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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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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희비극 Nov 02. 2020

#13

  본가에서 자취방으로 복이를 데려온 건 복이가 일곱 살 되던 해 봄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강아지 두 마리를 데려왔다고 했다. 엄마는 두 번이나 파양 당한 애들이 딱하다고 했지만 그 소식을 듣자마자 “복이는?”하고 물었다. 그때까지 복이는 다른 개와 한 번도 지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자기가 사람인 줄 아는 것 같아서 과연 복이가 그 애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내 말투나 목소리가 탐탁지 않은걸 느꼈는지 엄마는 몇 번이고 나를 안심시켰다. 복이와도 잘 지낸다고. 시간 날 때 한 번 내려오라고. 하는 수 없이 그 주에 나는 서둘러 본가에 내려갔다. 중요한 시험이 코앞이었지만 서울에 있어봤자 불안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 눈으로 잘 지내는 걸 보면, 조금은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만난 별이와 달이는 한 배에서 태어나 쭉 함께 지낸 사이였다. 나는 그 애들이 왜 두 번이나 파양 당했는지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별이와 달이는 지나치게 예뻤다. 누구라도 일단 함께 살아보고 싶게 만들 만큼 예쁘게 생겼다. 화부터 냈던 나조차도 몇 번이나 감탄했으니까. 나는 엄마가 별이와 달이를 책임지겠다고 마음먹은 데에도 외모가 한몫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다들 예쁘니까 충동적으로 데려갔겠지. 막상 데려가서는 감당이 안 되니까 방치하다가 다시 또 예쁘다는 사람한테 인심 쓰듯이 넘겼겠지. 그렇게 두 집이나 전전했던 별이와 달이는 겁이 많아 경계가 심했다.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이제 막 8개월이 되었다는 아이들은 낯선 그림자만 보여도 몸이 굳었다.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발작을 일으켰고, 자주 뒷걸음을 쳤으며, 허리띠를 풀기만 해도 불안하게 짖었다. 그래도 그런 순간만 아니면 우리 가족에게는 얼굴을 부비고 몸을 기대고 꼬리를 흔들어줬다. 그게 마음을 열어준 건지, 살기 위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려했던 대로 7년 동안 사랑을 독차지했던 복이는 별이와 달이가 예쁨 받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했다. 하루 종일 신경이 곤두서서 날카롭게 짖고 심술을 부렸다. 그때마다 별이와 달이는 가족들 옆에 딱 달라붙어 애교를 부렸고, 모두 끔뻑 넘어갔다. 사실은 나도 그 애들을 한 번 안아보고 싶었지만, ‘설마 너는 아니겠지?’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복이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끔 집에 내려갈 때마다 복이를 안고 나가 실컷 편애해주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날이 갈수록 복이의 얼굴은 점점 검어졌다. 하도 울어서 하얀 털이 모두 짙은 갈색으로 변해버렸다. 엄마도 할머니도 근심이 커졌지만, 별이와 달이를 다시 보낼 수는 없었다. 채 한 살이 되기도 전에 세 번이나 집을 옮기게 된 별달이 또 다른 집에 가게 되면 영원히 마음을 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함께 살자니 별이와 달이는 이제 노골적으로 복이를 따돌리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해결책을 골몰하기 시작했다.  복이는 내가 본가에 내려가면 잠시도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복이를 서울에 데려올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서울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복이가 괴로울 것 같았다. 할머니가 종일 있는 집과 달리, 서울 자취방은 우리가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비어있는 데다가 복이가 평생 살아온 집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 크기였기 때문이다. 낯설고 좁은 공간에서 그 긴 시간을 혼자 있으려면 많이 무섭고 불안할 터였다. 쉽지 않은 일이어서 계속 결단을 미루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본가에 내려간 동생이 도저히 못 보겠다며 복이를 데리고 올라왔다. 그동안의 고민이 무색할 만큼 순식간의 일이었다.


  얼마나 집을 떠나고 싶었는지, 차만 타면 토했던 복이는 긴 이동시간 내내 동생 품에 얌전히 안겨있었다고 했다. 마침내 동생이 방 안에 내려놓자 몸을 털고, 기지개를 켠 뒤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집을 탐색했다.


