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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삭 Mar 25. 2024

비행 간식을 고찰하다

간식은 어떻게 육아를 돕는가

둘째가 100일도 되기 전부터 혼자서 미취학아동 둘을 데리고 비행기를 탔다. 이 사실을 들은 지인이 궁상맞다며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 시절엔 본가에 가야 누가 애라도 봐줘서 마음 편히 잠도 자고 빠지기 일보 직전의 팔과 어깨도 구해줄 수 있었다.     


비행일이 결정되면 가장 먼저 꾸리는 짐은 비행기에서 먹을 ‘비행 간식 가방’이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기압 차이로 인해 아이들의 귀가 먹먹해지는데 이때 간식을 먹으면서 그 증상을 없앨 수 있다. 공항 안에서도 얼마든지 간식을 살 수 있다. 제주 공항 내에는 편의점을 비롯해 파리바게트, 앤젤리너스, 롯데리아 등 각종 프랜차이즈 매장이 있다. 평소 계획적인 성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간식만큼은 미리 철저하게 챙기는 이유는 나만의 비행 간식 루틴 때문이다.      


공항 입구에서 남편이 우리를 데려다주고 아이와 나만 남는 순간부터 비행 간식 가방은 열릴 준비를 한다. 등에는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캐리어를 다른 손에는 유모차를 끌면 아이들을 잡을 손이 없다. 수화물을 부치러 가는 길에 수시로 옆과 뒤를 돌아보면서 두 아이들이 나를 잘 따라오는지 확인한다. 공항에서 들어서자마자 쓰게 된 마스크가 불편하다고, 신발 찍찍이가 풀렸다고, 옷을 추슬러야 한다고 칭얼대는 경우가 다반사다. 짐을 부치러 카운터까지 가는 길은 짧으면서도 멀다. 초반부터 이들의 유일한 보호자인 내가 너무 낙심하거나 아이들에게 버럭 화를 내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간식의 도움을 이때부터 받아야 한다. 


아이의 컨디션을 봐가면서 약한 간식부터 꺼낸다. 나의 원픽은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비타민C이다. 약국에서도 팔고 있으니 건강함과 안전성을 (나로부터) 인정받았다. 맛은 비등하나 포장지의 캐릭터는 다양해서 시각적인 만족감이 크다. 뽀로로, 시크릿쥬쥬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동등한 개수로 들어 있다. 애먼 곳에 꽂혀서 본격적으로 짜증을 내려는 아이에게 “어머나, 루피는 네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잖아”라고 말을 걸며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      


비행 간식을 활용할 때는 강도가 약한 것부터 점차 강한 것으로 해야 한다. 강도는 당도, 부피, 아이의 선호도다. 비행 간식이 가장 필요한 순간은 당연히 이륙할 때이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불편한 증상을 말로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비행기라는 공간도 낯선데 귀가 먹먹해지는 이상한 느낌까지 겪으니 많은 아이들이 당황해하고, 이 부분이 울음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이륙 전에 먹는 간식은 이륙할 때 간식의 효과를 제대로 느끼기 위한 빌드업이다. 코스 요리가 가볍게 미각을 깨우는 정도로 시작하는 것처럼 비행 간식 역시 간식 미각 세포에 살짝 노크하는 정도로 시작해야 한다. 처음부터 너무 강도가 센 간식을 내놓으면 아이들은 그다음 간식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들을 잘 이끌기 위해서도 간식의 강도는 초반부터 잘 조절해야 한다. 아이의 컨디션이 난조일 때는 삼보일배처럼 걸음걸음마다 간식을 내놔야 아이가 움직일 수도 있으니 아직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는 가벼운 한 입 거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겨우 짐을 부쳤다고 해도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아직 몇 단계가 더 남아 있다. 캐치 티니핑 목걸이까지 빼야 하는 짐 검사를 거쳤는데 하필이면 탑승구도 제일 끝에 위치해 잰걸음으로 한참을 간다. 설상가상 연결편은 또 지연이라 몇십 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까지 늦어진다. 여기서 끝인 줄 알았는데 비행기가 활주로 끝에 있어 버스를 타야 한단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기다리는 게 힘들지 않은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타박하기 전에 우리가 저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이 간식 가방을 본격적으로 풀어서 다 먹을 수 있다고 아이를 달래자. 아이의 머릿속에 이렇게나 힘든 과정이 '이쯤이면 괜찮다'로 바뀐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믿음이 확실해지면 삶의 순간순간이 풍요로워진다. 


