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지와 깊이가 넓고 깊어진다는것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중의 한명인 마리아 조앙 피레스가 9월에 내한한다는 광고를 봤다. 아마도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번이 그녀의 국내 독주 무대가 될거라는 소식에 바로 티켓팅을 했다. 생각보다 로얄석이 많이 남아 있어 망설임 없이 남은 1층 로얄석중 가장 좋은 자리를 골랐다.
내가 하고 싶은걸 생각없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
클래식을 좋아하는 나는 중학생 때부터 사라장, 윤디리, 용재 오닐, 백건우 등 많은 클래식 공연을 보러 다녔다. 중고등학생 때는 미성년자 였기에 주로 엄마와 함께 공연장에 가곤 했는데 난 내가 좋아하는 연주자의 악기를 다루는 모습과 표정 그리고 숨쉬는 템포까지 느껴지는 로얄석 중에서도 앞자리에 앉고 싶어했다. 나때문에 억지로 따라간 엄마는 소리만 잘 들리면 되지 않냐며 주로 예술의 전당 A석에 앉곤 했다. 대학생 때에도 용돈을 받아서 쓰다보니 로얄석은 택도 없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돈을 벌게 되면 공연을 보러갈 때마다 로얄석에 앉고 말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공연의 로얄석을 망설임 없이 끊고 나서는 '어 나 어른 다됐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직 한참 멀었지만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건 깊이가 있어진다는 것이다.
어른은 누구나 될 수 있지만 깊이 있는 어른이 되는건 쉽지 않다. 클래식의 묘미중 하나는 음악가의 젊은시절과 나이들었을 때의 음악의 깊이감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주로 통통 튀는 젊은 음악가들의 공연을 보러 가곤 했는데 몇년전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베토벤 시리즈 공연을 보면서 공연 내내 그의 음악적 깊이에 압도당했다. 미스터치가 있긴 했지만 원숙한 음악이란 음악가의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치곡치곡 쌓인 에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는 공연 막바지 베토벤 월광 소나타의 3악장 내내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기도 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옆에 앉아있떤 아주머니가 왜 울었는지 알것 같기도 하다.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해석을 좋아한다. 이번 내한 프로그램이 모차르트 소나타와 슈베르트 즉흥곡으로 구성된 만큼 80대인 그녀가 그녀만의 얼마나 깊은 음악적 해석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법적으로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누구나 어른이 된다. 하지만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건 내가 하고 싶은걸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선택지가 넓어 지는 것이면서 동시에 내면적 깊이가 깊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어른이 되는건 멀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가까워 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sVjqKHJsy4M&t=30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