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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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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희비극 Apr 20. 2020

#10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동생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늘 강아지를 데려온다고. 임시보호 이야기를 꺼낸 지 일주일이 조금 지난 무렵이었다. 암막커튼 때문에 날이 밝은지도 몰랐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두 시가 지나 있었다. 알았다는 답장을 보낸 뒤 눈을 감았다. 일어날 힘이 없어서 다시 밤이 될 때까지 밤이 되는지도 모른 채로 계속 누워 있었다. 동생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기증이 일어 벽을 잡고 서서 동생과 낯선 개가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동생이 중문을 열어주자 발랄하게 들어오던 개가 나를 보고 거리를 두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 몸을 웅크리고 팔을 뻗었다. 개가 천천히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낯선 사람과 공간이 너무 무섭지 않도록.     


  개의 이름은 도담이라고 했다. 한 살 치고는 노안이어서 조금 놀랐는데 하는 행동을 보니 영락없는 아기였다. 동생이 언니, 도담이는 혈통 있는 강아지래. 장모 닥스훈트인데 손바닥만 할 때 200만 원이나 했대, 하면서 아기의 풍성한 가슴 털을 조심조심 쓸었다. 엄청 부드러워, 언니도 만져봐,라고 해서 손을 대보니 정말 놀라울 만큼 부드러웠다. 차를 잘 타는 것부터 치아나 모질의 상태까지 주기적으로 전문가의 관리를 받아온 것 같았다. 복이는 한 번도 그런 거 해준 적 없는데, 생각하며 그런 강아지를 어떻게 보내게 된 건지 궁금해졌다. 동생 말로는 전 주인의 아들이 하굣길에 어린 도담이를 보고 ‘갖고’ 싶어서 엄마한테 전화해 데려왔다고 했다. 그 뒤 도담이는 방 대신 좁은 다용도실에서 자랐다고. 긴장이 풀렸는지 조금씩 졸기 시작하는 도담이의 큼직한 발바닥을 만져보니 말랑말랑했다. 한 살이나 됐는데 굳은살이 하나도 없다는 건, 산책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다용도실의 맨들맨들한 타일 바닥이 도담이가 여태껏 밟아본 땅의 전부인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제야 전문가의 관리를 받으며 자란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도담이는 가족이 아니라 비싼 소장품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가슴털이 멋지니까 이름을 매생이로 바꿔줘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도담이를 방으로 데려갔다.     


  얼굴도 길고 허리도 길고 꼬리도 긴 도담이는 다리만 짧았다. 정말 정말 짧았다. 그래서 높은 침대에 오를 수가 없었다. 동생이 침대에 앉자 그새 동생만 졸졸 따라다니게 된 도담이가 낑낑 울었다. 동생은 침대 발치에 두었던 복이의 라텍스 계단을 도담이 쪽으로 놔주었다. 순식간이었다. 계단을 탈 줄 모르는 도담이는 여전히 울기만 할 뿐이었고, 나는 그제야 몸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복이 건데. 복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도담이가 계단에 흥미가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도담이는 계단 싫대, 하며 계단을 도로 제자리에 두었다. 동생은 이불을 깔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나도 그 옆에 누웠다. 며칠 뒤면 동생이 현장근무를 가서 도담이는 나와 둘이 지내야 했다. 그때 너무 불안하지 않도록, 넓은 침대 옆 좁은 바닥에서 도담이를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누웠다. 제법 긴장을 푼 것 같더니 불을 끄자 도담이는 계속 울었다. 몸집은 크지만 아직 한 살 밖에 안 된 아기니까. 자꾸만 깨는 도담이 때문에 우리도 덩달아 잠들지 못하면서 불안한 밤을 보냈다.     


  동생은 도담이와 함께 출근했다가 함께 퇴근했다. 도담이는 나도 제법 따르기 시작했지만, 동생이 시야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했다. 동생이 샤워하는 동안에도 화장실 문 앞에 앉아 계속 울었다. 하지만 현장 근무를 무를 수는 없었다. 우리의 근심과 상관없이 동생이 철야 작업하는 날이 다가왔고, 나는 혼자서 종일 도담이를 돌보게 되었다. 동생과 떨어진 첫날, 도담이는 평소처럼 출근하는 동생을 따라나서려다가 동생이 혼자 나가자 그 자리에서 네 시간을 울었다. 두 발로 서서 문을 긁고 빙글빙글 돌다가 다시 울었다. 가서 안아주고 간식을 줘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네 시간을 보내고 나니 지친 건지, 포기한 건지 바닥에 엎드렸다. 나는 도담이와 산책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리드줄을 단단히 매고, 집 밖으로 나갔다. 이 길에서 다시는 산책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예쁜 강아지와 이렇게 빨리 산책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일부러 사고지점과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다른 방향이라 해도 모든 길이 복이와 걸었던 길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나갔는데도 도담이를 보고 표정이 밝아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뿌듯했고, 그런 기분이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밤 동생이 돌아오자 도담이는 거의 자기 키만큼 점프를 하면서 동생을 반겼다. 나는 체력적으로 지쳐서 누워 있었고, 동생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도담이를 안아주었다.       


