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한동안 잊고 살던 글을 다시 쓰게 된 것은, 고시 낙방의 상처를 않은 채 입대를 했던 28살 때였다.
늦은 나이의 군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적당한 가혹행위와 불완전한 위계질서 속에서 나이 많은 이등병은 적응을 위해 성질을 죽여야 했다. 성질 같으면 뒤집어엎고 싶었지만 뻐근해지는 뒷목을 수 차례 견뎌야 했다.
그러다 보니 군 생활 내내(진급 이후에도) 부대원들과 적당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했다. 한 살 어린 동생이 후임으로 있었지만 막상 속을 터 놓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물며 본인이 지금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는 20대 초반의 치기 어린 동생들과 어울리기엔 간극이 컸다.
그렇게 시간을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엔 마음을 어지럽히는 복잡 생각을 정리하고 쏟아낼 창구가 필요했고, 그 부분에 있어서 일기는 꽤 효과적이었다.
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엔 20대 안에 결과를 내지 못하면 인생이 끝날 것만 같았다. 모든 사고는 시험 합격과 성공에 집중되어 있었다. 단 한 번도 30대의 삶(성공이든 실패든)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 당시 나의 세상은 29살이 끝이었다.
그래서 영장을 받던 그 순간부터 전역 후 서른 살의 삶이 공포스러웠다. 이카루스처럼 땅으로 추락해 두 발이 묶인 듯한 낯선 느낌에 조급했고 절박했다. 군 복무 때의 일기 속엔 그런 불안과 후회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박살난 자신감, 추락한 자존감은 사람을 나락으로 이끌었다. 삶의 기반은 무너져 내린 것 같았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꽤나 위험한 상황이지 않았나 싶다. 문득 왜 그토록 대대장이 상담을 자주 하고 살뜰히 챙겨줬는지 알 것 같다. 아무래도 관심병사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상병쯤 되었을 때 신기하게도 마음속의 어둠은 조금씩 걷히고, 상처는 아물어가고 있었다. 조금씩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한 발짝 뒤에서 관조할 수 있었다. 앞만 보고 달리던 레일에서 벗어나 인생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이유가 군 생활의 짬이 생겨서 일 수도, 인간은 망각과 적응의 동물이어서 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가장 큰 이유는 매일같이 쓰던 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생각이 아무리 복잡해도 일기를 쓰면 쓸수록 후련한 느낌과 함께 어질러진 마음이 조금씩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군대라는 환경 속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일기 쓰기에 집착에 가깝게 매진했다. 하루 종일 무엇을 쓸지에 대해 혼자 사색하고, 내 안의 감정을 살폈다. 매일같이 쓰고 읽고 고치며 생각을 풀어냈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의 정리를 넘어 인생의 목표와 앞으로의 삶의 계획까지 세우기 시작했다.
그때의 일기는 10대 시절의 글쓰기와는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일기’에는 진심이 있었다. 또한 일기를 쓰는 과정을 통해 ‘나’를 반성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란 존재의 정의가 재구성되면서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생생한 실패의 기억을 떨치고 조금은 단단해졌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끝을 모를 고비를 일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극복하고 30대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