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채로 존버하면 그 나름의 결이 생긴다
2018년 여름, 피사에서 열린 European Go Congress 2018 Pisa에 자원봉사 겸 참가자로 참석했다. 내가 대충 유럽 바둑 대회라고 부르는 것으로, 일년에 2주간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다양한 수준의 참가자들이 모이는 유럽에서 가장 큰 바둑 행사다. 진지하게 우승을 겨루는 대회라기보다는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바둑도 두면서 노는 축제성이 강하다. 자원봉사자로 일을 하면 참가비를 안 받는다길래, 참가비를 아낄 겸 봉사자 신청을 했고, 독일에서 몇년 간 바둑대회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 것보다도 많은 바둑인들을 사귀게 되었다. (독일인의 존재하지 않는 사회성을 욕하는 문장임.) 8월의 피사는 무더웠고, 독일의 건조한 여름과는 달리 습한 바다 냄새를 담은 피사의 여름 공기는 한국의 여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다행이 독일도 그 시기 매우 더웠기에, 에어컨 하나 없는 독일에서 떠나 냉방이 돌아가는 시원한 콘그레스 장에서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피사에는 피사의 사탑밖에 없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지 않았던가. 대회장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과의 인사는 "사탑 보고 왔어?" 였다. 며칠을 아직 못 봤다고 계속해서 대답하다가, 쉬는 날에 사탑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아무런 정보 없이 구글 맵 하나를 켜고 사탑을 향해 갔다.
(그리고 피사에 있는 10일동안 사탑을 세 번 보러가게 된다. 과연 그거뿐인 피사 답다.)
피사의 사탑은 피사 대성당에 딸린 탑이다. 본체인 대성당의 데코레이션 같은 부속품이었는데, 맛이 살짝 간 상태로 수 세기를 존버하는 바람에 본체보다도 압도적으로 더 유명해져 버렸다. 그렇게 피사 대성당은 주객이 전도된 상태에서 탑을 보러 온 사람이 한번 들어가보는 부속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피사 대성당도 아름답지만, 탑 만큼의 진귀한 임팩트를 남기진 못한다. 대성당 앞에 펼쳐진 잔디밭에서 사람들은 전부 탑을 손으로 밀거나 탑에 기대는 사진들을 찍느라 안간힘을 다하지만, 나는 대충 인증샷 셀카로 만족하고 돌아서기로 한다.
탑에 오를 수 있는 티켓을 사고 대성당과 근처를 구경하다가 시간에 맞춰 탑 안으로 들어서니 안내 가이드가 간략한 설명을 해 준다. 탑은 1173년 착공 시에는 제대로 서 있는 평범한 탑이었지만, 13세기 들어 지반 침하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한 탑을 총 세 번에 걸쳐 계속 쌓아올린 탓에 자세히 보면 윗쪽은 기울어진 걸 맞추려고 기둥의 길이가 약간 다른 등 안간힘을 다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탑이 기울어지는 건 멈추지 않았고, 완전히 쓰러지는 걸 막기 위해 1990년대 들어 대대적인 공사를 마쳤다. 탑은 그 탓에 조금씩 바로 서기 시작해 앞으로 몇백년이면 다시 우뚝 선 탑이 될 것이라고 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탓에 탑을 오르기는 쉽지 않았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탑을 오르는 건 항상 힘든 일이었는데, 기울어져 있기까지 하니 공포감이 배가된다. 탑 꼭대기에 간신히 오르고 나니 이 기울어진 꼭대기에서 빨리 내려가고 싶어진다. 인증샷과 비디오 몇을 남기고 빠르게 탑에서 내려와 살아남았음에 안도한다. 해보지 않으면 아쉬웠을 경험을 한번 해 봤으니 죽을 때까지 다시는 안 해봐도 됨이 다행이다.
피사엔 사탑밖에 없지만, 사람들이 피사 근처를 지나다가 한번씩은 피사에 들르는 것은 탑 특유의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저게 뭐야'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진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싶은 것이 실제로 가서 보면 저게 뭐야, 왜 저러고 있지, 하는 기분이 매우 강하게 든다. 사진으로 찍어 보면 또 그럴 수도 있지 싶다. 있을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이질감은 사진이 온전히 담기 힘든 느낌이다.
그늘에 앉아 탑을 보고 있으니 어떤 위로를 받는다. 이 탑은 화려하고 대단한 건축물이 아니다. 그저 대성당 옆에 선 탑 하나였을 뿐이다. 피사의 사탑이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게 된 것은 망가질 듯 망가지지 않은 채로 아주 오랜 세월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탑이 아주 멀쩡하게 서 있었거나, 아님 무너져 버렸다면 그 어느 쪽도 신기할 것이 없는 평범한 탑으로 잊혀졌을 것이다. 이 탑의 유명세는 망가짐과 망가지지 않은 경계 속에 그저 아주 오래 서 있었다는 점에서 온다.
피사의 사탑은 삶의 기묘한 대안을 보여준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베르사이유 궁이나 돌마바흐체 궁과 같이 화려하고 웅장한 대단함을 지닐 순 없다. 모두가 아드리아 해나 카파도키아의 독특한 지형처럼 타고난 절경으로 가슴뛰게 만들 수도 없다. 모두가 에페수스나 폼페이 유적처럼 과거의 찬란한 문화와 기술을 보여줄 수도 없다. 사탑이 보여주는 것은, 세상 어떤 것들은 버텨서 대단해진다는 점이다. 세상 어떤 것들은 망가졌기에 독특해진다.
인생은 완벽할 수 없고, 사람은 때로 망가진다. 하지만 모든 망가진 것들이 쓸모없는 것은,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망가진 채로 버틴 것들도 그 시간이 충분히 오래되면 독특한 궤적을 남긴다. 그 망가짐을 일부로 받아들인다면, 완벽하지 않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나의 이상과 현재의 나 사이에서 오는 괴리를 자책하지 않으면, 지금 있는 곳에서부터 딱 한 발짝을 떼기 위한 용기가 생긴다. 그렇게 걸음이 쌓이다 보면 내 길이 생긴다.
그렇게 내가 한때 망가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결이 되고 나면, 내 길을 이정표로 삼는 사람이 생긴다. 이정표를 보지 않고 걷는 사람만이 길을 잃는다. 이정표를 잊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어느샌가 자신의 목표에 가까워져 있다. 그러면 된 것이다. 남의 길을 걷기 위해 아둥바둥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내 길을 걸으면 되는 것이다.
피사 호스텔에 10박 체크인을 하니 스탭이 놀라면서 그런 사람이 또 있었다고, 뭘 하느냐고 물었다. 장기 숙박이 여사인 런던이나 파리에서라면 아무도 놀라지 않았을 테고, 독일인이라면 결코 그런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호기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피사는 습도와 갈매기가 인상적인 여러모로 재미있는 동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