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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먀우 Dec 15. 2022

일본 도쿄 집사카페 다녀옴-2

그들은 프로였다

디즈니를 이틀 갔다. 랜드를 하루 씨를 하루. 디즈니 씨 타워 오브 테러에 줄을 70분을 서고, 소어링에 120분을 섰다. 120분의 시간동안 할 일이 없었으므로 게임 길드 퀘스트를 깨고, 탕탕특공대도 한 판 하고, 집사카페 취소 좌석이 나오는 걸 뮤지컬 좌석 주으러 표 있나 없나 슬렁슬렁 산책하듯이 새로고침을 함.


그런데 아침 10시 30분 1인석 예약이 떴다.


그래서 3일만에 다시 가게 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의 집사카페.



집사카페에 처음으로 다녀온 후 후회와 미련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컨셉을 잡을걸. 저런 얘기를 해 볼걸. 유튜브에서 회사원A님과 에미링이 스왈로우테일에 다녀온 영상을 찾아봤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까 스왈로우테일 10년 전에도 굉장히 항마력 떨어져서 그때 당시 PV 비디오를 보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아직도 PV는 눈 뜨고 못 볼 일인데 여운에 쩔어 아직도 후기 쓰고 있으니 인생 정말 모를 일이다.


여튼 진짜로 갈 생각은 없었음. 진짜임. 근데 일단 취소표가 뜨면 줍고 보는 것이 쁘띠 뮤덕으로서의 습성이 아닌가? 게다가 집사카페 원트를 함께해준 친구도 시간도 좋고 잘됐다며 가서 하고싶은 컨셉질 다 하고 꼭 후기 남겨달라고 함.


그러한 이유로 아침에 일어나 씻고 체크아웃을 하고 이케부쿠로에 다시 갔다. 3일 전에 포켓몬 센터에 대타출동 인형 사러 갔는데 없었어서 원래 스카이트리점에 가보는 것이 이 날의 목표였는데, 집사카페 예약을 잡았으니 포켓몬 센터 메가 도쿄에 다시 가기로 했다.


디즈니 씨에 있는 동안 미련에 쩔어 하루 웬종일 컨셉을 생각했다. 이 날의 목표는 세 가지였음.

1. 엄마 아빠와는 평소에 프랑스어로 대화하기 때문에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하는 오죠사마(영애님)

2. 홈페이지 철자 틀린 것 발견한 것 말씀드리기.

3. 혁명군에 들어가 공화국을 세워야 하는 오죠사마 컨셉으로 가게를 떠나기.


그러나 이걸 육성으로 말하기에는 그 상황이 닥치면 숨고싶어질 것임을 알기에 편의점에서 펜과 노트를 사서 1, 2, 3번 항목을 일본어로 적었다. 사실 가게 안은 스마트폰 사용 금지라 전자사전이나 파파고도 당연히 금지가 되는지라 적고 싶은 거 많았는데... 시간이 빠듯했고 밖은 비가 오다말다 해서 축축했으며 추웠고 딱히 놓고 글자를 쓸 곳도 없었음.


부연설명.

1. 이 집사 카페의 인테리어는 영국 저택 어째고 풍이라고 함. 영국은 한때 프랑스 귀족들이 다 높은 자리에 있었어서 그 잔재로 아직도 영어의 고급 어휘는 프랑스어임. 첫 페이지에 '마마 파파와는 평소 프랑스어로 말해서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하는 컨셉입니다 (한국인입니다)' 라고 적음.

2.

내 안의 독까 유전자가 마이쎈이 뭐가 좋느냐 따지지만 여하튼 고급 도자기 브랜드인 마이쎈 철자가 틀림. Meissen인데 Meisen으로 적혀 있음. 그럼 마이젠이 되잖아요. 둘째 페이지엔 그냥 가타카나로 마이센이라고만 적음.

3.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단어 외움 카쿠메이군...쿄와코쿠...근데 단어 외우는 건 둘째치고 제정신으로는 말할 수 없는 단어임이 분명했음. 이건 단어 한자랑 후리가나만 영어로 적음. 근데 왜 영어로 적었어? 결국 더듬거리고 중요한 순간에 읽지 못했다.


