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몸인 듯 다른 몸인 듯
부부동반 모임에서 부부 대결이 벌어졌다. 대결 종목은 한 몸 줄넘기. 부부가 마주 선 채로 한 사람이 줄넘기를 돌리면 그 줄을 상대방도 같이 넘어간다. 게임의 취지는 부부는 한 몸과 같아야 한다는 것. 친목 도모가 목적이었지만 이미 마음 저편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학창 시절 육상부, 배구부 제의도 받았고 사회에 나와서도 각종 구기종목 동호회를 거쳤던 내가 아닌가.
한데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라 부부가 같이 해야 했다. 주말에 외출할라치면 서둘러 일도 마무리해야 하고 아이들도 챙겨야 하니 통과의례처럼 사소한 다툼을 일삼았다. 그날따라 가족 구성원들에게 짜증이 역병처럼 돌아서 대차게 서로 짜증을 내고 받아주느라 약속시간에도 한참을 늦은 상황이었다. 모임장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나는 남편에게 불만을 한 톨도 남기지 않겠다는 결벽증으로 마지막 짜증까지 끄러 모아 털어냈다. 그러나 공공의 적 앞에서 아군은 강해지는 법. 다툼은 지나간 일이요, 지금부터는 힘을 모아야 했다.
야심 차게 먼저 하겠다고 나선 부부들을 보니 결코 만만히 볼 게 아니었다. 학교 시절 육상부 선수였다며 팔을 걷어붙인 이들도 서너 번을 넘기지 못했다. 여러 번 시도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열심히 묘안을 찾고 있는 나와 달리 그는 덤덤하게 이 게임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에게 슬쩍 물었다.
“저 게임을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당신에게 맞춰야지.”
순간 일시정지됐다. 이렇게 저렇게 굴리던 머릿속도, 서서히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몸도, 그가 말한 이 문장이 나를 휘감아버렸다. 그게 방법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의 빠르고 화끈한 경상도 방식을 느리고 애매한 충청도인 남편이 따라오지 못하는 거라고, 채근하고 다그치기 바빴다.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저마다의 방법대로 여태껏 살아왔음을 고려하지 없었다. 우리는 각각 완벽한 존재임을 잊고 살았다. 내가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이 기준에 못 미치는 거라고, 잘못되었다고, 이상하다고 손가락질했다. 내가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불완전한 내 잣대를 상대방에게 휘두르기에 급급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됐다. 모임 중에 장신에 속하는 우리를 향해 줄넘기 줄이 짧아서 어렵겠다고 주변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오직 내 몸은 그가 말한 세 구절로 무장되어 있었다. '내가/당신에게/맞춰야지' 마주 선 그가 줄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가 돌리는 줄이 언제 나에게로 올지 모르니 나는 최대한 높이 뛰자고, 그에게 맞추기로 했다. 있는 힘껏 점프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끝도 없이 줄이 계속 돌아갔다. 내가 줄을 돌리고 있나, 그와 나의 다리를 하나로 묶었나. 한 몸인 것처럼 손과 다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새 숫자는 20이 가까워졌다. 이 상황이 신기해서 나는 웃음이 터졌고 이쯤에서 그만하자고 그에게 말했다.
"두 명이 아니라 한 명인 줄 알았어요."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이 의아해하는 말들이 그 어떤 칭찬보다 달콤했다. 그러고서 한바탕 체육활동도 했겠다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쌍쌍바’가 눈에 들어온다. 개수는 하나인데 먹는 사람은 둘인 아이스크림이다. 이 세상에 둘이서 먹으라고 처음부터 만들어진 아이스크림은 없다. 아이스크림 회사 입장에서 판매를 고려해도 한 사람이 하나씩 사 먹어야 좋은 게 아닌가. ‘더위사냥’처럼 둘이서 먹을라치면 가능한 아이스크림도 물론 있긴 있다. 중간 부분부터 반으로 나눠서 먹어도 되고 모자를 벗기듯이 절반 윗부분만 벗겨서 한 명이 다 먹어도 된다. 그러나 쌍쌍바처럼 반드시 두 사람이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다. 쌍쌍바는 혼자 먹으려고 반으로 쪼개지 않고 먹는 게 오히려 더 불편하다. 기어이 혼자 다 먹겠다면 두 개로 쪼개서 각각 한 손에 들고 먹어야 한다.(2018년에 '혼자 먹는 쌍쌍바'가 출시되었으나 '정이 없다'는 의견에 오래가지 못했다.)
쌍쌍바를 반으로 쪼갤 때는 최대한 똑같이 나눠야 한다. 손목에서부터 손끝으로 이어지는 관절의 움직임이 일정하도록 단전에서부터 힘을 줘야 한다. 힘 조절에 실패해서 누가 어떤 것을 먹어야 할지 서로 난감해지는 상황이 생기지 않으려면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을 고이 모아서 쪼개자. 포장지에 하트가 그려져 있는 것은 쌍쌍바를 먹을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사랑'이기 때문이리라. 반으로 나누다가 어느 한쪽이 많이 가져가는 상황이 발생하면 많이 있는 쪽을 내가 먹을 것이냐, 네가 먹을 것이냐로 의가 상할 수도 있다.
부부는 ‘쌍쌍바’여야 했다. 다른 몸이지만 딱 달라붙은 한 몸이기도 했다. 동시에 떨어질 때 잘 떨어질 수도 있어야 한다. 부부가 한 몸이라지만 각자의 고유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내 쌍쌍바의 다른 한쪽을 만난 지 곧 10년이 된다. 결혼 전에도 남매처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육지를 떠나 제주에 정착하면서 더 닮아갔다. 어디에 내놔도 누가 엄마아빠인지 알겠다는 '작은 쌍쌍바'도 둘이나 낳았다. 혼자였으면 버겁기도 했을 인생이라는 삶의 무게를 나눠질 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앞으로 더 감당해야 할 것들도 서로에게 맞춰서 가다 보면 고되지 않으리라.
(이미지출처: 해태아이스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