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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Oct 04. 2021

딸이 용돈을 주었다.

바빠서 미안하다.

어느 날 책상 위에서 딸의 편지를 발견했다. 

가끔 장난스레 편지를 잘 남기던 딸이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편지 내용을 보고 살짝 당황했다. 편지 속에는 딸이 아빠에게 주는 용돈 이 천 원이 들어있었다. 

편지 속에 꼬깃꼬깃 접혀있는 이 천 원을 보고 든 감정은 '당황'이었다.


"왜?"

 도대체 왜 딸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냥 귀여운 이벤트로 볼 수도 있었지만,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가 더 궁금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빠는 돈이 없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건 아닌가였다. 우리 부부는 아내가 돈 관리를 하다 보니 아이들이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를 때마다 '아빤 돈 없다. 나중에 엄마한테 이야기하자.'라고 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한테 아빠는 돈이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다고 아빠한테 돈을 줄 생각을 하다니? 아빠가 불쌍해 보인 걸까? 그게 아니면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준 걸까? 다들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지 않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냥 이유 없이 뭐라도 챙겨주게 되는 경험 말이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돈에 대한 개념이 없나? 

 혼자 슈퍼에서 물건을 살 줄 아는 첫째가 돈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보긴 어렵고, 가급적이면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였으면 좋을 것 같다. 아빠가 불쌍해서 준 것이라면 슬픈 것도 슬픈 것이지만, 아빠로서 잘못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이유를 알 수 없어 궁금증이 남아 있던 중에 우연한 기회에 아이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딸에게 용돈을 받고 며칠 후 아이들을 재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아들이 물었다.


(아들) "아빠 근데 왜 엄마 아빠는 매일 바빠?"

(아빠) "음 어른이 되면 너희가 어린이집 다니는 것처럼 해야만 하는 일이 많아. 그리고 아빠 엄마가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너희가 학교도 다니고, 학원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장난감도

          사고 그러지."


 그때 이 말을 듣고 있던 딸이 자기가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서 아빠 엄마가 살 집을 마련해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아들도 자기돈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며 둘이 쿵작이 맞아 좋다고 시시덕거렸다. 이건 또 뭔 생뚱맞은 흐름인가 싶어 아들에게 물었다.


(아빠) "왜 돈을 많이 벌고 싶어?"

(아들) "우리가 돈을 많이 벌어서 아빠 엄마 안 바빴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듣고 나니 왠지 아빠에게 용돈을 주고, 집을 사주겠다는 딸의 행동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은 착하게도 바쁜 아빠와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빠와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에, 자신들이 돈을 벌면 되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 모양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더 이상 아이들한테 이어서 해줄 말이 없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긴 했지만 뒷 맛이 씁쓸했다. 모든 부모와 아이들이 겪는 문제겠지만 그렇다고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는 없다. 아이들이 안쓰러운 것보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앞으로도 개선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아이들이 커갈수록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노라 약속할 수는 없다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곤 조금 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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