적으려는데 집사님 한 분이 10시 25분쯤에 철문 열러 와서 개 부담스러워서 일단 도망감. 시간이 얼마 없어서 허겁지겁 위 내용들을 네이버 사전 뒤져가면서 적고 28분경에 내려감. 예약 이름을 물어보고 손 소독하고 체온 재고. 난로를 둔 바깥 의자에 잠깐 앉았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의 집사님은 지난번 도어맨이셨던 희끗한 머리 장발분이셨는데 이분 이름 아직 못 외움/찾음(카나자와상). 풋맨은 쿠마가와님. 정중한 자기소개와 인사에 마주 굽신굽신을 하고 외투랑 가방을 맡김. 손에 노트를 들고 있어서 그것도 넣으시라는 말에 제 Cheating sheet라서 안된다고 말하고, 첫 페이지를 펼쳐서 보여드림. 두 분 다 정말 진지하게 읽어주심. 여하튼 대사 하는데는 생각대로 실패했지만 어쨌거나 나 홀로 미션은 성공함. 나만 민망하고 그들은 프로이심.


그리고 집사님을 따라서 가게로 들어감. 10시 반이 개점 시간이었고 나는 두 번째로 들어간 거였음.


근데......거기 모든 집사님들이 가게 테이블 있는 쪽에 일렬로 서서...텅 빈 가게에서..."오카에리나사이마세(돌아오셨습니까)"하고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개점 시간에 가면 어떻게 되는걸까 궁금했지만 난 아직 일이 없으면 굳이 안 나오거나 하는 걸 상상했지 차마 이런 광경을 예상하고 간 것은 아니었음. 정말 장관이었지만 항마력이 딸려서 차마 잘 보고 기억에 남길 생각은 하지 못했음.


그리고...난 인간에 정말 관심이 1도 없어서 몰랐는데 이날의 풋맨이신 쿠마가와님 회사원A님과 에미링님 채널에도 출연한 예능멤이시고 짬도 상당하신 분이셨다. 그 전날 회사원님 영상 보고 갔는데도 못 알아봄. ㅋㅋㅋㅋㅋㅋㅋ 추가로 노래멤이심. MV같은 거 찍어서 올라오는 거 보면 딱 두명이서 다 하시는 것 같은데 (...) 그 두 사람 중 하나임.


https://youtu.be/FxNhcDx0gqg


회사원A님 영상에서처럼 먼저 이런저런 질문을 해주시는 스타일이신 것 같고... 저 버튼으로 누른듯한 기계적인 눈웃음이 너무나 킹받음


일단 10시 반 타임에는 네 테이블만 아마 다 다른 담당으로 입장하기 때문에 되게 한가한 편이라서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해주심. 부담과 긴장과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와 그 모든 것으로 인해 뒤틀려가고 있었지만 하지만 이까지 와서 이렇게까지 한 순간 어쩔 수 없었다. 퇴장 직전에 멍하니 다른 테이블 일 하시는 거 구경한 거 보면 초반이 굉장히 한가한 게 맞았음. 나갈때쯤엔 네다섯테이블정도 담당하고 계신 것 같았음.(추가.6개월 관찰 결과 두세테이블 맡으심)


처음 왔냐고 물으셔서 두번째로 왔고 3일 전에 왔는데 재밌어서 또 왔다고 했음. 전에 어디 앉았냐고 물으셔서 저기 제일 큰 테이블에 앉았다고 하니까 기억난다고 오늘 모시게 되어서 기쁘다고 하심.


오늘 춥냐고 물으셔서 이날 비오고 배고파서 춥긴 한데 한국이 더 춥다고 함. 자기가 한국 갔을 땐 영하 10도 정도였다고 하셔서 지금도 그렇다고 함.


잔이랑 물 준비해 주시고 오픈런이라서 좀 한가해서 그런가 상담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셨는데, 너무 부담스러워서 겁나 긴장하고 있었고 일본 관련 모든 장르 탈덕 15년이 지나 일본어라곤 쥐뿔도 모르는 상태에서 상담하고 싶은 게 있냐는 표현 자체를 잘 못 알아들어서 겁나 긴장된다고만 얘기했고 저 회사원A님 영상 3분 30초경의...그 대사를 해주심. 긴장하지 말라고 영애님(이 사실 아가씨보다 더 오글거리고 의미만으로는 적합한 표현인 것 같음)을 두고 긴장해야 하는 건 자기라고 해주심. 한국말로 '오셨습니까 아가씨'도 해주셨는데 한번에 못 알아들었음. 죄송해요 그냥 제가 말귀가 좀 어두워요.


집사님이 인사해주시고 열쇠 잘 넣어주고 가심. 이 열쇠 이날 처음으로 열심히 쳐다봤는데, 그 중세 열쇠같은 단순한 모양에다가 쇠로 된 어디서 많이 본 현대 열쇠 붙여놨더라. 그 중세 열쇠 독일에서 진짜로 쓰다 온 사람으로서 굉장히 웃겼음.


