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가 May 28. 2022

어느 초등교사의 고백

 나는 교문 밖으로 나가고 싶은 초등교사다. 언젠가 공무원을 그만두고 싶어하는 특이한 선생님. 아이들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은 재미, 위기, 감동이 한 곳에 어우러진 별점 10점 만점의 10점짜리 영화와 같다. 신선함을 평가하는 로튼 토마토 지수는 당연 높다.


 잠시 1일 평론가가 되어 분석해보자면 우선 내가 1학년을 맡았을 때 일이다. 어느 날 우리 반 한 아이는 자신과 다른 친구가 ‘우연히’ 같은 년도에 태어나 같은 띠임을 알게 된다. 이 흥미로운 사실을 또 다른 반 친구에게 알리게 되는데.. 세상에 그 친구도 같은 띠인 것이다.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아이는 반 아이들에게 외친다.      


 “혹시 2014년도에 태어난 사람?~”     


 아이는  눈을 믿을  없다. 모든  아이들의 손이 하늘을 찌를 듯이 번쩍 들려있다. 나에게 같은 띠인 사람들끼리 원래 반이 배정되냐며 유레카를 치는 아이. 정말로 신박함  자체다.      


 영화에서 재미를 빼면 섭하다. 유난히 수업이 힘들었던 어느 날, 평소 손아귀힘이 좋다고 부모님께 칭찬 받던 아이가 조심히 나에게 다가와 한마디 건넨다.      


 “선생님, 힘들죠? 내가 안마해줄까요?”     


 고사리 같은 아이의 작은 손을 보자니 안마를 시작하기도 전에 왠지 모르게 미안해진다. 마음만 받겠다고 정중히 거절했지만 이미 내 어깨에 올려진 아이의 손. 조물딱 조물딱 열심히 손을 움직이며 시원하냐고 재차 물어보는 아이에게 과장된 연극배우 톤으로 어쩜 그렇게 잘하냐고 칭찬을 날린다. 사실 한 겨울에 입은 패딩 때문에 아이의 손길은 느껴지지 않는다.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를 안마다. 점점 뭉쳐지는 어깨 쪽 솜뭉치가 한껏 위로 솟아 어깨가 으슥해진다. 아이는 한동안 자신이 그 어느 태국 마사지사보다 실력이 좋다고 스스로 자부할 것이다.      


 보통 가족 코미디 한국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에도 소소한 웃음 뒤에는 클라이맥스가 있다. 고난과 역경을 거친 주인공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감동 스토리라인. 입학식 첫 날에 교실에 들어가기 싫어서 복도에 계속 있는 아이를 위해 책상과 의자를 복도에 배치한다. 알고 보니 유치원 때의 트라우마로 학교에 대한 큰 심리적 부담을 갖게 된 아이. 학교에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글을 떼지 못한 아이를 방과 후에 따로 가르치고, 말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며 묵묵히 곁에서 함께 해준다. 그 결과,      


 “선..생님..”     


 12월 겨울방학식 전,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나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릴 때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아이를 향해 밝게 웃어준다.      

 

 이런 영화를 보면 항상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가 더 재밌는 법. 사실 이 영화의 감독인 내가 이직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심지어 어릴 적에는 학교를 싫어했던 사람이다. 한 가지 기준만을 제시하고 경쟁시켜서 줄 세우는 학교가 싫었다. 그 시절 학교는 줄의 맨 앞에 있는 사람만이 행복할 거란 맹목적인 믿음을 나에게 심어주었다. 이런 내가 어떻게 하다가 초등교사가 되었는지 궁금할 테다.  ‘사건 현장으로 돌아온 잔다르크’라고나 할까. 적어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만큼은 제도권 교육에서 가르치는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알려주고 싶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