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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Mar 11. 2023

[서평]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김혜남

인연이 된다면 펼쳐 보면 좋을

최근 나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련의 신상 변화도 있었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상황에, 몸은 하나둘씩 고장 나고 생각은 많아지고 마음은 심란한 시간이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피폐해진 심신으로는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버거웠고 무념무상 드라마와 유튜브 쇼츠를 뒤적이며 침대에서 뒹구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럴수록 왠지 모를 죄책감이 한편에 자리 잡았지만 뒤죽박죽인 일상 속에서 이 이 악순환을 끊어낼 의지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러한 죄책감을 덜기 위한 조금은 건설적인 방편으로 책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볍게 읽기 쉬운 에세이집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때 우연히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있던 이 책이 눈에 띄었고 큰 고민 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한 장을 읽어나갈 만큼의 집중력조차 없음을 간과했기에, 길어야 3~4장 길이의 에세이 한 편을 읽는 데 며칠 씩 걸렸다. 나름 평생 꾸준히 책을 읽어왔지만 한 편을 완독 하는 데 이번처럼 오래 걸린 적이 없는 것 같다. 책을 펼쳤다가 얼마 못 버티고 내심 포기하며 덮었다가, 생각이 날 때 다시 한 편 읽고 또 한참을 쉬는 과정이 적잖이 반복되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결국은 끝까지 읽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공감대' 때문이었다. 불치병을 안고 인생을 관통해 온 작가가 깨우치고 느낀 것들이 우연치 않게도 지금의 나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막상 책을 덮고 난 후 문득 어느 순간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대입하고는 다시 책을 펼치게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작가가 하는 이야기는 일반적이고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30~40대의 성인이라면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보고 고민했던 내용들이다. 각자 삶의 모습이 천차만별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인생을 관통하는 진리와 메시지는 하나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어쩌면 10대와 20대에겐 인생 선배의 조언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한 번쯤 지나쳤던 인생의 순간들을 다시 확인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굳이 서평까지 쓸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한 편 한 편을 읽어나가면서 의외로 지금의 나에겐 그 확인의 과정들이 필요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 한 번쯤은 이미 경험했고 고민해 봤던 내용이라지만 정작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그것들을 잊고 있었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나를 떠올릴 수 있었고 그런 확인의 과정을 통해 어느덧 생경해진 '나다움'을 다시 한번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책을 읽는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이 도움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상태에서 이 책을 만났다면 하루 만에 완독을 하고 큰 감흥 없이 책을 덮었을 것이다.


사실 이 서평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워낙 오랜만에 서평을 쓰다 보니 문장 한 줄 쓰기가 쉽지 않다. 표현은 투박하고 생각은 정리되지 않는다. 이 짧은 글을 며칠 째 붙잡고 한 줄, 한 단락씩 써가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쓰다 보니 매번 수정의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하루 뒤에 글을 다시 펼치고 보면 새로운 문장이 떠오르고, 그다음 날 보면 좀 더 좋은 구성이 떠오른다. 처음엔 글이 안 써짐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오히려 편안해졌다. 


에세이, 수필이 가지는 가장 큰 힘은 이런 공감대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문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소설이나 시처럼 문학적 가치의 집대성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일상 속에서의 느낌과 깨달음을 깊이 있게 공유하는 그 자체로 그 어떤 장르의 책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렇기에 오랜 시간의 역사 속에서 지금껏 살아남아 꾸준히 사랑을 받는 장르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에세이를 즐겨 쓰면서도 에세이가 갖고 있는 글로써의 위상과 가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었다. 어쩌면 조금은 에세이는 상대적으로 쉬운 장르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결국 글은 궁합이 맞는 독자를 만날 때 비로소 그 위상과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특히나 개인의 경험이 투영된 에세이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균형이 무너졌던 일상은 지금도 조금씩 회복 중이다.


책을 읽고 서평을 한 편 쓰는 시간을 통해 복잡하던 머릿속이 조금씩 정리가 되었고, 생각이 정리가 되기 시작하니 생활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원체 마음이 가지 않으면 억지로 뭔가를 하지 못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이기에 생각이 어지러우면 일상이 무너지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생 마인드컨트롤을 중요하게 여겨왔는데 우습게도 한동안 그것조차 잊고 살고 있었다. 


책에 대한 서평을 쓴다는 것이 어느덧 신세 한탄만 가득 쓰고 말았다. 어쩌다 보니 서평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일기도 아닌 어중간한 글이 되었지만 적어도 솔직한 생각을 담을 수 있어서 나름 만족하는 중이다. 오히려 에세이에 담긴 작가의 생각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에, 독자로써 이 책을 통해 얻어간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나을 듯싶었다. 적어도 내게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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