  며칠이면 될 거라는 동거는 예정보다 길어졌다. 그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도담이 옆에 붙어있었다. 도담이와 복이는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서 하루 종일 복이 생각이 났다. 밥 잘 먹는 도담이를 보면 밥 먹는 게 일이었던 복이 생각이 났고, 짧고 다부진 도담이의 다리를 만지면 길고 가늘었던 복이의 다리가 생각났다. 화장실만 가도 문 앞에서 기다리는 도담이를 보면 누가 집 밖으로 나가든 말든 간식 생각뿐인 복이가, 뭐든 물어뜯어버리는 도담이를 보면 장난감은커녕 개껌도 즐기지 않던 복이가, 밤에 푹 잘 수 있도록 두 번이나 산책을 해주고 하루 종일 곁에 있어줘도 동생이 오면 내가 뒷전인 도담이를 보면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사랑을 줘도 언제나 내가 첫 번째였던 복이가 생각났다. 그건 도담이에게 점점 쓰이던 마음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마음이었다.   


  도담이는 보름 정도 우리집에 머물렀다. 그 사이 우리는 유튜브를 보며 분리불안을 고치기 위한 훈련을 하고,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긴 견종에게 위험한 것들이 뭐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매일 두세 번 긴 산책을 하고, 털이 많이 빠져서 하루에 몇 번이나 청소를 했다. 그럴 때마다 복이에게 손이 많이 간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오해였는지 깨달았다. 오랫동안 새침한 노견과 살다 보니 순식간에 성인 몇 명을 지치게 만드는 어린 개의 체력이 낯설고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도담이가 입양처로 떠나는 날에는 동생이 쉬는 날이었다. 나는 미뤘던 일정을 소화하느라 종일 밖에 있었다. 도담이가 떠나기 전에 꼭 전화를 달라고 해서 밤에는 동생에게 영상 전화가 왔다. 이제 겨우 제 집처럼 지내는 것 같은데 가서 또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어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조금 취해서 귀가했는데 겉옷을 벗기 위해 주머니에 있는 것을 빼냈더니 술집에서 챙겨 온 휴지심이 들어있었다. 뭐든 물어뜯고 싶어 하는 도담이를 위해 요 며칠 휴지심을 모아 노즈워크를 만들어주곤 했는데 그새 습관이 된 것이다. 휴지심을 식탁에 올려놓고 동생과 마주 앉아 맥주를 땄다. 고작 이주 조금 넘는 시간이었는데 집이 유난히 적막했다. 동생이 언니, 내가 집에서 말을 하더라, 하며 핸드폰에 담긴 도담이 사진을 넘겨보았다. 그냥 우리가 데리고 살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그 말을 들으며 산책 후 뻗어있는 내게 도담이가 기대 왔던 무게와 온기를 떠올렸다. 벌써부터 그리운 마음과는 별개로 그래도 아직은, 아직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곧 나는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개와 살지 못하리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불을 끄고 누웠다. 그리고 오래 잠들지 못했다.   

  

  다행히 도담이는 새 집에 잘 적응했다고 한다. 동생도 아는 분의 집에 입양되어서 종종 소식을 접할 수 있었고, 사정이 있는 날에는 몇 시간씩 우리 집에 오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내가 혼자 여행을 하는 사이 도담이가 놀러 왔다며 동생이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중에는 복이의 계단에 올라앉은 도담이도 있었다. 동생이 도담이 이제 계단 배웠대, 하고 말했다. 내가 잠시 말을 고르는 사이 동생은 도담이도 복이 자리인 걸 아나 봐. 2층에만 앉아, 하고 덧붙였다. 복이는 늘 1단에 앉아서 그곳이 움푹 패었는데 도담이는 2단에 앉아있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저 계단 위에 둘이 나란히 앉아있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가 조금 놀랐다. 다른 개와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해서 다른 개를 사랑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자각이, 내 마음의 어딘가를 날카롭게 찌르고 있었다. 사진을 저장한 뒤 그러게, 하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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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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