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이탈리아 여행 일기 (1) 로마
작년 이맘때쯤 호기롭게 계획했던 여름휴가에 왔다.
뱃속에 갓 생긴 아기, 그러니까 휴가를 떠날 때쯤이면 6개월이 되어있을 아기의 존재는 번외로 두고 코로나로 그동안 다니지 못했던 여행의 한을 풀겠다는 심산으로 멀고 먼 목적지만 고르고 골라 휴가지 리스트를 만들었다. 처음엔 진담 반 농담 반이었지만 뱃속의 아기가 점점 커가면서 이번 휴가가, 그러니까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끼고 늘 계획해 오던 여름휴가가 당분간 아기 돌봄으로 오롯이 쓰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기를 데리고 갈 수 없는 더 먼 곳으로 가자. 아니 아기가 한참 더 커야만 갈 수 있는 곳들로만 추려서 가보자.”
그렇게 이탈리아로 행선지를 바꾸고 아기를 키워냈다. 아기는 어느덧 만 6개월이 되었고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낯익은 얼굴들에 미소를 지어주기 시작했다. 육아 선배들이 모두 입을 모아 “지금이 아기를 두고 여행 갈 수 있는 적기다.”라며 등 떠밀었지만 친정엄마에게 남길 아기 돌봄 인수인계서를 몇 번이나 수정하면서 ‘이렇게 떠나도 되는 걸까?’라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물론 여행 준비는 하나도 하지 못한 채 공항에 도착했다. 라운지에 앉아서도 홈캠을 돌려보며 아기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비행기에 올라서도 아기가 잘 시간에 맞춰 아기가 잠자리에 들 때마다 귓가에 해주는 기도를 올렸다. 좋은 꿈만 꿀 수 있게 해 주세요. 자는 동안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그렇게 로마에 도착했다. 이른 저녁이었지만 후끈한 공기가 한껏 메워진 공항을 벗어나 소매치기의 천국이라는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오며 본 풍경들은 도통 현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눈길 닿는 모든 곳이 모두 3세기 로마제국 시절의 훌륭한 유산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10년 만에 마주한 로마는 놀랍도록 그대로인데 10년 동안의 나는 20대에서 30대로, 대학생에서 회사원으로 그리고 아기엄마가 되었다니.
호텔 근처 테라스가 딸린 식당에 앉아 첫날밤 첫 저녁을 먹었다.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설렌 표정의 여행객들과 어우러져 와인 한 잔, 파스타 한 그릇을 먹고 나니 이탈리아는 어느새 야심한 밤, 한국에서는 아기의 하루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