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도착하기 2시간 전쯤부터 승무원들이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큰아이와 둘째아이는 잠에서 깨 트랜스포머 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고, 나는 입국신고서와 세관신고서를 작성했다.
입국신고서의 숙소란에 ‘Campervan’이라고 쓰니 다시 마음속에 부드러운 파도가 일렁였다.
아내는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김치, 김, 각종 장류 등의 음식물과 식재료를 챙겼는데, 그것들이 무사히 통과될 수 있을지 걱정을 했다.
잘 통과가 되어야 조금 더 편하게 먹는 것을 해결할 수 있을 터인데.
호주도 그렇지만 뉴질랜드도 섬나라인 탓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음식물에 대한 규정이 까다롭다.
섬나라는 생태계가 오랜 시간 동안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주 작은 변화에도 급격하게 무너질 수 있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뉴질랜드에 유럽인들(마오리어로는 Pakeha)이 들어갔을 때, 수많은 마오리들이 죽은 까닭은 유럽인들의 학살 때문이 아니라 유럽인들과 함께 뉴질랜드에 들어간 독감 바이러스 때문이었으니까.
홍콩 시각으로 아침 6시 52분, 뉴질랜드 시각으로 오전 11시 52분에 드디어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10시간이 조금 더 걸린 비행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진짜 멀기는 멀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2004년에 뉴질랜드에 왔을 때는 아시아나 항공이 오클랜드에 취항을 하고 있어서 보너스 항공권을 받아 직항을 타고 왔었는데 이번에는 갈아타고 와서 더 멀다고 느낀 것이다.
뉴질랜드가 서머 타임 제도를 시행해서 한국 시간으로는 오전 7시 52분에 도착한 것이니 집에서부터 꼬박 하루가 걸려서야 뉴질랜드에 도착한 것이다.
마누카우(Manukau) 항을 향해 뻗어 있는 오클랜드 공항의 활주로에 착륙하면서 비행기가 흔들리는데 둘째아이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면 재미있어 하였다.
보통 비행기가 착륙할 때는 비행기 전체가 조용하게 긴장된 분위기인데 둘째아이 혼자 신난다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분위기는 전혀 아랑곳 앉는, 아직 38개월짜리 아기다웠다.
무섭다고 혹은 기분이 이상하다고 보채며 우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비가 왔는지 활주로는 젖어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찾고 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이었고, 거의 꼬박 하루를 편히 쉬지 못했지만 이제 곧 여행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그리 힘들지 않았다.
입국신고서를 쓰는 중간에 둘째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하다가 깜빡 잊고 입국신고서를 다 채우지 않았다.
입국신고서를 다 채우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서 입국심사대에 온 가족이 함께 섰다.
전에 만났던 키위(Kiwi-뉴질랜드인)들과 달리 입국심사대의 직원은 매우 성의 없는 태도를 보였고, 다 채우지 않은 입국신고서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불친절하게 굴었다.
내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친절하기로 소문났고 실제로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내게, 입국심사대의 직원의 태도는 여행의 기분을 살짝 망쳤다.
입국신고서에 음식물이 있다고 쓴 탓에 그냥 통과하지 못하고 검색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의 키위는 아이들에게 너그럽고 장난스러운 태도로 대하면서도 우리의 짐 가방 모두를 열어 보았다. 아내가 깔끔하고 꼼꼼하게 포장을 잘한 탓인지 누가 보기에는 자세히 보지도 않고 무조건 그러는 것처럼 "김치 오케이, 된장 오케이, 고추장 오케이"를 유쾌하게 외쳤다.
우리가 짐을 가져가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이 음식물 반입이었는데, 아내의 세심한 준비와 유쾌한 키위 덕분에 무사히 통과했다.
드디어 오클랜드 공항의 출국장으로 나왔다.
8년 전, 결혼한 지 4개월여 만에 다시 신혼여행을 오듯 왔던 공항에 이제 이렇게 두 아이를 데리고 다시 오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 부부가 결혼하여 이만큼의 시간을 살아왔다는 생각, 우리 곁에서 우리를 정신없게 만드는 두 녀석의 존재감, 이런 생각들과 함께 이젠 넷이서 여행을 왔다는 뿌듯한 행복감 등이 밀려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마우이(Maui) 캠퍼밴 사무실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 안내받은 대로 공항 건물 왼쪽 끝 출구 쪽으로 나갔고, 나는 한국에서 알아봤던 대로 스마트폰을 개통하기 위해 여행안내소(I-site)를 찾았다.
여행안내소를 찾아서 투디그리스(2Degrees)라는 신생 통신사의 유심(USIM)을 2달러에 사고, 선불(Prepay)로 개통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뉴질랜드에서 1위 통신 업체는 보다폰(Vodafone)이지만 유심이 25달러나 되기 때문에 모험을 한번 해 보기로 한 것이다.
직원에게 투디그리스 유심을 달라고 했더니 내가 알아보고 왔던 유심이 아니라 방문자용(Visitor) 유심을 주었다.
그러고는 무엇이라고 말하는데, 밖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어서 마음이 급한 상황에서, 그리고 원래 듣기에는 약한 데다가 8년 만에 뉴질랜드 영어를 들으려니 무슨 말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안내소가 있는 반대쪽을 가리키면서 그곳으로 가서 개통을 하면 된다는 말인 것 같았다.
급한 마음에 알았다고, 고맙다고 말하고는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우리나라처럼 길거리에서 쉽게 투디그리스 대리점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꼼꼼히 모든 절차를 알아보고 또 알아보고 출발했지만, ‘방문자용 유심’이라는 돌발 변수 때문에, 그리고 예상과 달리 통신사 대리점을 거의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나는 일주일간 스마트폰을 개통하지 못했다.
1월 5일이 되어서야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간신히 개통을 할 수 있었다.
짐을 끌고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공항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나온 출구 바로 앞이 마우이를 비롯한 렌터카 업체들의 셔틀 버스를 타고 내리는 곳이었다.
비릿한 바다 내음과 머릿결을 흩날리는 바람이 섬나라 뉴질랜드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아내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에 마우이의 셔틀버스가 한 대 가 버리고 나니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지루해하면서도 자기들끼리 놀고 있었다.
2008년에 호주에 갔을 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아이가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것, 그리고 그 아이 둘이 동성(同性)인 덕에 함께 노는 친구가 될 수 있어서 우리 부부가 때때로 숨을 쉴 틈이 생긴다는 것이다.
드디어 마우이 셔틀버스가 와서 우리 짐을 짐칸에 싣고는 마우이 사무실로 향했다.
인터넷상에서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던 우리의 차이자 집, 모터홈(motorhome)의 실제 모습은 어떠할지 궁금했고, 그 차로 이제 우리 네 가족의 첫 해외여행을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에 흥분도 되었다.
* 공용어로 영어와 마오리어를 쓰는 뉴질랜드는, 마오리어로 아오테아로아(Aotearoa)라고 한다. 아오테아로아는 '길고 흰 구름의 땅'이라는, 뉴질랜드에 딱 맞는 아름다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