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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현 Jun 04. 2022

내게 첫사랑은 용기가 필요했어

영화 윤희에게 리뷰


[영화 윤희에게 리뷰] 내게 첫사랑은 용기가 필요했어




1. Information

윤희에게 (한국, 105분, 임대형)

비밀스러웠던 첫사랑의 기억을 가진 평범한 ‘윤희’와 그녀의 앞으로 온 편지를 몰래 읽은 딸 ‘새봄’이 엄마의 첫사랑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안고 떠난 짤막한 여행기 <네이버 영화>


2. Recommendation

첫사랑은 내게 가장 큰 용기가 필요했던 사랑, 첫사랑이 보고 싶다는 건 현재의 나란 인간에게 특별한 힘을 주고 싶다는 뜻.

현실보다 상상 속에서 첫사랑을 더 많이 만나야 했던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3. Appreciation review

윤희(김희애)와 쥰(나카무라 유코)의 감정선을 따라 이동하는 영화 윤희에게는, 그 시절의 미숙했던 나와 너를 떠올리게 한다. 배경은 겨울이고, 주인공은 성숙한 어른이며, 그를 둘러싼 공기는 일관되게 차분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지금의 내가 그 시절로 되돌아가 너와 나를 안아주고 싶을 만큼 크게 일렁이게 된다.

집에서 혼자 마시는 술,

담담한 배경에 그렇지 못한 내면, 감정의 파고가 꽤 높았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쥰의 내레이션은 진실되고 서정적이어서 과거에 둘이 어떤 시간을 나눠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첫사랑을 잊지 못해 그저 그렇게 혼자 딸을 키우며 살아가던 윤희는 딸 새봄의 의지 덕분에 첫사랑 쥰이 지내는 곳으로 여행을 가게 되고, 지나간 시간과 지금의 공간 그 사이를 기대와 회한으로 채우며 여행 일정을 보낸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불과 몇 걸음 앞 사무치는 쥰을 보고도 선뜻 앞에 나서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윤희가 바에 앉아 바텐더에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맛있는 것도 먹고..”라고 말하는 부분은,

윤희가 20년 넘게 얼마나 그 장면을 바라고 꿈꿔왔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기에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꿈으로만 만나던 너를 실제로 만난다면 나는 제일 먼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첫사랑은 현실에 실존하기보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 더 많겠지.


마음의 매개체인 둘의 편지를 보다 보면, 윤희는 그 시절의 쥰을 주위의 여러 사정과 그로 인한 심적 부담감으로 인해 놓친 것으로 보인다. 사랑은 그 감정에 빠지는 것보다 유지하는 데 용기가 더 필요하다. 용기는 상대가 아무리 강렬하게 북돋아준다 해도 결국 나 자신으로부터 기인한다.



쥰을 떠나보내고 지나온 시간 동안 윤희는 결혼생활과 직장생활, 이를 지탱하는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는 듯 무미건조한 심정으로 지냈다. 일본으로의 여행은, 도저히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는 그녀의 자가처방과도 같은 여행이었을 거라 짐작된다.


그녀를 잊지 못했던,

그래서 사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살아진 윤희가 마지막은 용기를 내보기를 영화 보는 내내 바랐다.




4. Postscript

내가 너를 만나기로 할 때
나의 두려움은
어딘가에 툭 얹어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담담하게 툭
그러곤 모르는 거야
내게 언제 그런 게 있었나 싶은 무심함으로 너를 만나고 싶어

그 두려움은 결국 나를 찾아 돌아오겠지만
무심한 시간에
꿈이 아닌 곳에서 너와 마주 앉아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5. blending

영화 ‘그 해 여름’(2006, 조근식)과 책 ‘내게 무해한 사람’(2019, 최은영, 문학동네)을 함께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윤희에게를 보며 영화 ‘그 해 여름’을 떠올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감정을 어쩌지 못해 마치 살에 붙은 것처럼 살아가는 주인공들, 분명 시대와 상황 탓을 해도 될 텐데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더 용기 내어 연인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신의 미숙함을 자책하는 것으로 남은 시간을 보냅니다. 계절이 주는 이미지가 두 영화에서 모두 큰 몫을 차지한다는 점과, 복잡한 서사가 나오지 않음에도 강렬한 경험을 새긴 배우들의 눈빛이 설득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이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윤희에게는 작품 안에서 윤희와 쥰이 어떤 시절을 보냈는지 말해주지 않지만, ‘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된 소설들 중 ‘그 여름’을 통해 그 청춘시절에 대한 상상을 간접적으로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동성의 연애 또는 연대의 이야기입니다.

그중 첫 번째 단편소설인 그 여름은, 18세의 만남에서 21세의 헤어짐까지 두 사람의 몹시 타당한 상황과 감정들이 있어 인물들의 성별에 개의치 않고 ‘도저히 사랑하고 이별하는 데 다른 선택지가 없을’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고향의 모든 공간이 수이와의 기억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곳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 일 년 반 정도였지만, 그 시간의 밀도는 수이를 만나기 전의 십칠 년을 압도했다.”(p25)

이들이 한참 동안은 ‘우리’였지만, 시간이 지나 서로 다른 성격으로 인해 우리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과정이 섬세하게 서술돼 있습니다. 둘 중 어느 한 명의 용기가 부족했다고 해서 그가 내게 해로운 사람이 될 수 없었고, 상대의 감정이 가엾기에 당장 내키는 대로 흐트러지지 않고 상대를 먼저 걱정하는 그들의 조심스러운 마음이 짐짓 더 큰 용기가 아닐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고

다음 리뷰는 영화 ‘락앤롤 보트’ (The boat that Rocked)입니다. 여름이 생각보다 빨리 와서 벌써 좀 지친 것 같아요. 미스터 빈의 각본가가 쓴 ‘보이는 라디오’라 그런지 음악도, 대사도 흥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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