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등등젬 Mar 02. 2024

내 병명은 내가 알아낸다.

고마워 네이버야

'강직성 척추염'


이 이름을 가장 처음 접한 건 인터넷이었다. 점점 진해지고 잦아지는 통증의 원인을 그 어떤 의사보다 내가 먼저 알아냈다. 병원을 안 다닌 것도 아니다. 아플 때마다 겨우겨우 한걸음을 내딛으며 다닌 병원만 해도 셀 수가 없다. 집 앞에 있는 한의원과 정형외과부터 소문으로 들은 용한 침술사, 강남에 큰 사거리에 떡하니 자리한 큰 병원까지 다 가봤다. 딱히 시원한 답변이나 병명보단, 의사의 견해를 듣고 다양한 치료법을 시도해 보는 시간이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을 나 스스로 증명해 낸 것이, 정말 너무 아플 땐 '아 꼭 걷는 게 편해지면 더 큰 병원을 가봐야지' 했다가도, 통증이 사라지면 다음으로 미루고 미뤘다. 


이런 나를 대학병원 류머티즘과로 안내한 건 강남 사거리에 위치한 병원에서의 경험이다. 밤낮으로 통증이 너무 심해 일상생활은 고사하고 잠도 잘 수가 없었고, 급하게 인터넷에서 주문한 목발에(내 꼬락서리를 본 친구들이 생일에 해준 선물이다) 몸을 지탱해 겨우 최소한의 이동을 할 때, 나의 스트레스는 내가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갔다. 정말이지 이 고통을 끝낼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척추를 전문으로 한다는 화려한 광고를 하는 병원에  거의 실려가듯 입원했다. MRI를 찍어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자 했다. 절뚝절뚝 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탈 때 양옆으로 비켜주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선 '어찌 젊은 처자가 이리 걷지도 못하게 아프냐'며 걱정 어린 관심을 던지셨다. 


입원을 한 날 밤에도 고통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병원이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간호사님을 호출했고, 진통제를 수액으로 맞았다. 척추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서조차 내가 제일 아파 보였다. 병원 내에선 아예 휠체어를 빌려 이동했다. 샤워는 꿈도 꿀 수 없었고, 한깔끔 떠는 나에겐 그것조차 고문이었다. 사고가 나서 입원한 환자들이 부러웠다. 시간이 지나면 나을 테니까. 나도 정확한 병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MRI 결과는 아침 일찍 나왔다. 스캔을 보며 설명을 해주신다 하여 아픈 몸을 질질 이끌고 겨우겨우 의사 선생님이 계신 곳까지 걸어갔다. 몇 미터 되는 거리를 오만상을 찌푸리며 달팽이의 속도로 걸어오는 젊은 의사 선생님 얼굴엔 의아함과 안타까움이 섞여있는 듯했다. 몇 발자국만 걸으면 내가 왜 이렇게 아픈지 알 수 있는 걸까! 엑스레이로는 수도 없이 봐온 나의 척추. MRI로 보니 초면이었다. 제발 여기에 나의 병명과 치료법이 담겨있기를. 


"이게... 깨끗해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 아무런 문제가 없다니. 디스크도 없고 눌린 신경도 없고 너무 깨끗하다며, 평생 가져가야 할 만성요통이라 했다. 내 척추를 티본스테이크에 비유하며 코어힘을 키우면 아무 문제없을 거라며 운동을 권장했다. 마약성 진통 패치를 처방해 줄 테니 너무 아프면 잘 때를 제외한 시간에 붙여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농담이 섞인 대화를 나누면서도 원인이 없는 만성요통이란 말에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아있던 희망이 사라진 느낌. 


그날 집으로 돌아와 미친 듯이 인터넷을 찾아봤다. 그전에도 몇 번 스치듯 본 강직성척추염이 유난히 눈에 더 들어왔다. 증상 하나하나 내 얘기가 아닌 게 없었다. '만성요통'을 진단한 병원은 카카오톡 상담 서비스를 시행중였던차라 고민고민하다 메시지를 보냈다. 


"인터넷을 보니 저의 증상들이 강직성척추염인 거 같은데... 혹시 그럴 가능성은 없나요?"


며칠 후 답장이 돌아왔다.


"강직성 척추염은 MRI나 X-ray로는 모르기 때문에 확인 원하시면 내원해서 혈액검사 후 결과확인 가능하십니다."


후. 또 그 병원을 가야 한다니. 거리도 꽤 있던 병원인지라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퇴원하며 맞고 온 진통제 덕에 멘털이 조금 튼튼해져 있던 찰나였기에,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에 최대한 빠르게 예약을 해서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난 평생 그 통증을 '만성요통'이란 이름으로 가져갈 수 없었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