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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하리 May 24. 2019

제1일 ① : 네 식구의 첫 해외 여행 - 설렘, 분주

새벽 4시경에 눈을 떴다. 


다 끝내지 못한 채 눈앞에 놓아둔 원고를 바라보며 망연한 채 앉아 있었다. 이미 어제 모 연구기관의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미 자포자기의 심정이기는 했다. 

과도한 책임감과 부족한 책임감, 욕심 등이 어우러진 결과. 너무 미안했지만 출판사의 담당자에게 사과 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일단 내가 친 사고(事故)는 사고(思考)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4년 만에 가족 여행을 떠나는 날이니까.


아침부터 부산하게 준비를 했다. 이동통신사 홈페이지에서 착신 전환 신청도 하고, 인천공항에서 식당, 커피숍 등 신용카드로 혜택을 볼 수 있는 곳도 알아보고, 이용할 수 있는 라운지도 알아보았다.


이제 8살이 된 큰아이는 4시 20분쯤에 일어났다. 

이 녀석은 12월 22일에 우리 가족이 함께 뉴질랜드로 여행을 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뉴질랜드에서 보물찾기’라는 책을 보고 또 보았다. 

7살짜리 치고는 말을 정확하게 잘 하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큰아이는 그때부터 뉴질랜드 이야기를 계속했다. 

통가리로가 어쩌고, 루아페후는 최근에도 활동한 활화산이며, 마오리족이 어떻고, 샌드 플라이를 조심해야 한다는 등등. 

그렇게 주문처럼 뉴질랜드 이야기를 하더니 오늘도 일찍 일어나 들뜬 모습으로 계속 뉴질랜드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언제 가냐고 물었다. 

2008년에 호주에 갈 때는 그곳이 어디인지도 몰랐고, ‘호주’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여 ‘후주’라고 하던 때와는 정말 많이 달랐다. 그것이 바로 4살과 8살의 차이이다.


아침은 공항에서 먹기로 하고 6시 15분경에 부모님 차에 큰 여행 가방 네 개를 실었다. 타이 항공(Thai Airway, 항공사 코드 TG)은 20kg 이내의 짐만 부칠 수 있다고 해서 집에 있는 체중계로 재어 가며 20kg 이내로 맞춘 네 개의 가방이었다. 

여행 가방이 네 개나 되니 무게도 무게이지만 부피가 워낙 컸다. 우리 차(싼타페)의 트렁크에는 못 실었을 것 같을 만큼이었다. 

공항까지 데려다 주시겠다고 오신 부모님의 차가 커서(베라크루즈) 다행이었다. 겨울 이른 새벽의 찬 공기 속에서 편안하고 빠르게 인천공항까지 간 것은 물론이다.

캠핑카 여행을 할 것이기 때문에 여행가방에는 김치를 포함하여 식재료도 한 가득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3층에 있는 한식당에서 순두부 정식, 사골 우거지, 곰탕 등으로 아침을 먹었다. 

신용카드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곳이라서 주문할 때 이야기했더니 메뉴 하나는 무료였고, 나머지 음식은 총 금액에서 10%를 할인해 준다고 했다. 

아침을 먹은 후에는 커피 전문점에 가서 역시 신용카드의 혜택으로 무료로 커피를 받아서 아버지께 드렸다. 환전을 하기 위해 현금인출기에서 50만원을 찾은 후, 환전을 하러 가기 전에 1층으로 가서 부모님을 배웅했다. 

뉴질랜드는 남반구! 여름이니만큼 부모님 편에 우리의 두터운 겨울 외투를 보내고 환전을 했다. 

또 신용카드를 내밀어서 우대 환율을 적용받아 1NZD(New Zealand Dollar)당 925원인 것을 917원에 환전을 했다. 뉴질랜드 달러로 약 540달러였다. 

3층으로 이동하여 J 카운터의 타이 항공을 찾아가 탑승 수속을 했다. 이코노미 석의 탑승 수속을 기다리는 줄은 매우 길었다. 

내가 혼자 줄을 서고, 아내와 아이들은 옆에 의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기다렸다. 그 사이 아내는 신용카드를 가지고 던킨 도넛에서 무료로 커피를 받아왔다. 


그 사이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울트라 드래고노이드’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집에서 짐을 싸면서 큰아이에게 가져가고 싶은 장난감을 챙기라고 했을 때, 가져갔다가 혹시 잃어버릴까 봐 안 가져가겠다던 장난감이었다. 

