자유인의 모습을 몇 가지 얘기하고자 합니다. <열하일기>의 연암 박지원, 파올로 코엘류가 쓴 <연금술사>의 목동 산티아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에이머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 등이 머리에 떠오르네요.


첫 번째로 얘기하고 싶은 인물은 연암 박지원입니다. 위에 열거한 인물은 연암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설 속의 주인공들입니다. <열하일기>는 일종의 기행문이므로 저자 자신이 주인공입니다. 이 작품은 멋진 문장과 해학, 깊은 사색과 방대한 지식,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 등 좋은 책이 주는 다양한 맛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가히 조선 시대 문학의 최고봉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호질>과 <허생전>이 <열하일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질은 어떤 가게를 방문했다가 벽에 쓰인 글을 보고 베껴온 것이라 하고, 허생전은 누구한테 들은 얘기라고 연암은 기술합니다. 두 작품 다 혁명적인 내용이라 조선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을 걸 알고 다른 사람에게 들은 얘기라 하면서 여행기에 끼워 넣은 거지요. 모티브는 빌려왔을 지라도 내용은 연암의 창작으로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제가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연암이라는 인간 자체였습니다. 정조 때, 연암의 8촌 형님뻘인 박명원이 청나라 건륭제의 고희 잔치를 축하하기 위한 사신 단장으로 임명되었는데 개인 수행원으로 연암을 데리고 갑니다. 당시 사신 단장은 요새로 말하면 장관급이었고 군관이나 말동무로 수행원을 3-4명 추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연암이 대국의 문물을 보고 싶어서 박명원에게 졸랐던가 봅니다. 연암은 당시 벼슬도 없고 실학자들,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 등과 토론하며 지내는 비교적 자유로운 신분이었습니다. 벼슬을 하지 않았던 것도 그의 유별난 자유정신이 큰 이유였을 겁니다. <열하일기>는 한양을 출발해서 북경을 거쳐 열하까지 다녀오는 5개월에 걸친 여행기입니다. 하는 황제의 별궁이 있는 곳입니다. 연암 일행은 북경에서 기다리다가 뒤늦게 황제의 고희연이 열리는 열하까지 촉박한 일정에 맞춰가느라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됩니다. 덕분에 연암의 이야깃거리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정조까지 이 책을 읽었을 정도로 당시에 재미있다는 소문이 나서 장안의 화제였다고 합니다. 한 편으로는 자유로운 정신의 야인이 대국에 대한 관찰을 파격적인 문체로 써버렸으니 비난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정조도 불순한 문체로 문풍을 어지럽혔다며 바르고 순수한 글을 지어 속죄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일종의 반성문을 쓰라는 지시였는데 연암은 끝내 쓰지 않았습니다. 진실성이 담기지 않은 속죄 의미의 글을 쓰는 것이 성격에도 맞지 않았고, 벼슬을 위한 타협 혹은 신하 된 자의 더 큰 죄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정조가 그를 귀양 보내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연암은 50세가 될 때까지 무직이었습니다. 50이 되어서야 친구의 추천으로 종 9품의 낮은 관직을 가지게 됩니다. 하기는 벼슬이 없기에 그가 자유인의 정신을 가질 수 있었겠네요.  열하일기는 압록강을 건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압록강은 나라 간의 경계이지요. 책문은 청나라의 동쪽 경계입니다. 연암은 변방의 책문 마을을 보며 감탄을 합니다. 백성들의 집과 거리를 보며 모든 것이 높고, 곧고, 평평함에 깜짝 놀랍니다. 변방의 마을이 이 정도라면 나라의 중심지는 어떨까 보지 않아도 상상이 가는 겁니다. 벼슬과 평민 사이에 위치한 경계인 연암이 청나라와 조선의 경계에서 느끼는 소회로 책을 시작하는 것이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경계에 서서 이쪽에저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양쪽의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봅니다. 조선 양반 사회의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각으로 오랑캐 국을 관찰합니다.


