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 리뷰
1. Information
펀치 드렁크 러브(미국, 2003, PTA)
7명이나 되는 누나들한테 들들 볶이며 자란 배리, 뜻하지 않게 신비로운 여인 레나를 만나게 되고 언제나 꿈꿨던 황홀한 사랑을 하려 하는데, 가슴 벅찬 사랑을 방해하는 폰 섹스 악덕업체 일당이 있다. 배리는 그들을 극복하고 일생에 한 번뿐인 사랑을 지속할 수 있을까 <네이버 영화>
2. Recommendation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하고 싶은 사랑이야기
3. Appreciation review
tip.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펀치 드렁크(Punch drunk)의 뜻은 복싱선수와 같이 뇌에 많은 손상을 입는 사람에 나타나는 뇌세포 손상증이라고 한다. 증상으로는 혼수상태, 정신불안, 기억상실, 실어증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목만 봤을 때는, 남자 주인공 배리(애덤 샌들러)가 펀치를 맞은 듯 강렬한 사랑에 빠져 어질어질한 상태가 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분노를 조절하는 데 이미 애를 먹고 있지만 자신의 문제가 뭔지 몰라 도움도 구할 수 없던 삶을 살아오던, 펀치 드렁크 증후군을 이미 장착한 그가 강렬한 사랑의 힘을 받아! 비로소 자신의 분노를 정돈하고 내면 아이를 다독이며 타인을 사랑하게 된다는 표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이미 뇌가 손상된 사람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시 손상을 일으켜 멀쩡하게 되돌려 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본 펀치 드렁크 러브는 = ‘펀치 드렁크 배리의 사랑이야기’이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시각, 청각, 감정적으로 희한하게 표현했다.
처음에 나오는 차량 전복사고를 통해 예기치 않게 일어나는 사건, 사랑에 빠지는 이벤트, 또는 억눌린 분노의 폭발 등 다중적인 의미를 던져주고 시작한다.
뒤이어 멀뚱히 버려진 오르간을 발견하고는 묘한 이끌림에 들고 와봤다. 그리고 그날 의문의 그녀 레나(에밀리 왓슨)도 찾아왔다.
오르간은 배리의 마음에 평화를 주는 장치로 역할하는 듯 보인다. 배리가 미쳐 돌아가기 일보직전에 오르간을 한 번씩 눌러보는 장면이 나온다.
배리는 7명의 여자 형제가 있고, 그녀들은 하나뿐인 그를 가만 두지 않는다. 배리는 엄연히 사업체를 갖고 자기 구실을 하는 듯 하지만 왠지 일을 할 때마다 누나들은 순서대로 배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거기다 대고 시원하게 화 한번 내지 못하지만 그 화는 어디 가지 못하고 배리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만 갔고, 배리는 이따금 분노를 엉뚱한 곳(벽에 주먹질, 유리창에 발길질)에 쏟아내곤 했다. 사실상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누이의 동료 레나가 찾아오는데,
나쁘지 않아. 아니, 살가운 그녀에게 반한 것 같다.
그녀는 차를 임시 주차한다는 명분으로 그에게 우연히 다가온 듯 하지만 실은 배리의 누이를 통해 일부러 접근한, 배리에게 애초부터 관심이 있던 그녀였다. 그래서 첫 만남부터 시종일관 배리에게 따뜻한 눈빛과 미소를 발사한다.
조금은 독특한 남자 주인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배경에서 굳이 모서리를 차지하고 있는 구도의 배리라든가, 예민하게 정리된 마트의 진열대 앞에 서있는 배리, 비행 마일리지를 준다는 경품행사 때문에 푸딩을 지겹게 모으는 행동들을 통해 그의 내면에 있는 불안, 강박, 외로움 등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누이들의 전화를 여러 번 받을 때 그의 얼빠진 눈빛과, 가끔 배경을 잡아먹는 알람 소리 같은 사운드는 상큼하지 못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그 와중에 화면 속 색채들은 서로 어울려 호화스럽게 펼쳐진다.
이 장면들은, 배리의 내면에는 어떤 뜨거운 것이 있고, 그것이 곧 개인의 역사에서 앞으로 웅장하게 펼쳐질 것임을 기대하게 해준다.
배리는 레나가 정말 마음에 드는데, 그럴 때마다 방해하는 많은 것들(회사, 전화, 누이 등)이 있다.
사랑에 빠지는 일이 이토록 힘들지만 그래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것을 표현한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 이 장면이 참 예쁘다. 그녀에게 테이블이 거추장 스러워 보인다.
