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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등젬 Mar 26. 2024

미국 시골 캠퍼스에서 알바 구하기

뭐든 시켜만 주세요

미국 유학 비자인 F1 비자로는 교내에서만 합법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 어차피 내가 있던 학교는 깡촌이라 캠퍼스 밖에선 일을 구할 수 있는 곳도 없어 보였다. 문제는 캠퍼스 자체가 작아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가져갈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았다는 거다. 영어가 완벽하지도, 뛰어난 스킬이 있지도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훑어본 결과, 매우 탐나는 자리가 몇 개 있었다. 조용한 곳에서 자리를 지키는 도서관 헬퍼, 몸이 저절로 좋아질 것만 같은 학교 헬스장 헬퍼, 그리고 간단한 마케팅 자료를 디자인하는 마케팅 인턴. 학생들 사이에서도 꽤나 경쟁이 치열하고 자리가 자주 나지 않는 인기 알바들이었다. (갈 때마다 기존 아르바이트생들과 안부를 물으며 꼭 공석이 생기면 알려달라고 몇 번을 말하곤 했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학교 캠퍼스가 셧다운이 되기 전까지 그 어떤 자리도 나지 않았다.)


인기는 별로 없지만 일자리가 자주 나는 알바는 뻔했다. 아무리 직업엔 귀천이 없다지만, 내가 결코 기피하고 싶었던 알바.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스스로에게 어떤 냄새가 나는지 온몸을 킁킁거리게 하는 알바. 보람도 없고 재미도 없을 것 같은 알바. 20대 후반이 돼서 하기엔 내 머리가 너무 커버린 것 같은 알바... 바로 카페테리아 알바였다. 라면도 잘 못 끓이는 내가 주방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 주방 밖에서 주문을 받고, 음식을 담아주고, 재고를 채우는 서버일을 하게 됐다. 가장 기피하던 일이긴 했지만, 기다리던 공석이 나서 일을 시작해 보겠냐는 연락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드디어 나에게도 일자리가 생긴 것이다. 돈을 벌겠구나!


첫 출근을 하던 날은 꽤나 주눅이 들어 있었다. 커다란 칠판에 가득 적혀있는 메뉴 중에 반은 처음 들어보는 음식이었다. 미식가도 대식가도 아닌 나에게 음식은 항상 관심 밖의 무언가였다. 카페테리아를 관리하던 중년의 백인 남자 매니저 두 명은 어차피 하다 보면 금방 외울 테니 조급해할 필요 없다고 날 안심시켰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어리바리하게 내 몫을 못해내는 걸 죽을 만큼 싫어하는 나에게는 전혀 안심이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매니저들의 관용정신을 확인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비동양인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유난히 어려 보이는 외모도 한몫을 한 거 같다. 어떤 실수를 해도 아직 사회초년생이니 봐줄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게 느껴진달까. 나름 한국에서 꽤나 프로페셔널한 필드에서 직장생활도 했었지만, 어리게 봐준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지 뭐.


날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7월쯤 시작해 이듬해 3월 코로나로 학교가 셧다운이 될 때까지,  반년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카페테리아는 내 학교생활의 꽤나 큰 조각으로 남아있다. 생각지도 못하게 분노하고 아팠던 에피소드부터 아직까지도 연락하는 친구를 남겨준 우당탕탕 미국에서의 내 첫 일자리. 뜻이 있는 곳에 일이 있다고, 내가 기피하려 해도 나에게 찾아와 준 일자리에게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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