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결혼해도 와 닿는 '한국의 결혼 제도'
남편과 내가 한국의 결혼제도에 대해서 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남편은 항상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는 내가 당신에게만 잘 하면 되는 줄 알았어
나도 그랬다. 우리는 참 뭣도 모르고 결혼했다.
사실 나만 지키며 살기도 힘든 세상인데 둘이 되는 건 좀 부담스러웠다.
내가 '남'을 짊어질 수 없는 것처럼, 남한테도 '나'라는 짐을 주고 싶지 않았었다.
그런데 모자란 나의 어떤 부분이 남의 부족한 점을 메울 수 있고, 나에겐 절대적으로 모자란 부분을 어떤 사람이 아주 가볍게 충분히 채워주었음을 우리 둘이 충분히 깨달았을 때 (+ 미국에 있던 상황이었고 앞으로 주욱 미국에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에) 결혼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미국에서 살거면 우리 둘이 부족한 부분 잘 메워가면서 살아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친인척 하나 없는 외국 살이를 둘이 똘똘 뭉쳐 해보자는 그런 스타트업 정신. 한국의 결혼제도가 많이 와닿지 않았기에 결혼에 있어서는 우리 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강했었다. 사실 우리 세대는... 둘이 진짜 똘똘 뭉쳐 잘 해나가기만 해도 기특한 세대 아닌가.
하지만 미국이라는 머나먼 곳에 사는 나에게도 가끔은 '시'자에 넌덜머리 날만한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그러면서 결혼 제도에 대해서 돌아봤다. 생각해보니 한국에 살았더라면, 싱글일 때는 천국과도 같았던 명절이 지옥이 될 것이었다. 몸 추스리고 집안 정리 하기 바쁜 주말엔 거의 한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양가 집안 행사 (생일 등 다 합쳐도 1달에 1번 아닐까) 다니느라 바쁠 것이다. 전화 통화만으로도 가끔은 '시댁' 그리고 '친정'으로부터 상처를 받는데 직접 계속 만나면 그 횟수는 증가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거겠지.
이제 결혼 3년차에 접어든 우리는 나름 요령이 생겨 전화도 한달에 한번 드리는 정도로 바뀌었고, 개별적으로 본인 부모에게 연락은 종종 드린다. 서운해하셔도 어쩔 수 없다. 오랜만에 드리는 통화에서 부모님이 서운하다고 표현을 하면 우리는 힘들어지는 것이고, 그렇다고 그 말 안 듣겠다고 자주 통화하지는 않게 되니 한달에 한번 안부를 묻는 통화가 적응되고 행복한 말만 주고 받길 바랄 뿐. 이렇게 하는 것도 나보다는 남편이 먼저 시도를 한 부분이었다. 듣기 싫은 말 듣고 싶지 않아서 2주에 한번 아니면 한달에 한번은 꼭 연락드리려고 했던 나를 말리던 남편. 알아서 잘 해결하길 바라면서도 그게 되지 않을 걸 안다. 다음 통화에서 서운함을 드러내실 수 있겠지만 나는 그냥 모른 척하는 게 모두를 위해서 좋은 거라고.
한국에 살았더라면 가능했을까
제도는 우리를 보호하기도 하고, 억압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우리는 결혼제도 덕을 많이 보긴 했다. 가족으로 보험이 묶여 있어서 (비용은 더 내지만) 내가 이직을 하거나 남편이 이직을 하는 순간 배우자에게 가족 보험을 신청할 수 있고, 영주권도 (따로 받을 수 있었지만) 함께 받았기에 순간 순간 더 잘 이겨낼 수 있었다. 함께 집을 사는 것 등등 우리는 함께해서 좋은 게 더 많다.
하지만 한국이었다면 행정적인 부분을 제외한 사회 문화적인 부분에서 힘들 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대부분 시댁에 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은근히 등급이 나뉘어져 어쩔 땐 우리가 남과 비교해서 우월할 수도 또 낮을 수도 있다. 매 순간 피곤한 그런 부분들이 생긴다. 한국에서는 결혼 제도라기보다는 결혼 제도를 통한 사회 문화적인 갈등이 크다. 그래서 결혼 제도 자체를 부정한다. 제도는 좋은 쪽으로 유연하게 바뀔 수 있지만 사회 문화는 왠만하면 바뀌기가 힘들다. 게다가 한 세대가 아닌 다양한 세대가 서로 갈등이 생기는 경우는 변하기 더 힘들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주요 세대가 교체되면서 조금씩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으니, 지금 우리 세대는 바뀌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내 주변엔 결혼이 깨진 경우가 꽤 있다.
부모의 의견으로인해 결혼이 깨졌다. 남자 측 부모가 여자 측 가정 형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여자 측 부모가 남자 측 가정 형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경우 가정 형편 뿐 아니라 다른 이유들도 함께 딸려오는데 '점을 보고 나서' 반대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부모의 의견으로 결혼이 성사되지 못하는 것만 봐도 결혼 제도에 부모의 의견이 얼마나 많이 반영되는지 알 수 있다. 살다보니 비슷한 가정이 만나기는 참으로 어렵다. 집안 먼저 보고 선을 보는 게 아닌 이상. 근데 선을 보고 결혼을 하면 사람을 파악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 주어진다. 그런 경우는 집안이 우선이 된다.
결혼이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비혼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내가 아는 '결혼 깨진' 사람들은 연애는 하더라도 아직 결혼을 하진 않으니. 그 상처가 깊이 박혀 다른 사람을 만나도 결혼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 힘들지 않을까. 그리고 이미 그 결혼 제도의 폐해를 명백하게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살다보면 다 별거 아닌 게 된다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우리는 1분 1초 현재를 살고 있어서 매 순간이 우리에게는 별거다. 결혼 제도라는 게 없어지고 다른 게 생기는 것보다는 결혼 제도를 좋은 방향으로 잘 바꾸어 나가고 결혼 제도에 얽힌 사회 문화적인 환경도 많이 바뀌길 바란다. 지금으로서는 나에게 흐르는 한국인의 피를 조금은 부정하여 '좋은 며느리'이기를 조금만 포기하고. 남편의 입장에서도 '좋은 아들' 이기를 조금만 포기하면 두 부부에게 집중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제주도에서 결혼해서 살다가 서울에 이사왔다가 다시 제주도로 이사가는 친구를 보며 깨닫는다. 그 친구가 말하길... '제주도에서는 부부에게,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