중간중간 물잔을 갖다주시고 물을 따라주시고 메뉴를 가져다주고 설명해주시고 하는 틈틈이 여러가지 질문을 해 주셔서 대화가 꾸준히 이어짐. 머리 속에 어느정도까지 대화가 저장되는 걸까? 언제 사라지는 걸까? 예를 들면 한국 언제 돌아가시냐고 물어서 오늘 간다고 대답하고, 다음번에 오셔서는 몇 시 비행기냐고 물으셔서 저녁 6시라고 대답하고, 그 다음에는 비행기 시간까진 뭐 하시냐고 물어보고. 포켓몬 센터에 갈 거라고 했더니 아가씨라면 여기에서 여기까지 다 주세요 하시는 거 아니냐고 하심. 전에 대타출동 인형을 사러 갔는데 재고가 없어서 다시 간다고 대답함. 그 다음에 오셔서 포켓몬 센터도 지난번엔 일요일이었으니 붐볐을텐데 오늘은 평일이라 한가할 거라고 해 주심.


맛있는 거 많이 먹었냐고 하셔서 엄청 즐거웠는데 맛있는 거 먹은 기억은 없다고 했더니 여기서 만들고 가시라고 함. 음식은 뭐 좋아하냐고 물어보셔서 잠시 고민하다가 먹고 죽지만 않으면 된다 파라고 했더니 놀라시면서 와일드한 오죠사마라고 하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아가씨정도 되시니까 그럴 수 있다고 막 칭찬해주시고...자기도 뭐든지 좋아한다고 해주심.ㅋㅋㅋㅋㅋㅋㅋㅋ

도쿄에서 뭐가 제일 재밌었냐고 물어보셔서 디즈니라고 하고 고등학생때 미국에서 디즈니 갔는데 같이 간 대학생 언니가 조금만 더 어렸으면 재밌었을텐데 했는데 어른이 되어도 재밌다고 했더니 어른이 되어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고 자기도 여동생이 있는데 디즈니 엄청 좋아한다고 하심.

도쿄 디즈니랜드는 사실 도쿄가 아니라고 하셔서 사실 숙소에서 디즈니까지 한 시간도 안 걸려서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데 친구도 그 소리 하고 도쿄 사는 사람한텐 중요한 문제인 걸까? 가까우니까 상관없다고 했더니 하지만 여기는 도쿄 스왈로우테일입니다. 라고 하고 웃고 가심. 이 순간 제일 이상한 사람 같으셨음.


메뉴판은 일본어랑 영어중에 뭘로 가져다 드릴지 물어봐서 영어가 편하다고 해서 영어로 가져다 주심. 메뉴 설명해주셔서 보통 이 시간(아침 10시 반)에는 뭐 먹냐고 물어봄. 내 안에 아직 약간 남은 유럽어쩌구의 유전자가 파스타를 아침으로 먹으면 안되고 애프터눈 티에는 애프터눈이라는 단어가 적혀있다고 빽삑거림. 파스타나 애프터눈 티 중에 고르면 될 것 같다고 하셔서 음식 쪽이 먹고싶은데 파스타도 아침 느낌은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비프 스튜에 빵도 나와서 그게 좀 더 아침 느낌이라고 추천해주셔서 비프 스튜 먹기로 함.


차도 골라주시면서... 홍차/스트레이트/무가향 조합으로 여쭈어 보았는데 뭐 마셨더라 기억 안남ㅋㅋㅋㅋ 쓴? 맛이 나는 것도 좋아하냐고 물으셔서 단어를 들었는데 뜻을 몰라서 그게 뭐냐고 물어보고 약간 얼굴로 표현해주심. 근데 마신 홍차 끝맛 썼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천히 쉬운 단어로 말해주겠다고 하심.


와서 물 따라주시면서 긴장하지 말라고 자기들을 동물이나 펫이라고 생각하라고 하심. 펫이 있어도 긴장한다고 했더니 상냥하다고 자기는 긴장 안한다고 뭐 여하튼 제일 긴장 덜되는 무언가라고 생각하라고 하시고 떠나감. 이 세계관 혹은 이 분 머리 속의 인권 상태 괜찮은 거야?


어제 저녁은 뭐 먹었냐고 물어보셔서 디즈니 미키 어쩌구 세트 먹었다고 함. 디즈니 간 게 어제였냐고 물어보셔서 어제 디즈니 씨 그제 디즈니 랜드 갔다왔다고 함. 피곤하시겠네요 어쩌고 하신 것 같은데 못 알아들음.


