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의미로 맨홀은 땅속에 묻은 수도관이나 하수관, 배선 따위를 검사하거나 수리 또는 청소하기 위하여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만든 구멍이다. 전세계 어디에도 맨홀이 없는 도시는 없다. 보통의 맨홀이라고 하면 어둡고 칙칙한 느낌의 쇠붙이지만, 일본에서는 이러한 맨홀을 포인트로 이용하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바닥과 비슷한 색감이나 무늬로 맨홀을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설치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다르게 일본 전국 곳곳을 여행하다 보면 여러가지 색깔과 문양으로 장식된 맨홀들을 만날 수 있다. 맨홀의 기능적인 부분을 뛰어넘어 도시 디자인의 역할까지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일본의 맨홀을 구경하러 여행오는 관광객들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맨홀에 대해 소개하고 연구하는 일본 서적들도 출간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맨홀에 가장 많이 표현되는 것은 각 지역의 유명장소와 심볼이다. 벚꽃 명소 주변에서 분홍 빛의 벚꽃 문양 맨홀을 발견 할 수 있는 이유다. 기억에 남는 맨홀 문양으로는, 나라 현의 사슴 문양 맨홀, 형형색색 아름답게 칠해져 있던 오사카 성 문양의 맨홀, 포트타워와 바닷가의 풍경이 담겨 있던 고베의 맨홀이 기억난다. 결국 길바닥을 보면 그 지역의 명물이 무엇인지 단숨에 알게 되는 것이다. 길바닥의 관광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맨홀을 통해 먼저 명물을 확인하고 몇 걸음 걷다 보면 그 실물을 눈 앞에서 마주하게 되니 여행의 재미가 한층 더해진다고 생각한다.
더러운 하수구를 덮는 뚜껑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하나의 도시 디자인으로 기능을 하고, 더욱이 그 디자인에 고심한 흔적과 완성도가 더해지니, 관광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고 있다. 어쩌면 대단한 공공 시설물이나 대형 설치 작품들 보다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도 서울, 경주, 부산, 제주 등 이러한 맨홀 디자인을 적용 가능한 도시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부터 시선이 향하게 만드는 디자인, 정말 멋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