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가 쓴 <어제의 세계> Die Welt von Gestern는 루소의 자서전과는 대조적인 면이 많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유태인으로 오스트리아의 전기 작가로 유명하며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유럽 신사의 도시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젊어서부터 문인으로 인정을 받아 상당한 인세 수입이 있었습니다. 평전의 작가로 유명한 그가 자서전으로 쓴 <어제의 세계>는 그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쓴 책입니다. 이 책은 그의 유서로 시작합니다. 그는 제1,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며 암담한 유럽의 상황을 비관하고 부인과 함께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브라질로 이주한 뒤였습니다. 그가 유서에 적었듯이 ‘자유로운 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마지막 의무’를 다하기 위해 시대의 증언을 적었습니다. 20세기의 가장 불행했던 시대를 겪으며 자신이 목격한 두 개의 전쟁과 그가 만났던 시대적 인물들에 대해 묘사합니다, 그가 느꼈던 인간적인 고뇌 속에서 우리는 역사와 인간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루소가 자기가 평생 성취한 저작들을 앞에 두고 자신의 불행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넋두리를 자서전에 적었다면 츠바이크는 가장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자기가 교류했던 사람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그렸습니다.
<어제의 세계>는 20세기 유럽 문화사라 할 만큼 당시의 사회상과 유명한 문인, 예술인들에 대해 관찰자의 입장에서 매끄럽게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츠바이크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처음 느낀 것은 글을 참 깔끔하고 세련되게 쓰는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의 작품이 왜 많이 안 알려져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글로 쓰는 거의 모든 장르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작가였던 듯한데 말입니다.
츠바이크는 빈 대학교를 다니다가 전통에 충실한 나머지 시대에 뒤떨어지는 교육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학교 생활보다는 자유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의 첫 번째 목표는 시집을 출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첫 시집이 바로 성공작이 되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신인의 시집에 찬사를 보냈고 막스 레거 Max Reger가 자신의 작곡을 위해 6개 시를 사용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츠바이크는 시와 산문을 쓰는 문인이 됩니다. 몇 년 후 그는 세상과 진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자각하고 외국어 번역 작업과 함께 다른 나라에 여행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번역이 고귀한 예술을 매개하는 겸허한 작업이라고 그는 생각했고 이를 통해 인내의 미덕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베를린 대학에서 본인의 말에 의하면 벼락치기 공부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영원한 청춘의 도시 파리로 갑니다. 파리에서 츠바이크는 많은 예술가와 문인들과 우정을 쌓아갑니다. 그는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개성적인 논평을 붙이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가 유럽의 양심이라고 칭한 로맹 롤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맑고 친절한 눈을 가졌다. 그 눈은 불가사의하게 사람의 마음을 전하고 선의에 가득한 빛으로 광채를 발했다." 츠바이크는 로맹 롤랑으로부터 역사적 시대를 사는 책임감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고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릴케에 대해서는 "오점 하나 없는 서정시인"이라며 헤아릴 수 없는 감수성과 민감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평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주제라도 릴케가 말하면 생생하고 중요한 모습을 취한다고 말했습니다. 츠바이크는 한 번은 로댕의 초대를 받고 그의 무아지경 속의 작업 광경을 지켜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츠바이크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언제나 친절하며 실 생활에서 검소하다."
벨 에뽀끄 시대의 풍요로움으로 힘의 과잉 상태가 되었고 피의 본능을 분출시키려는 욕구가 로맨틱한 환상과 결합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으로 츠바이크는 보았습니다. 실제로 당시 남자들은 영웅을 꿈꾸며 참전했다고 합니다. 츠바이크는 전쟁이 끝난 후 잘츠부르크로 귀환해서 무지막지한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 붕괴되는 걸 보고 가슴속에 영원을 추구하는 예술에 대한 열정에 몰두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2차 세계 대전이 또 일어난 겁니다. 전쟁이 얼마나 야만적인 것인지를 알고, 지난 전쟁에 대해 환멸을 가진 세대가 또 전쟁을 일으키다니, 그는 정치인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좌절하며 이제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극단적으로 비관적이 되고 맙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당대의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과 교제를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교제 활동이 츠바이크 자신의 창조 작업에 장애요소가 되었을 겁니다. 관심사가 많다는 것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는 장편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지만 30년 간 쓰지 못합니다. 츠바이크는 1차 대전 후 독일의 재건 장관이자 외무 장관이던 발터 라테나우 Walther Rathenau의 영향을 받아 현실로 눈길을 돌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문학의 지평선이 역사로 확대된 것이지요. 츠바이크는 자신의 친한 친구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말없는 여인>의 대본을 쓰기도 했는데 초연 때 프로그램에서 유태인인 츠바이크의 이름을 삭제하라는 나치의 압력이 상당했다고 합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끝까지 반항했다고 하지요.
츠바이크는 훌륭한 문학 예술인과 사귀는 걸 좋아하고 시나 작곡의 원본, 문인의 원고, 그림 등을 수집하는 취미도 있었습니다. 괴테의 자필 시, 베토벤의 작곡 스케치, 발자크의 교정 원고, 이런 것 들이지요. 로맹 롤랑은 <장 크리스토프>의 원고를, 프로이트는 논문 하나를 기증하는 등 친구들도 수집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풍요로운 인간관계 속에서 츠바이크는 아마도 본인의 작품 활동에 집중할 시간이나 절박함이 모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루소가 인간관계에 환멸을 느끼고 고독하게 사색하고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분투해서 문제작들을 써낸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루소는 인간관계 때문에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저술에 집중했고 위대한 작품도 몇 개 남겼습니다. 츠바이크는 위대한 저술은 남기지 못했지만 개인적 삶이 행복한 인간관계로 넘쳤습니다. 하지만 츠바이크도 훌륭한 저서를 여러 권 남겼고 특히 그의 자서전 <어제의 세계>는 위대한 저술은 아닐지라도 좋은 책임에 틀림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