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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Jan 12. 2021

[여행기] 시와 그림, 풍경이 있는 길
- 금능아트로드

[취재/글/사진] [제주 이야기]


시와 그림, 풍경이 있는 길 - 금능 아트로드




낮은 돌담과 알록달록한 지붕은 제주도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그러나 금능리 돌담에는 평범한 배경에 운치를 더해주는 특별한 장식물이 하나 있다. 바로 집마다 걸려있는 시화 문패이다. 주민들이 직접 쓴 시와 그림으로 만든 문패는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습인 게 없다. 


마을을 거닐다 처음 시화 문패를 발견했을 때는 마을에 사는 문학가의 집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두 번째 시화 문패를 봤을 때도 그저 글짓기 대회에서 우승한 아이의 작품을 벽을 활용해서 걸어두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가는 집마다 붙어있는 시화를 발견하곤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그제야 남달리 정성 들여 꾸민 문패임을 깨달았다.



시화 문패 만들기는 금능리에 사는 아이들뿐 아니라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가 참여한 마을 공동 프로젝트이다. 그래서인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시화가 있는가 하면 삶의 깊이가 묻어나는 시도 있다. 주민들은 정성 들여 문장을 고르고 색을 입혀 마을과 자신의 집을 소개한다.


시화 문패를 따라 이어진 길은 ‘금능 아트로드’라고도 불린다. 아트로드는 바다를 따라 걷는 도서관 문학길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생태 미술길로 나누어져 있다. 아트로드를 따라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을 전체를 둘러보게 되는데, 좁고 굽이진 골목 안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시화 문패는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와 어우러져 마을에 남다른 감성을 불어넣는다.



도서관 문학길에는 시화 문패와 더불어 야외 도서관이 마련되어 있다. 동네 풍경을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게 마련한 간이 도서관인 셈이다. 작은 책장과 의자는 모두 주민들이 직접 제작했다. 나는 그중 바닷가에 마련된 야외 도서관에 들러 투박해 보이는 나무 의자에 조심스레 앉아보았다. 의자 끄트머리에 서툴지만 꼼꼼하게 박아 넣은 못을 보니 주민들의 세심한 배려와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만큼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즐기는 독서는 재미없는 책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준다.



도서관 문학길을 지나 생태 미술길로 들어서자 개성 있는 그림과 알록달록한 소라 껍데기가 온 바닥과 돌담을 뒤덮고 있다. 바닥에는 그림으로 그려진 불가사리, 문어, 해파리 등 바닷속 생물이 보인다. 아이의 그림일기처럼 올망졸망하게 모여 있는 단순한 그림들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만다. 옹기종기 붙어 앉아 그림을 그렸을 주민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네 구석구석 놓인 여러 의자에서도 주민들의 정겨운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모양도 색도 천차만별인 낡은 의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 목적으로 주민들이 하나씩 가져다 놓았다. 담벼락 아래 세워진 낡은 의자들은 마을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멋을 풍긴다. 주민들은 일상에서 스스로 예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



사진 찌겐?
동네가 예뻐서요.


카메라를 들고 아트로드를 걷던 내게 동네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길가에 꽃을 심고 검질(잡초)을 뽑고 있었다는 할머니는 심심할 때마다 이렇게 나와 집 주위 길을 꾸민다고 한다. 꽃으로 운을 뗀 할머니의 이야기는 새로 쌓은 돌담으로 이어졌다. 길을 넓히기 위해 담을 안쪽으로 다시 쌓으면서 헌 돌은 빼고 새 돌을 구해 돌담을 쌓았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쌓았다는 돌담은 할머니가 어깨를 으쓱하는 자랑거리이다.



금능리를 하나의 작품처럼 꾸민 이들의 정체는 문학가도, 예술가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사는 마을을 더 예쁘고 아름답게 꾸미고자 노력하는 평범한 마을 주민일 뿐이다. 금능리 주민들에게 동네를 가꾸는 작업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나는 쌀쌀한 바람이 잦아들고 할머니가 길가에 심은 꽃이 만개할 때쯤, 더욱 화사하게 빛날 금능리에 다시 한번 오겠노라 다짐하며 다시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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