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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삭 Feb 11. 2024

잊힌 줄 알았는데

옛 과자를 뿌스럭거리다 오늘의 과자를 만나다

휴게소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의 중년 남성이 혼자 냉면을 2그릇 먹고 있었다. 그의 그릇 수에 눈길이 간 이유는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 때문이었다.

“식사 전이시면 한 그릇 드시겠습니까? 저걸로 주문했는데 1그릇을 주문한다는 게 2그릇이 주문됐습니다.”

지나가던 남성에게 냉면을 권한 그는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키오스크를 가리켰다. 나 역시 키오스크에서 한 번에 주문에 성공한 적이 없었던 사실이 생각났다. 이것저것 열심히 눌러서 겨우 원하는 메뉴를 선택했는데 마지막에 결제하려다 황급히 메뉴와 개수를 조정했다. 휴게소에서 식당 이용객을 제외한 사람은 주방에만 있었다. 일부 프랜차이즈에서 시작된 키오스크는 이제 키오스크가 없는 식당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보편화되었다. 조리대에 사람이 보여서 가서 뭐라도 물을라치면 손을 휘휘 저으며 주문은 키오스크에서 해야 한다고, 각 테이블마다 설치되어 있는 키오스크를 가리킨다. 고용주 입장에서 직원을 구해 일을 시키는 것보다 키오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이윤이나 매장운영 면에서 훨씬 나은 것이리라. 그걸 알면서 이렇게 또 하나가 사라졌다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한번은 본가에 온라인 마트 장보기로 쌀을 배송시키면서 삼양식품 <뽀빠이>를 같이 주문했다. 퇴근하고 배송물품을 확인한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너무 힘들어서 밥맛도 없었는데 이거 확인하고 당장 먹었어. 너 엄마 이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모를 리가 있나. 라면땅은 나의 태아 시절 설화 중의 하나다. 엄마는 입덧이 너무 심해서 먹지를 못했는데 어느 날 아빠가 퇴근길에 라면땅을 사왔다고 한다. 건강한 음식은커녕 과자를 먹다니, 같이 살던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들킬까 엄마는 몰래 먹으면서 임신 기간을 잘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껏 내가 과자를 좋아하게 된 것은 엄마 때문(혹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라면땅>은 1971년 롯데공업에서 출시됐는데 지금은 단종되었다.    


종종 가는 중국음식가게는 계산하고 나면 직접 만든 라면 과자를 쥐어준다. 간이 세지 않고 지퍼백에 담긴 투박한 모양새에 태초의 라면땅은 이런 맛이 아니었을까 상상하게 되는 맛이다. 봉지를 뿌스럭대며 한 올 한 올 라면과자를 먹고 있는 아이가 와서 맛보더니 이내 퉤퉤거린다.

“모양도 꼬불꼬불하고 밀가루 맛만 나. 이상해.”

“이거 봐, 별사탕도 있어. 할머니가 어렸을 때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라면과자가 최고 간식이었대.”

라면과자 사이로 반짝거리는 별사탕을 아이 눈앞에 들이대며 라면과자의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사실 나는 라면과자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아이가 라면과자의 전성기 시절을 모르는 것 같아 서럽다. 그 옛날 라면과자를 먹는 엄마에게 내가 이렇게 물었고 그때 들었던 답을 아이에게 하고 있었다.

“그럼 뿌셔뿌셔를 먹어야지.”


아뿔싸, <뿌셔뿌셔>가 있었지. 사라진 줄 알았는데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비슷한 형태로 요즘 아이들 입에 맞는 시즈닝으로 나오고 있었다. 오늘날 식품회사에서 만드는 라면과자는 삼양식품의 <뽀빠이>밖에 없다. 중소식품회사에서 파는 라면과자도 있지만 판매처와 원색적인 디자인 때문인지 ‘불량식품’으로 여겨진다. 제품 뒷면에 식품안전성을 인정하는 해썹(HACCP) 인증마크를 확인할 때면 괜히 색안경을 끼고 본 것 같아 미안해진다. 바삭함과 단짠 간이 보다 강한 수입 라면과자도 있는데 일본 <베이비스타>나 인도네시아 <에낙>이 대표적이다.        


라면과자의 시조새인 <뽀빠이>는 1972년 출시되었는데, 당시 삼양식품 회장인 일본에 갔다가 <베이비스타>를 보고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로 라면과자는 그 시대만의 과자로 끝나는 듯했는데 입맛은 돌고 돈다. 1999년 오뚜기에서 <뿌셔뿌셔>를 내놓았는데 출시 1년 만에 1억 봉지가 팔리며 히트상품이 되었다. 그맘때 문방구 옆 슈퍼에서는 아이들이 벽에서 노란 봉지 <뿌셔뿌셔>를 대고 주먹질을 하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사춘기의 울분을 해소하기에도 딱이었다. 인기에 힘입어 농심 <펀치면>, 삼양 <빠샤빠샤>이 있었으나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다. 라면과자를 뭉쳐놓은 형태로 농심에서 개발한 2001년 <쫄병스낵>은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다     


<뿌셔뿌셔>는 시즈닝의 끝판왕이다. 한상차림이 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시즈닝을 선보였다. 감자, 옥수수맛과 같은 애피타이저용에서 피자, 떡볶이, 불고기, 바비큐, 카레, 짜장맛과 같이 한 그릇 음식용까지 있다. 출시 후 빠르게 단종되었지만 멜론, 딸기맛도 있다. 반찬은 뭐니 뭐니 해도 고기요, 과자 맛에서도 일등은 역시 고기다. 치킨, 바비큐맛이 여전히 잘나간다.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는 잃어버린 맛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보여준 적이 있다. 어느 고등학생 앞 가게에서 밥통에 쪄서 팔던 '목포 쫀드기'를 다룬 적이 있는데 이후로 울산 쫀드기 등 다른 지역 쫀드기까지 소환하며 요즘 간식으로 떠올랐다. 목포에는 이것만 파는 가게가 생겼을 정도다. 사라지는 간식에 마냥 아쉬워만 하고 있었는데 꼭 그럴 일만도 아니다. 우리가 즐겼던 맛은 어떤 형태로든 이어지고 있다. 유행이 다시 오는 주기에 주목한다. 국내에서 첫 라면과자 <뽀빠이> 출시 이후 27년 만에 1999년 새로운 라면과자 <뿌셔뿌셔>가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시 라면과자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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