  다행히 복이는 원래 이곳에 살았던 것처럼 빠르게 적응했다. 엄마는 영상전화를 할 때마다 복이 얼굴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복이한테 큰 죄를 지은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정말 다행이라고. 제일 좋아하는 큰 누나 옆에 있으니 표정도 밝아지고 눈물자국도 다 없어졌다고.


  복이가 서울로 온 뒤로, 엄마와 할머니는 복이를 명절 때만 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복이와 내려갔을 때, 할머니는 오랜만에 만난 복이를 안고 “꺼먼 게 다 없어졌네”라고 했다. 눈물에 절은 털을 잘라내고 다시 새 털이 자라 하얀 얼굴을 되찾은 것이다. 그때의 나는 복이를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난 추석은 복이와 함께 내려갔던 마지막 명절이었다. 복이가 본가에서 살았던 만큼 서울에서의 시간이 흐른 시기이기도 했다. 그 사이 열네 살이 된 복이는 잠이 늘고 귀가 어두워졌다. 할머니는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엄마는 시골로 이사를 갔다. 우리는 자유롭게 현관 방충망 자석 문발을 지나다니는 별달과, 그 앞에서 당황하는 복이를 보며 시골개와 서울개라며 한참을 웃었다. 복이는 엄마가 가꾼 풀밭을 사뿐사뿐 걸어 다녔다. 개가 살기엔 정말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풀밭의 복이는 늘 행복한 표정이었으니까. 별달과도 잘 어울리는 복이를 보며 아주 잠깐, 이제는 이곳이 복이에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랑 있는 게 더 좋겠지, 복잡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가 있었다. 급격하게 추워진 10월 마지막 날 새벽, 복이를 화장하고 돌아오면서 그냥 두고 올 걸, 하고 생각했다. 유골함과 함께 건네받은 사진 속 복이는 풀밭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고 올 걸. 두고 올 걸. 그 생각만 하다가 날이 밝았다.


  지난 설은 사고 이후 첫 명절이었다. 복이 없이 내려가는 일은 너무 편해서 어색했다.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집으로 들어섰다. 별이와 달이가 근심 없이 반겨주었다. 그런데 마냥 아기인 줄 알았던 별이와 달이에게서 노견의 흔적이 보였다. 복이만 노견이라 생각해서 몰랐는데, 별달도 이제 나이를 꽤 먹은 것이었다. 검버섯이 번진 별달의 배를 만지면서, 복이는 정말 동안이었는데, 하고 생각했다. 별이와 달이는 한번 쓰다듬은 이상, 잠시라도 손을 떼면 자다가도 눈을 뜨는데, 이제 복이 눈치를 보지 않아도 괜찮아서 몇 시간이나 애들을 만져주었다. 별달은 깡마른 복이와 달리 통통하고 털이 풍성해서 손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한참을 만지다 보니 밤이 깊었다. 손목도 아팠다. 나는 곯아떨어진 별달 곁에 누웠다. 그렇게 오래 만져주었는데도 손길을 멈추니 팔을 긁는 별달 때문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별달은 잠잠해졌고, 낮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습관처럼 잔뜩 웅크린 몸을 펴서 복이와 몸을 맞대고 있던 자세를 취했다. 따뜻하고 작은 몸 대신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딱딱한 목침에 손이 닿았다. 별달의 코 고는 소리는 커졌다 잦아들기를 반복했다. 오랜만에 만난 별이와 달이 곁에서 복이를 그리워하는 일이 미안하고 슬펐다. 그러다 문득 별달의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무서워졌다. 별달도 언젠가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게 되어버리겠지. 결국 그렇게 되어버리겠지. 할머니도 엄마도. 동생도, 나도. 믿기지 않는 일들도 단단한 현실이 되어가겠지. 별달은 복이가 궁금할까. 소식을 알면 슬퍼할까. 언니, 우리 아기 정말 한 줌이다. 동생의 떨리는 목소리와 작디작은 유골함으로 옮겨지던 복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골밤은 너무 캄캄해서 눈을 떠도 감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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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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