기내에 앉아 본간식을 먹기 전에 활용하기 좋은 또 다른 간식이  <마이쮸>다. <마이쮸>는 캐릭터 비타민에 비해 단맛의 강도도 크고 씹을 맛도 훨씬 난다. 1998년에 출시된 츄잉 캔디 <새콤달콤>이 90년대를 주름잡았다면 2004년에 출시된 <마이쮸>가 그 자리에 올랐다. 둘 다 크라운제과 제품으로 보통 전편을 능가하는 후속작은 드문데 <마이쮸>는 어린이들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는 독보적인 츄잉캔디가 되었다. 맛 종류도 다양하고 스틱형으로 챙겨가면 부피도 적어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마스크를 반드시 써야 했던 코로나 시기에는 아이 입 안에 쏙 넣어주면 모든 울음이 그쳐지는 만병통치간식이었다. 어른도 즐겨 먹을 수 있어 넉넉히 챙기면 좋다. 


드디어 비행기 자리에 앉았다면 본격적으로 과자를 봉지째 들고 먹어보자. 아이가 평소에 편의점에 가면 즐겨 찾았던 갑과자나 스낵류든 뭐든 좋다. 주의해야 할 것은 부피다. 너무 커서 가방에 넣거나 들고 먹다가 쏟으면 앞앞자리까지 승객까지 과자를 밟게 되는 참변이 생기지 않을, 다소 부족하다 싶은 용량이어야 한다. 봉지를 싹 비워야지 남은 과자를 챙겼다가 눅눅해져서 못 먹거나 또는 가방 안에서 쏟아져 못 먹는 사태가 왕왕 일어난다.  


비행기 출입문을 닫고 활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면 슬슬 다른 성질의 간식을 준비하자. 지금까지 간식이 물기 하나 없이 퍽퍽했기 때문에 이때쯤이면 아이는 입 안의 남은 부스러기를 한 번에 쓸어내릴 법한 음료수를 찾는다.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수준 중에서 최대치를 제공하자. 보리차만 먹을 수 있는 연령이면 이날만큼은 뽀로로나 코코몽이 주는(것 같아 더 맛있는) 보리차는 어떨까. 우유를 좋아한다면 딸기나 바나나로 상큼함을 더하고, 주스를 한 컵 정도로 제한했다면 이날은 거하게 한 팩을 쏘자.      


길고 긴 비행 간식의 여정도 끝이 보인다. 비행기가 바퀴를 접고 날개를 펴기 시작하면 <추파춥스> 포장지의 날개를 우리도 펼쳐보자. 귀가 먹먹해지는 증상 완화에는 사탕만 한 게 없다. 그러나 일반 사탕은 영유아들의 경우 먹다가 목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막대사탕은 그런 면에서 안전하고 맛, 재료, 크기가 다양해서 선호된다. 다만 포장지를 벗길 때는 아이 시선의 반대쪽으로 몸을 돌려서 포장지를 까는 것을 추천한다. 포장지 뜯기가 은근히 까다로워 지켜보던 아이가 답답해서 더 울어버릴 수도 있어서다.

 

이번 설 연휴를 앞두고 육지행 비행기를 타려는데 단골식당 사장님을 마주쳤다. 할머니 사장님은 오랜만에 본 첫째가 훌쩍 커 있는 걸 보시고는 놀라셨다. 다짜고짜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빵 가게에서 가시더니 한가득 사주신다. 그것도 모자라 아이들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더니 눈가에 눈물을 훔치신다.

“아유, 그 조그맣던 애가 언제 이렇게 컸대.”

사장님을 따라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진 나 역시 코끝이 찡해졌다. 비행 간식을 이렇게나 챙기게 된 건 그 공간에서 육아를 도와주는 이가 없고 믿을 건  간식밖에 없다고 믿어서였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돌아보니 우리를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왜 아무도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고립시켰을까.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둘째도 만 세 살이 되니 더 이상 비행 간식을 엄격하게 챙기지 않는다. 너희들이 불편한 점을 말해주면 엄마가 바로 도와줄 수 있고, 잠시만 타고 가면 우리가 원하는 곳에 금방 도착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예전처럼 각 단계에 맞춰 간식을 내주느라 가방 안에 손을 넣고 부스럭대지 않는다. 


본가 근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일하러 나선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만원 지하철에 속이 울렁거린다. 가방 안에 이제는 남아도는 비행 간식 <마이쮸> 한 알을 입에 넣는다. 질겅질겅 씹고 있으니 달콤함에 울렁거림도 사라진다. 그 간식이 이제는 나를 위로한다. 잠깐이었을 시간을 영원처럼 여겼던 나를 반성한다. 주변에서 나를 바라봤을 따뜻한 시선과 손길을 알게 모르게 외면했던 게 아닐까.

  

그동안 고마웠다, 수고했어. 

잘 가라. 

비행 간식도 그 시절의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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