큰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아끼는 것’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울트라 드래고노이드가 바로 큰아이가 최근에 가장 ‘아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큰아이는 우리가 여행을 할 28일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모르기 때문에 안 가져가겠다고 한 것이어서 내 판단으로 그냥 내가 짊어진 배낭에 넣었던 것이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인천공항에서만이 아니라 뉴질랜드에서 내내 울트라 드래고노이드를 가장 잘 가지고 놀았다. 


그렇게 기다리는 사이에 우리 순서가 되어 탑승 수속을 했다. 놀고 있던 아이들과 아내를 모두 불러서 항공권을 확인하고, 짐을 부치고 좌석을 배정 받았다. 

우리 일을 처리해주는 직원이 신입 사원인지 무엇을 물어보면 잘 모르는 것도 많았고 일처리도 꽤나 늦었다. 

우리도 오래간만에 비행기를 갈아타며 여행을 하는 것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바로 자신 있게 답이 돌아오지 않아 답을 들어도 믿음이 가질 않았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친절하기 때문에 옆에 있는 다른 직원들한테 물어보며 처리해 주었다. 

좌석 배정을 받고 보니 자리가 3+1이다. 세 명은 붙은 좌석에 앉고, 한 명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떨어진 자리에 앉는다는 것. 

분명히 아시아나 항공에서 표를 받을 때 좌석을 지정했고 둘씩 앉는 것으로 확인했는데 새로 자리를 정하니 좀 어리둥절했지만, 지금 이 공항에서 아니라고 하니 그냥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즐겁게 여행을 떠나는 마당에 따지고 싶지도 않았고, 그것을 확인하려면 아시아나 항공이 있는 카운터까지 왔다 갔다 해야 할 것도 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홍콩에서 오클랜드까지는 네 자리가 붙은 자리라 하여 그냥 그렇게 앉아 가기로 했다. 


짐을 부친 후 출국 수속을 하러 가는 길에 막내 처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행을 떠나는 언니 부부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도 하는 살가운 처제이다. 

처제와 통화를 마치고 출국 수속을 하러 갔다. 

비행기 출도착 정보를 보여주는 전광판의 푸른 바탕과 흰 글씨의 움직임이 가슴을 뛰게 하고 설레게 한다. 이 말을 아내에게 했더니, 사업해야 할 체질이란다. 그건 싫다. 난 돈 많은 백수를 원한다.^^


출국장에 들어서서 새로 산 디지털 캠코더와 디지털 카메라를 신고했다. 

이 신고는 우리가 귀국할 때 면세품을 사서 들어온 것으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인데, 직원 말로는 나중에 문제가 되면 그 물품들을 구입한 영수증으로 갈음할 수 있다고 했다. 

검색대를 통과한 후 출국 심사를 마쳤더니 122번 게이트에서 출국하라고 한다. 그새 뭐가 바뀐 것일까? 

난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면서 세 자리 숫자의 게이트 번호는 들어본 적이 없었고, A, B, C... 이런 기호가 붙은 곳에서 출국하곤 했던 생각이 났다. 

의아해 하며 122번 게이트 표지판을 따라 가다보니 셔틀 기차(Shuttle train)를 타는 곳 표시가 나왔다. 

안내하는 분들한테 물어봤더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경전철처럼 생긴 열차가 왔다. 

그 열차를 타고 이동한 후 두 층을 올라가니 122번 게이트가 나왔다. 

인천공항에 무슨 공사를 했다더니 그 공사가 이런 공사였나 보다. 

4년 만에 인천공항 출국장에 왔더니 비행기 타는 과정이 이리 바뀌어 있다니.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비행기를 가까이에서 보고 신기해했다. 

큰아이는 비행기를 일곱 번째 타는 것이지만 그 전까지는 거의 기억을 못할 테고, 작은아이는 가까이에서 비행기를 보는 것이 처음인 탓이다. 

무척이나 신기해하면서 이륙하는 비행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비행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두 아들을 어르고 달래가면서 화장실에 데리고 갔다 오고 사진도 찍었다. 

물론 비행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작은아이는 4살이라는 나이에 어울리게끔 어떤 상황에서건 비행기를 언제 타냐고 물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게 할 때도, 사진을 찍으려고 타이머를 설정해 놓고 정지 상태로 있을 때도.

비행기 계류장을 배경으로 놀고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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