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gogolife Sep 11. 2019

이젠 맘잡고 미국 생활.

40일 동안 한국 다녀왔습니다만, 

한국을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계속 생각은 하고 있다가 한 달 뒤 출국으로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그리고 마지막 이비인후과를 방문했을 때 $200이 더 나올 거라는 얘기를 듣고 급 항공권 일정을 당겼다. $200이 웬 말인가. 이 정도 검사는 한국에서 2만 원도 안 나올 것 같은데? 


미국 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들고 있었고, 건강 검진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그즈음 할머니가 넘어지셨단 소식이 항공권 날짜를 바로 바꾼 큰 계기였다. 아무래도 미국 생활에 회의감이 들면서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는데, 90세에 정정하신 할머니가 넘어지시면서 팔이 부러져 수술을 하게 되면 건강이 안 좋아지실 수도 있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건강하실 때 뵙고 와야겠다는 마음이 제일 컸다. 그래서 지금.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지금. 가장 빠른 일정으로 비행기를 앞당겼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출국 일정만 정했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상황을 봐서 예매를 하기로 하고 가벼운 짐을 쌌다. 웬만한 건 한국에서 사 올 예정이었고 급히 가는 일정이라 선물도 거의 사갈 게 없었다. 지인들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은 간단한 선물, 조카 옷 하나 정도. 부모님은 청소기를 사 갈까 했지만 다이슨을 사더라도 한국에서 사드리기로 하고, 최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걱정 없이 컨디션만 유지하며 한국으로 향했다. 


가자마자 다음 날, 할머니 병원에 가서 할머니를 뵈었다. 미국에서 큰 손녀가 왔단 소식을 미리 듣고 언제 오냐고 손꼽아 기다리셨단다. 퉁퉁 부은 얼굴에, 링거 맞은 손을 보고 눈물이 자꾸 나서 병실을 들락날락거렸다. 그 이후로는 지인들을 하루에 3-4명씩 만났다. 병원 검진을 받다 보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친한 지인들을 얼굴만 보는 수준으로 만나고 병원 예약을 시작했다. 이비인후과, 내과, 산부인과, 신경과, 치과, 피부과, 한의원 등등. 정작 한국에서 살 때는 1년에 한 번 가는 병원을 요 며칠 동안 모든 분야의 병원들을 다 방문했다. 3주에 걸친 병원 검진을 모두 끝내고 정작 내 건강은 이상 없음으로 결과를 받았지만 혹시나 아플 때를 대비하여 상비약을 받은 게 쇼핑백 한 가득이었다. 


불안했던 건강 상태를 병원에서 '이상 없음'으로 확인받고 나니, 괜히 멀쩡해진 기분이다. 작년 겨울부터 한국에 와서 결혼식도 하고, 타주로 이사도 했어서 체력이 많이 딸린 모양이다. 그 기세를 엿보고 한국에 대한 향수병인지 미국에 대한 회의감 인지도 함께 왔으니 내 몸과 정신은 정상이 아니었던 건 분명하지만, 건강 검진 결과도 좋고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나니 몸과 마음 모두 회복한 것 같다. 


내가 지금 이렇게 몸과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약 6년 전부터가 아닐까 싶다. 6년 전, 대학원 입학을 시작으로 사업도 했었고,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미국 준비를 했고, 미국에서 이직을 했고, 영주권을 하고, 결혼을 하고. 

모두 잘 맞춰 들어갔고, 노력이 나를 배신하지 않고 감사하게도 좋은 결과들을 얻어 주었지만. 언젠가부턴가 나는 자그마한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고 더 철저하게 준비하는 완벽 주의 강박 같은 게 생겨난 것 같다. 대학원은 대학원대로 한마디로 빡센 곳이었고. 미국 준비도 어영부영할만한 여유 없이 제대로 된 직장을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영주권은 완벽주의의 끝판왕인 듯 자료를 준비했었다. 게다가 결혼까지. 그렇게 약 6년 동안 큰일을 연달아서 매년 치르다 보니 무엇을 하더라도 완벽주의 강박 같은 게 생겨나 내 머리를 옥죄었던 게 아닐까. 


지금도 미래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건 생활습관처럼 여전하지만. 어쩌면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쉴 수 있는 여유?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게 나 스스로 하는 위로가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이는 여유.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 하고, 열심히 일을 하면 열심히 놀아야 직성이 풀렸던 내가. 일도 놓을 줄 알아야 하고 노는 것도 놓을 줄 아는 게 당연한 거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 


어쩌다 보니 한국에서 40일간 머물게 되었다. 원래는 최대 4주 정도로 생각했는데 2주 정도가 더 늘어났다. 가족과 함께 거실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 것만으로 안정이 된다는 걸 느꼈고, 또 미국에 있는 남편 생각이 나서 자연스럽게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국에 돌아오니, 시차 적응도 참 빠르다. 이젠 미국이 집인가...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집이 아닌 남편과 함께 사는 이 집이 이제는 내 집이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거실에 가만히 앉아있더라도 옆에 엄마 아빠는 없지만, 혼자 가만히 앉아 창문을 열고 바람이 부는 것을 즐기고, 1초 2초 지나가는 시계 소리가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 미래가 어떻게 되든. 우선은 좀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이제 곧 집 살 계획을 갖고 있는 내가... 여유를 논하는 게 좀 아이러니 하지만. 그래도 원래의 패이스보다는 조금 더 느리게. 너무 꼼꼼히 따지지 않고 남편과 운명에 맡겨봐야겠다. 내가 하나 뭘 놓쳐서 내가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지 뭐. 나도 사람인데.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 제도때문에 비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