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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Oct 08. 2021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주역의 두 조각 이해하기

주역이란 신비한 책이 있습니다.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대장동 사태를 주역에 비추어 보고자 합니다. 역경이란 사서오경의 하나로 동양철학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문헌입니다. 주나라 때 정리된 형태로 현대까지 전해져서 통상 주역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역이란 변화를 뜻합니다. 주역은 말하자면 변화의 원리를 말하는 책입니다. 행운이든 불운이든 변화하기 때문에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주역은 기본적으로 점을 치기 위한 점서이지만 공자 이래로 철학서로서의 의미가 더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화천대유나 천화동인은 주역에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처음 들었을 말이겠네요. 회사 이름 각각이 주역의 64괘 중 하나입니다. 화천대유란 크게 가진다는 뜻이니 부동산 시행사 이름으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이름입니다. 아마도 주역에 밝은 조언자가 회사명으로 추천했나 봅니다. 크게 돈을 번다는 뜻이니 회사 경영과 관련된 인물들은 박수를 치고 좋아했으리라고 봅니다.


주역은 음양의 원리를 바탕으로 합니다. 음양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기호와 숫자를 사용하는데, ⚋ 는 음을 나타내며 ⚊ 는 양을 나타냅니다. 음과 양의 기호 세 개를 조합해서 기본이 되는 팔괘를 만들었습니다. 건乾☰ 태兌☱ 리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이 그것들입니다. 이들은 순서대로 하늘, 연못, 불, 우레, 바람, 물, 산, 그리고 땅을 상징합니다. 태극기의 괘는 이 중에 건☰, 이☲, 감☵, 곤☷ 乾離坎坤 네 개를 사용했습니다. 기본 괘를 두 개 쌓으면 음과 양의 기호 6개가 결합되어 그 조합으로 64괘卦가 됩니다.


대유 괘는 하늘 위에 불이 일어나는 형상으로 강렬하게 부가 일어나는 걸 상징하고 있습니다. 건☰ 위에 리離☲ 가 위치한 형상입니다. 천화동인은 화천대유와는 위아래가 바뀐 모양으로 하늘 아래 불이 타오르는 형상입니다. 하늘 아래 모닥불이라도 피우면 사람이 모여들지요.  동인이란 동지라는 뜻입니다. 대동단결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 화천대유 관계자의 말로는 평소에 존경하는 형님들을 고문이나 임원으로 모셨다고 하던데, 저는 이 말을 듣고 이 건은 정치적 사건이라고 느꼈습니다. 회사 이름 두 개가 그 자체로 어떤 선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유란 돈뿐 아니라 큰  권력을 가지는 것을 뜻합니다. 즉 동인들을 모아서 큰돈을 만들고 큰 권력을 차지하자라는 것이 사건의 배경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회사 이름으로 이렇게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는 않습니다.


동인이나 대유는 기본적으로 좋은 뜻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국가와 국민들을 위한 큰 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주역에는 무조건 길한 괘도, 무조건 흉한 괘도 없습니다. 행운이 실현되고 흉한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늘 조건이나 전제가 있습니다. 대유 괘는 대단히 길한 괘이지만 무조건 좋은 일이 실현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큰 일을 이루는 주체가 군자여야 한다는 것이 전제입니다. 소인은 불가하다는 것이지요.


주역에서 말하는 군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기본적으로 훌륭한 지도자가 될 자질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보다는 전체의 이익을 보호하는 사람입니다. 경박하지 않고 권위를 앞세우지 않으며, 품위가 있는 사람입니다. 권력이 있다면 그것을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경륜과 경험이 있어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며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남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군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소인은 군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입니다. 소인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대의를 위해 사람들이 모이면 동인입니다. 모임이 소규모 집단의 개인적 축재나 권력을 위한 것이라면 동인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냥 패거리일 뿐이지요.  


대유의 괘사는 '근본적으로 형통한다'는 뜻입니다. 괘사의 말대로 크게 돈을 번다는 뜻이지만 대장동에서 큰돈을 번 사람들은 주역의 깊은 뜻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괘를 이루는 6개의 음양 부호가 있다고 했지요? 그 하나하나를 효라고 합니다. 첫 번째 효부터 여섯 번째 효까지 변화의 단면들을 보여줍니다. 대유 괘의 세 번째 효에 '소인은 감당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역에 의하면 나라와 백성을 위한 대의가 아니고 개인들의 사리사욕이 목적이었다면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동인의 괘사 '동지들이 들에 나가 모이면 형통하다. 큰 강을 건너면 이롭다. 군자가 바르면 이롭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큰 일을 도모하더라도 군자가 바르게 해야 이롭다는 것입니다. 소인 패거리가 모여 개인적 이익을 위해 작당을 하면 스캔들일 뿐입니다. 회사의 이름이 평범했다면 감추기 쉬웠을 텐데 그들은 화천대유나 천화동인 같은 거창한 이름으로 자신들의 의도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수사가 진행되어 사실이 어느 정도 밝혀지겠지만 현재까지 나온 제한된 정보만으로도 사태의 내용을 짐작하기에는 어렵지 않습니다.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일입니다. 누가 대선후보로 나오든 군자의 자질이 있는 후보를 국민들이 알아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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