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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Apr 20. 2022

[서평]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각자의 사정은 있기 마련이다.

우연히 읽기 시작한 소설이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다. 


독서를 함에 있어 소설은 항상 후순위였다. 세상에는 반드시 '읽어야 할' 인문학 서적이나 전문서적이 너무 많았기에 가뜩이나 책 읽을 시간을 내기도 빠듯한 일상 속에서 소설까지 손을 대기는 살짝 숨차다. 물론 그것만이 소설이 후순위가 된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책을 읽으면 서평을 쓴다'라는 강박에 사로 잡혀 있다 보니 서평을 쓰기 가장 어려운 소설은 살짝 읽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다. 

소설처럼 정답이 없는 해석과 주관적인 느낌을 글로 박제한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특히 인터넷에 수많은 리뷰와 분석이 넘쳐난다는 베스트셀러일수록 그 부담은 한층 더 커진다. 이미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는 소설을 낱낱이 분석하는 리뷰와 도대체 어느 부분에 그런 내용이 있는지 이해할 수 조차 없는 심오하고 허를 찌르는 리뷰 속에서 평범한 직장인은 주눅이 든다.

그럼에도 책을 읽었기에 서평을 쓴다. 조금은 소심할 수도, 부족할 수도 있지만 뭐 어떠랴! 각자의 생각은 다르기 마련이고, 자신만의 사정은 있기 마련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불편한 편의점'은 매 챕터마다 해당 챕터의 화자가 바뀌며 같은 상황을 다르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한 명의 등장인물이 화자일 때와 배경이 되었을 때의 간극을 찾는 즐거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독자는 이러한 장치를 통해 복합적으로 상황을 이해하게 되어 등장인물 각자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전지적 시점의 어드밴티지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순간이다.  

그렇게 등장인물의 사정을 하나씩 이해하다 보면 자연스레 일상 속에서 빈번한 갈등들이 떠오르며 '그 사람도 본인만의 사정이 있던 건 아니었을까?', '내가 좀 더 이해를 하지 못한 건가?' 혹은 '왜 내 사정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 거지?'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끝은 대부분 '그래도 내가 맞지. 그 사람이 잘못한 거야'라며 생각을 털어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와 '공감'이란 단어는 뇌리에 남아 툭툭 화두를 던진다. '불편한 편의점'이 보여주고 싶었던 건 결국 이러한 관계성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사건과 사물이라도 이해와 해석은 각자의 프레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자체를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다음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상대방을 이해하면 된다고 하지만 이는 현실 속에선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서로가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애초에 공통되는 프레임을 가졌다고 봐야 한다. 결국 서로 다른 프레임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해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인 셈이다. 


그보다는 상대방을 '헤아리는 것'이 필요하다. 일방의 입장을 몰아붙이면 남는 것은 갈등뿐이다. 그보다는 각자의 차이점을 전제로 관계를 형성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생각을 어떤 식으로 풀어내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지가 우선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어쩌면 부부 관계가 가장 적절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함께할 부부이기에 한 명이 일방적으로 맞춰주거나 이해를 구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부부싸움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양보하며 합의점을 찾기 위한 여정의 일부다. 부부 중 일방이 자신만의 입장을 내세우며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면 결국 남는 것은 부부싸움뿐이다. 고부갈등, 명절 차례 준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반대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더 나아가 각자의 정신적, 물리적 공간까지 인정해준다면 집안은 더없이 평화롭다. 물론 부부관계에는 힘의 논리도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한 명이 좀 더 이해하는 경향은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합의 없이는 부부관계는 성립할 수가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의 입장을 헤아린다는 것은 어렵다. 아무래도 친분이 있는 사람에겐 넓은 포용력을 보여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될 수밖에 없다. 본인의 생각대로 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릴 땐 자칫 반대로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이 사회의 한 명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길 원한다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러한 노력과 배려는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지도 모른다. '불편한 편의점'의 노숙자처럼 풍파에 떠밀려 본인의 힘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주변 사람의 관심과 한 번의 손길일 수도 있다. 


흔히들 본인의 진정한 내면과 생각이 절대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다지만, 막상 주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어 감동하고 감사해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결국 사람 간에 진심을 다해 부딪힌다면 언젠가는 각자의 생각은 오롯이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주변 눈치를 보기 보단 본인의 신념에 맞게 담담히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다음은 자신만의 입장을 고수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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