스튜는 샐러드가 먼저 나왔고 후추 뿌릴 거냐고 물어보셔서 뿌려달라고 했더니 진짜 엄청나게 큰 후추 가는 통을 들고 오심. 몇 번이나 뿌릴 거냐고 물으셔서 온갖 제스처로 알아서 해달라고 했는데 약간의 교신 오류가 오감. 여하튼 대충 뿌려 주심. 스튜도 곧 나왔고 브로콜리랑 콜리플라워랑 비프랑 어쩌구 저쩌구 설명해 주심. 지난번처럼 재료는 크게 특별하지 않음. 음식 메뉴도 3900엔.


샐러드 다 먹고 슬쩍 접시 딴 데로 밀어놓고 빵을 먼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빵 접시를 당겨와서 잘리지 않은 손바닥 마디만한 빵 덩어리를 어떻게 버터를 바르고 어떻게 먹어야 하나 노려보는데 오셔서 메인 메뉴를 가운데 두라고 접시 배치 바꿔주고 가심. 빵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아직 해결하지 못했는데 그냥 대충 먹기로 함.


차는 3회분 들어있고 다 마시면 부르라고 함. 안 부르고 누군가 오실 때까지 버텼어.


비프 스튜는 너무 맛있었음. 이 시점부터 다른 테이블들도 바빠졌는데 음식 먹느라 너무 바빠서 아무 생각이 없었음. 감자 퓨레도 맛있었고 스튜도 맛있었고. 다 맛있었음.


식사 마치고 나서 눈치 보면서 차 마시고 물 마시고 가게 안도 구경했음. 다들 이어폰같은 거 끼고 있고 집사님 두 분은 계단 위쪽에서 가게 전체를 살피고 계셨음.


사실 계속 그 동물이 있어도 쫀다는 걸로 드립 치셨는데 뭐라는지 못알아들었어. 자기는 쿠마니까 어쩌구 그러셨는데 못알아들었어.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 따라주실 때 한국에선 고양이랑 사는 사람을 집사라고 하고 고양이가 주인님이라 그랬더니 그렇냐고 하지만 고양이가 있어도 쫄지 않냐는 식으로 관련된 소리 또 하셨는데 그것도 못알아들었음.


회원 카드 있냐고 물어보셔서 처음 왔을때 종이 쪼가리 받았는데 이름을 안썼다고 했더니 바로 금색 얇은 펜 빌려주심... 그 카드 가져가시고 조금 더 전화카드 같은 포인트 적힌 카드를 가져다 주심. 와 나도 회원이다.


중간에 다른 분이 물 한번 따라주시고, 뭐라고 하셨는데 못 알아들음. 일본어 못합니다 페이지 계속 펼쳐 놓을걸 조금 후회함. 후반에 굉장히 나이 많으신 분이 한번 돌면서 인사하셨는데 그것도 못 알아들음.


하염없이 빈 홍차잔만 노려보는데 종 울리긴 또 부끄러워서 그냥...누군가가 올 때까지 가만히 있었음. 중간에 물 따라주실 때 홈페이지에서 틀린 걸 발견했다고 말을 걸었고 잠시만 기다리시라고 다른 테이블 갔다가 다시 돌아오심. 마이쎈은 독일의 Meißen이라는 도시에서 만들어서 보통 ß를 ss로 써서 Meissen이어야 하는데 Meisen이라고 적혀있다고 그럼 마이젠이 되어버린다고 했더니 혼자서(라는 단어만 알아들음) 뭐 하다니 대단하시다고 ㅋㅋㅋ 해주신 것 같음. 관리하겠다고 말해주심. 그 후 돌아오셔서 얘기 했다고 말씀해주심. 아직까지 수정은 안 됐는데 분명 홈페이지 관리나 제작도 외주 주고 어쩌고 할 것 같아서...언젠가 고쳐지면 내가 얘기했어! 하고 기쁠 것 같음.


추가 주문하실 거 없냐고 물어보고 빌지 가져다줬던 것 같음.


내가 메모장만 챙기다가 돈 낼 카드를 따로 안 챙겨온 걸 깨달음. 이걸 초반쯤에 아 망했다 깨달았는데 정작 너무 즐거워서 말하는 거 까먹고 빌지 받을 때까지 말하는 거 까먹음. 빌지 받자마자 저기 근데 카드가 외투 주머니에 있어요...라고 얘기했더니 집사님이 따로 오셔서 열쇠 가지고 가셔서 코트 가지고 오셔서 주심. 주머니 뒤적뒤적 뒤지는데 주머니에 온갖거 다 처박는 스타일이라 주머니 안에 소형 캠코더도 있고 돈봉투도 있고 다른 카드도 한 10장 있고 쓰레기도 있고 SD카드 꽂아둔 것도 있고 난리라서 너무 민망해서 뭐가 너무 많네여 하고 간신히 카드 꺼내서 청구서 안에 끼워둠. 주문한 음식 (비프 스튜=킹 리어) 랑 찻잔 이름이 적혀있더라. 그러고 옷 가져가시고 열쇠 다시 가져와서 놓아주심. 죄송합니다... 황송합니다...


