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경험 사이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뒤적이는 일은 별로 없다. 사진을 많이 찍지도 않는다. 내가 너무 순간들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가 싶다가도, 사진을 찍느라 이 순간을 놓치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며 카메라를 꺼버린다. 매 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비디오 모드를 상시 준비하고 있던 때도 있었다. 젊음의 반짝임이 무서웠던 시간들. 쌓여가는 사진과 비디오가 그 두려움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만두게 되었다.
사진을 잘 모르는 나에게 그것은 그저 이미지에 불과할 뿐이다. 구도에 맞게, 공간의 분위기가 잘 담기게, 그럭저럭 봐줄만 하게 나오면 된다. 그렇게 사진 속 나의 여행은 그럭저럭 봐줄만한 여행이 되는 것이다. 그저 그런 이미지들의 나열. 지루하다는 면에서는 그 둘이 일맥상통할지도 모르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국경선을 넘나드는 일도 일상이 되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여행이 때때로 인생에 비유되는 것은 그 기나긴 지루함 때문이 아닐까. 물론 목적지에 대한 환상은 꽤 오랫동안 지속된다. 프랑스, 인도, 쿠바 같은 나라가 자아내는 특별한 분위기나 마추픽추, 우유니 사막, 빅토리아 폭포 같은 대자연의 웅장함 말이다. 하지만 며칠만 돌아다녀도 환상은 여행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대부분의 시간은 먹고 자고 싸고 움직이는 데 할애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환상에서 저 환상으로 넘어가는 동안의 지루함, 버팀, 권태, 시달림, 외로움 같은 것들은 사진에 잘 담기지 않는다. 카메라가 사람이라면 꽤 긍정적인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다른 나라까지 가서 그런 감정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 게 꼴 보기 싫기도 하고, 내 여행은 이렇게나 별 거 없었다고 굳이 남기는 건 구차하니까.
그럼에도 가끔씩 그때의 사진들을 꺼내어 보는 것은 사진 밖의 나와 그곳의 별 거 없는 공기와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워서. 가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다시 짐을 싸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