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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삭 Jan 26. 2024

칸초 vs 초코송이

이것이 인생이라면 

인생을 두 과자에 비유한다면 당신은 어떤 모습의 인생을 바라는가. 인생에서 달달한 순간이 초코에 해당하고, 힘든 순간을 별맛이 안 나는 텁텁한 밀가루 맛 과자라고 해보자. 그랬을 때 텁텁한 과자를 먹어야만 그 안에 숨겨진 초코와 만날 수 있는 롯데 ‘칸초’와 초콜릿이 머리 위에 활짝 피어 있어 초코만 먹고 싶으면 그래도 될 것 같은 오리온 ‘초코송이’ 중에서 당신은 무엇을 택하겠는가? 

칸초는 텁텁한 과자가 산처럼 봉긋 쌓여 있다. 이 과자의 백미는 안에 든 초코인 게 분명한데 텁텁한 과자 맛이 너무 강해서 초코를 느끼려면 텁텁한 과자를 한참이나 입에 우물거려야 한다. 나의 선택은 초코송이다. 초코가 눈앞에 떡하니 보이니 더 만족스럽다. 맛있는 건 자고로 잘 보여야지. 칸초를 먹으며 절레절레 저었던 고개는 초코송이를 먹을 때는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제주 출신이 아닌데도 제주에 살고 있는 나는 종종 어떻게 제주까지 내려왔냐는 질문을 받는다. 8년 전, 청운의 꿈을 안고 제주에 왔다. 입신출세하려는 생각은 없었으나 청운(靑雲)의 한자 뜻인 푸른 빛깔의 구름을 서귀포에서 보고 확신했다. 이곳이 우리가 찾던 곳이구나. 1월에 눈이 펑펑 올 때마다 생후 6개월 된 첫째를 아기띠에 메고 한밤에 집을 보러 다녔던 그때가 생각난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보려던 집을 다 보지 못하고 며칠 후 서귀포에 다시 왔을 때,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맑은 파랑 세상을 만났다. 

가난한 신혼부부에게 중고 자동차, 보증금을 보태주셨던 부모님께 그 빚을 다 갚고 돈 00만 원 모으면 여기를 떠나자고 했다. 잠깐 머물다 갈 것처럼, 영원히 그 돈을 모으지는 못할 것처럼. 언젠가 그 돈을 모으고 난 뒤에 내가 말했다.

“제주를 떠나야겠는걸? 당신이 말한 돈을 다 모았어.”

“아니야, 아직 멀었어. 제주에 더 살아야 해.” 

서울에서 도망치듯이 온 줄 알았는데 이제는 떠나기 싫은 곳이 되어버린 걸까. 언젠가 제주 시내의 장례식장을 지나던 그가 말했다. 

“내가 죽으면 육지에 빈소를 차리지 말고 여기에서 장례를 치르고 유골은 송악산에 뿌려 줘.”


태어난 이상 죽을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누군가도 죽지 않을 것처럼 이런 농담을 주고받던 날이었다. 우리를 매혹시켰던 파란 구름이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흐린 날이 계속됐다. 폭설마저 예고돼 육지는커녕 제주 내에서도 오가지도 못할 어느 날, 제주에서 생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진짜가 되었다.  

우리처럼 새로운 곳에서 나만의 역사를 써보겠노라고 마음먹은 이들이 있다. 그들 역시 처음에는 둘이었지만 이곳에서 셋이 되고, 넷이 되는 가정을 이루었다. 오가면서 눈인사를 주고받고 드문드문 안부를 건네며 육지 것으로 제주에서 우리와 비슷한 부침을 겪었겠구나 싶어 그 뒷모습에 눈길이 더 오래 머물곤 했다. 그런데 그는 제주에서 10년을 채우지 않고 이곳에서 태어난 두 아이들의 학교 입학식도 보지 못하고 스스로 생의 마지막을 결정했다. 

그가 세상 사람들과 마지막을 인사하는 장례식장이 위치한 곳은 제주에서 내로라하는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다. 뒤로는 제주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앞으로는 제주의 하늘이 탁 트이게 펼쳐졌다. 제주에 살면 호텔에서 잘 리도 없고 전망도 따지지 않는다. 밖에 나가면 지겹도록 보는 바다와 산인데 돈을 내면서까지 유난을 떨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 역시 그랬을 텐데 정작 인생의 마지막은 제주 자연의 정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에서 끝내니 다행인 걸까. 


마지막을 두고 쉬쉬거렸다가 수군거리는 조문객들과 영정사진 앞에서 신나게 칼싸움을 하다가 울다 지친 엄마의 등에 안기기도 하는 두 아이들의 모습에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일까’ 하는 물음만 맴돌았다. 돌아오는 길에 어지러운 머릿속처럼 사정없이 눈발이 휘날리는데 갑자기 햇살이 내리쬔다. 줄곧 타이어 밑으로 채이던 눈도 사라지고 아스팔트가 훤히 보인다. 뭐야, 이런 길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른 길로 가야 했다고 후회했다가 남은 길을 어떻게 가지,라고 내내 마음을 졸인 것이 억울해진다. 인생도 이런 것을.      


나는 여전히 초코송이가 좋다. 인생에는 달달한 것이 이렇게 활짝 피어 있다고 초코 꽃이 봉긋한 초코송이가 맛있다. 그런데 칸초가 맛있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우둔하고 텁텁하게만 보여도 나름 그 속에도 삶의 반짝이는 부분이 있다. 우리네 인생은 이런 맛이니 처음부터 너무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처음에 품었던 그 꿈이 설령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텁텁한 과자 밑에 반드시 초코는 숨어 있고 그 초코가 실망했을 나를 토닥거려 줄 것이다. 그럼 이거라도 있으니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며 입안에 남은 텁텁한 부스러기를 마저 꿀떡 삼키겠지.      


이것이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이라면 그저 걸어가리라. 한입을 쾅 깨물어 본다. 이번 과자에는 제조 공정의 착오로 초코가 조금 더 많이 들어있기를 바라면서, 너무 지쳐 있는 나에게 빨리 달달한 맛을 찾아오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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