영수증을 가져다주시고 화장실(레스트룸) 사용하실 거냐고 먼저 물어봐 주심. 가방에 필요한 건 없냐 물어봐 주시고 겁나 민망하지만 지난번보다는 당당하게 소리와 비명을 지르지 않고 따라갔고, 돌아올 때는 이 빨간 융단에 서 계시면 된다고 하심. 개 민망해 진짜. 돌아왔더니 다른 집사님이 자리까지 안내해 주셨는데, 이런 거 하려면 어느 자리에 누가 앉아있었고 하는 거 파악이 필요하다니 극한직업(내 기준)이겠구나 생각하며 따라갔다. 이번 화장실 행이 지난번보다 덜 부담스러웠던 거 의자가 벽에 붙은 의자라 의자를 안 빼고 넣어주셔서 그렇구나...


여하튼 그분께서 즐거웠냐고 다음에 또 오시래서 주섬주섬 메모장 펴서 혁명군에 들어가서 공화국을 세울 예정이라서...라고 말하고는 나 혼자 민망해서 막 웃고는 한국에 돌아가요 하고 말했고 그분도 약간 현웃 터지셔서 돌아와서 혁명 결과도 알려주고 해 달라고 하심.


그리고 같은 타임에 들어온 분들이 나가는 걸 구경함. 쿠마가와님이 다른 테이블 메뉴 가져다 주느라 바쁘신 거 구경함. 아마 아직 내가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저분이 바쁘셔서렸다. 라고 생각하면서 구경함. 시간이 되어 나가게 되었고 외투 입혀주시고 외투 모자도 만져 주시고 백팩도 채워?입혀? 백팩에 대응하는 동사 뭐냐? 여하튼 주심. 배웅 인사로 다시 돌아오시라고 얘기하시길래 주섬주섬 마지막 페이지 펴가지고 지금 나가면 혁명군에 들어가 공화국을 세울 예정이라서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고 더듬더듬 읽는데 너무 민망해서 뭐라고 적었는지도 모르겠고 막 웃으면서 단어 적은 것들 보여드렸더니 두 분 다 눈 하나 깜짝 않으시고 정말 프로의 마음으로 그래도 항상 기다리고 있으니까 안전 챙기시고 돌아오라고 말해주심. 나갈때 쿠마가와님이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하시길래 감사합니다~ 하고 엉거주춤 나옴...나오는데 도어맨님이 거기 서계신 지 몰라서 약간 놀랐네. 여하튼 굽신굽신 하다가 나옴.


결론적으로 너무너무너무 재밌었고 하고싶었던 거 다 했고 오글거리는 말도 잔뜩 들었고 쿠마가와님 되게 짬 높고 다른 분들 교육도 담당하시고 노래도 하시는 분이시더라고. 너무 첨부터 끝까지 상냥하시고 그 기계적으로 짜여진듯한 버튼 누르면 나오시는듯한 눈웃음도 너무 좋았어서 굉장히 당황했다.


나는 그냥...예약이 되길래 간 거지

이렇게 와 집사카페 뮤지컬보다 싸다 게다가 밥도 준다

같은 진심인 어트랙션으로 가려고 한 건 아니었어

정말로 아니었어

아 세상에...하지만 정신차리니 그들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있었고 트위터를 팔로하고 있음

게다가 머리 속에서

아침-비프스튜

점심-파스타

오후-애프터눈 티세트

저녁-디너 메뉴

를 다 먹어도 18만원 뮤지컬 VIP한편이다 싸다싸~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음


내 인생...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사실 나의 공화정 컨셉은 신분제 부담스럽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 우리 엄마 아빠(?)를 폐위한다(?). 였는데 카페의 누구도 자기들의 세계관에 타격을 입지 않았단 것도 너무 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하튼 그들도 헛소리 하고서 돈을 받는 프로인 것이다.

나같은 취미로 헛소리 하는 사람으론 부족한 것이다.


여하튼 집사카페 후기 끝

약간 입덕부정기 같은데 돌아나올 것인가 더 깊은 늪으로 빠질 것인가 두고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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