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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읽는구십년생 Nov 11. 2020

전하지 못한 축의금은 조의금이 되었다

일상의 발견

"00이가 죽었대."


지난 2월, 언론고시생 시절 함께 스터디를 했고, 같은 해 타사에 입사했던 동기가 하늘나라로 갔다. 동기가 결혼한 지 나흘 째 되는 날이었다. 신혼여행으로 간 몰디브에서 물놀이를 하다 사고가 났다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동기에게 카톡을 보냈다. 1이 사라졌다. 부고 소식을 전한 친구에게 억지를 부렸다.


카톡보냈는데 읽었어. 00가 세상을 떠났다는 게 정말이야?


친구는 이미 자신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다는 듯 대답했다.


부인이 보는 걸거야...


처음엔 당황스러움이 슬픔보다 더 컸다. 아직 죽음이 낯선 나에게 동기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은 충격이었다. 게다가 신혼여행에서의 사고라니. 내 동기는 그런 참변을 당하기엔 너무 착하게 살았다.


사람이 살면서 평생 채워야 할 '지랄 총량의 법칙'이 정해져 있다는 것처럼, '선행 총량의 법칙'도 정해져있는 걸까. 처음으로 착한 사람이 더 세상을 일찍 떠난다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글을 참 잘 썼다. 하지만 젠체 하지 않았다. 스터디원들이 그의 글솜씨에 감탄할 때마다 늘 멋쩍어했다. 하지만 남을 칭찬할 땐 아낌이 없었다. 신기하리만치 우연히도 어쩌다 한번 뉴스에 출연한 날 발견하고는 "이쁘게 나왔다"며 먼저 안부를 물었다. 별 거 아닌 단독 기사에도 그는 "살살해라"는 농담을 던지며 치켜세워줬다. 나는 그 앞에서는 맘껏 철없는 여동생처럼 굴었다.


장례식장에 가며 난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첫째, 나보다 수 천배는 힘들 고인의 가족 앞에서 눈물을 내비치는 것이 죄송해서였고 둘째, 결혼식에도 가지 않았던 내가 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동기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내 스케줄러에는 동기 결혼식 날 일정이 여전히 비어있다. 일이 정신 없다는 이유로 깜빡했던 것이다. 결혼식장에 도착한 친구에게 부랴부랴 축의금 전달을 부탁했지만 하필 ATM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난 집들이 선물로 대신해야겠다며 얼버무렸다. 하지만 영정 사진 속 그는 또, 사람 좋은 웃음으로 날 맞이하고 있었다.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절을 하는둥 마는둥 한채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숨죽여 울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한 동안 나는 잠을 제대로 못잤다. 한 번은 동기가 꿈에 나와 울었다. 손은 차가웠다. 나는 꿈에서도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았다. 순간을 놓칠 새라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씽긋 웃었다. 꿈에서 깨고도 한 동안 뒤숭숭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힘들어하는 걸 그가 바라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기의 생각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도, 내 이기심 때문이란 합리화를 하며 동기의 카톡 아이디를 '숨김' 처리 했다. 카톡 채팅방도 지웠다. 그의 부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요즘 난 편히 잠에 든다. 유품을 소각하는 것이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로하는 일이라지만, 사실은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이 일상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알고보니 난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지극히 전형적인 '애도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내 감정을 소화해내느라 꽤나 별나게 굴면서 그를 안녕히 보내주는 일에 소홀했던 것 아닌가, 생각하다 다급히 그 생각조차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의 부고 기사 달린 댓글들을 다시 읽어봤다.


이제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항상 유쾌하고 따뜻한 마음 그대로 있어줘. 사랑하는 내 친구야. 청춘 속에서 함께 성장한 나의 동지야. 그곳에서 꼭 행복하렴. 먼훗날 다시보자.


선배 늘 고마웠어. 고마운 마음 하나 제대로 표현해주지도 못해서 미안하고 후회스럽다 그냥. 받은 것만 잔뜩이다. 사실 아직도 안 믿긴다. 어디서든 행복하길 바릴게. 고마워. 미안해. 고마워.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있었다. 소리내어 애도하는 일이 결코 별난 것이 아님을, 오히려 진심어린 애도의 과정이라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8달이 지난 뒤에야, 나도 그의 부고기사에 댓글을 남기고 평안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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