그녀는 처음 느낌 그대로 그에게 직진하고, 그런 그녀의 반짝반짝한 표정에 그는 어떤 펀치에도 무너지지 않을 풀파워를 장전하는 모양새다.
그녀가 사랑을 바라보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배리의 수치심, 분노와 당혹감, 긴장과 불안을 이미 관계가 시작되기 전에 알고 있다. 조금 궁금하고 이상하지만, 그래도 말없이 호응하고, 그를 인정하며 함께 한다.
누이들에게 들들 볶이는 스스로가 가여워 배리는 폰섹스라는 유료전화서비스를 받으며 자신에게 적절치 못한 보상을 해준 적이 있는데, 중반부터는 이 일당들(매트리스 맨,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그와 그녀의 사랑을 방해한다. 결과적으로 그 일당들은 배리가 자신을 가두던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일당들은 어리숙한 그를 꾀어 카드 비밀번호와 회사, 주거지 등 개인정보를 모두 얻어내 배리에게 지속적인 금전 협박을 하며 돈을 강취한 것도 모자라 레나를 다치게 하기에 이르렀다. 배리는 소심하고 불안한 남자였지만 풀파워를 장전한 이후의 그는 사랑하는 레나를 다치게 한 건 용서할 수 없어 직접 매트리스 맨, 일당의 우두머리를 찾아가 담대하게 선전 포고하였다. 이 선전포고를 위해 감독과 배우가 이제껏 달려왔다.
난 엄청한 힘을 갖고 있어. 너 같은 사람들은 절대 모를 거야.
난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건 네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날 강하게 만들어
영화는 사랑에 대해 만인이 알고 싶어 하는 주제 중 하나, “진정한 사랑은 내게 특별한 힘을 줘요.”에 답을 준다. 확신에 찬 것은 매력적이고, 불안한 영혼들은 그 확신에 한번 더 기대고 싶다. 영화는, 판타지로만 머물 줄 알고 내겐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랑이라는 감정과 그 사랑으로 생기는 힘에 대해 사람들로 하여금 한번 더 기대해도 좋아!라고 확실한 답을 준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은 감독이 독특하게 만들어주어 사랑스러운 영화이다.
4. Postscript
이 영화들을 보면서 당신을 떠올렸어
내게 특별한 힘을 준 당신이지만
난 그 힘을 두려워도 했어
두려운 마음에
우리 소원해지면 어떻게 해?라고 물었을 때
소원해지면 소원 하나씩 들어주며
또 재미있게 지내자던 당신
내게 필요한 확신은 늘 당신의 몫이었지
나의 슬픔과 두려움까지
안고 가겠다는 당신에게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어
5. Blending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는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펀치 드렁크 러브가 있다면, 주의력에 문제가 있는 과잉행동장애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영화 러브 앤 드럭스(미국, 112분, 에드워드 즈윅) 도 함께 추천합니다. 그는 파킨슨병에 걸린 여자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의대를 다니고 있었지만 주의력이 결핍된 탓에 공부를 더 이어가지 못하고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이 된 제이미(제이크 질렌할)는 항우울제 약을 영업하다 26살에 파킨슨에 걸린 매기(앤 해서웨이)를 만납니다. 그도 그녀도 자신의 상태 때문에 타인과 깊이 있는 유대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아 서로의 잠자리 상대로서 먼저 관계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제이미는 비로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알아봐 주는 매기를 보며 스스로 발전 가능성을 발견해가고, 매기 또한 자신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살피는 제이미를 보며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영화는 아주 친절하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어떠한 반전도, 왜곡도 없이 예상 가능한 갈등과 결말입니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그림이 예뻤지만 사이가 어긋나야만 했던 두 배우를 다시 말쑥하게 사랑 영화로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반가웠습니다.
이 영화 또한, 제이미의 고백을 위해 달려갑니다.
맙소사, 자긴 날 다르게 봐줬어. 내 모습 그대로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해 줬어. 그래서 불행히도 난 자기가 필요해.
내가 선택한 거야. 어쩌면 우주 반대편에 우리 같은 커플이 있을 수도 있지. 그쪽은 여잔 건강하고 남잔 완벽하겠지. 하지만 안 부러워. 난 우리가 좋아. 이대로 가.
두 영화 모두 <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에 빠질 수 있어?>라는 우문에, 주인공들이 사랑을 향해 달려가며 현답을 내놓는 영화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