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환해. 너무 환해서 네 모습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너를 따라가지만 너는 한 번을 돌아보지 않아. 젖힌 귀를 파닥파닥 흔들며 가볍게 걸어갈 뿐. 너는 기분이 좋구나. 하지만 나는 코앞의 너를 놓칠까 봐 불안한 마음으로 행복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닿지 않을 거란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어. 그렇게 너를 따라 걷다 보면 언제나처럼 별안간 눈이 떠져. 습관처럼 네가 있을 옆자리를 더듬어. 없어. 작은 숨소리를 따라 오르내리던 부드럽고 따뜻한 몸이 없어. 그제야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아. 이제 네가 없다는 것을 말이야. 다시는 너를 만질 수도 안지도 못한다는 것을 말이야. 하지만 무너진 마음은 그런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세상은 살가운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무심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나는 조금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 고통이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커질 거라는 확신뿐이야. 하지만 그런 결말이 싫지 않아. 내 안에서조차 네가 사라져 버리게 놔둘 수는 없으니까. 나는 조금도 나아지고 싶지 않아. 꿈에서 깨어나 차가운 허공을 더듬는 일이 언제까지나 반복된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