연암은 호방한 성격의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는 기회만 되면 중국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중국말을 못 하니 통역이 없을 때는 공책과 붓을 가지고 다니며 필담을 나눕니다. 밤이면 몰래라도 숙소를 빠져나와 다양한 사람을 만나려고 합니다. 말이 통하는 상대면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까지 합니다. 그런 식으로 상인, 학자, 관리 등을 만나 붓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장사꾼이라도 지식이 깊은 걸 보고 감탄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대개는 말이 통해 상당히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갑니다. 연암의 필력과 인간적인 깊이를 알아본 중국인들은 한두 번 만난 연암과 헤어지는 걸 늘 아쉬워합니다. 연암은 술을 좋아하고 주량도 상당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열하에서 밤에 홀로 나와 술집으로 향합니다. 오늘은 누구를 만나 필담을 나눌까 기대했겠지요. 그런데 술집에 들어가니 손님들이 인상도 험악하고 분위기가 싸해서 공포가 밀려듭니다. 그들이 홀로 온 연암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연암은 저자들이 어떻게 나올까 경계하며 머리를 굴려봅니다. 가게에서 작은 잔과 술병을 내다 주는데 연암은 잔이 왜 이렇게 작냐며 큰 잔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큰 잔에 독한 술을 가득 따라 연거푸 단숨에 마셔 버립니다. 조그만 잔에 여러 번 입을 가져가며 연암을 관찰하던 그들도 조금 놀랜 거 같습니다. 연암은 자신의 영웅호걸 행세가 약간 먹힌 거 같아 흡족해하며 주문한 술을 재빨리 마시고 술집을 나섭니다. 사실은 여전히 무서웠던 거지요.


티베트 황교의 지도자 판첸라마를 만난 일화도 재미있습니다. 열하에서 건륭제가 조선 사신단에게 판첸라마를 만나 예의를 표하라는 명을 내렸을 때 사신단은 전체적으로 난감해합니다. 유학에 몰입된 조선 시대 양반 체제에서 불교 지도자에게 예를 올린다는 것이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던 거지요. 다들 난감해하는데 연암은 속으로 기대감에 가득 찹니다. 건륭제가 스승으로 대접하는 판첸라마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겁니다. 한편으로는 유학이 절대 진리는 아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겠지요. 건륭제가 판첸라마에게 금각을 지어주고 스승으로 대우하는 것은 건륭제가 불교를 믿기도 하지만 황금 전각 안에 판첸라마를 가두고 그를 감시하려는 고도의 정치외교적 전략이라는 걸 연암은 간파합니다. 티베트의 양대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판첸라마 중 중국에서는 오늘날에도 판첸라마만을 인정하고 있지요.


연암은 요동의 광활한 벌판과 만리장성의 자연 풍경을 보며 감탄합니다. 조선은 청나라 오랑캐를 비하하고 멸시할 게 아니라 그들의 좋은 풍습과 제도를 배우고 조선의 잘못된 습속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업과 공업으로 백성의 후생을 증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암은 실제로 오랑캐 땅을 보고 오랑캐 사람들과 만나면서 조선의 고리타분함을 안타까워하며 이용후생의 철학을 더욱 깊게 가지게 됩니다. 새로운 공간과 장소에 낯설어하지 않고 객관적인 눈으로 그곳의 사물과 사람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자유인의 마음을 가져야 가능합니다. 연암은 열하일기에 창대와 장복이라는 하인을 상당한 비중으로 다룹니다. 그 둘은 순박하고 단순하며 착한 하인들인데 연암은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묘사합니다. 견마 잡이 창대가 강을 건너다 말발굽에 밟혀 부상을 당해 낙오하게 되는데 나중에 청나라 제독의 도움으로 재회하게 됩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연암은 남의 나라 하인에게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준 청나라 제독에게 감명을 받습니다. 연암이라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똑같이 행동할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인들을 생각하는 연암의 마음은 따뜻함으로 가득합니다. 연암이 하인들과 나누는 격의 없는 대화를 보면 우리가 신분사회의 습속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연암은 학문이나 역사에 대해서도 자유인입니다. 그는 관우 사당이 공자 사당보다 많다는 걸 알고 놀랍니다. 공자 묘가 3000 개 정도일 때 관우 묘는 30만 개가 넘었다고 하네요. 삼국지의 영웅을 지나치게 미화해서 관우를 학문의 신으로까지 모시는 걸 보고 연암은 불편해합니다. 지나친 우상화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연암의 생각입니다. 그는 공자의 말씀조차 절대적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절대적 유교국가 조선의 선비가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유인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에이머 토울스 Amor Towles의 <모스크바의 신사>의 주인공은 러시아 혁명 이전의 귀족입니다. 혁명이 일어나고 그는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 주거 제한을 당합니다. 정부의 감시 하에 그는 제한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법적인 자유를 구속당한 거지요. 하지만 그는 직업도 할 일도 없는 자유인입니다. 주인공이 연금당하기 전에 심문을 받는 내용으로 소설이 시작하는데 직업을 묻는 조사관에게 주인공은 "신사는 직업을 가지지 않소"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자칭 신사이며 자유인입니다. 이 장면에서 연암과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스크바의 신사에게는 다행히 숨겨놓은 돈이 제법 있습니다. 호텔 내의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호텔의 일부 종업원들, 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몇 사람과 얘기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어린 여자 아이를 맡아 보호하게 되는 데 이로 인해 많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주인공이 해결해나가는 스토리입니다. 주인공이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 자유로운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자유인이란 결국 마음과 사고방식이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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