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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ug 29. 2023

걸어서 피렌체

2023년 여름, 이탈리아 여행 일기 (5) 피렌체

이번 여행 중에 가장 기대가 되지 않았던 그래서 동시에 어떤 준비과정도 없이 도착한 도시. 그저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메우기 위한 선택 정도였던 피렌체는 나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여행자들에게 호평일색인 도시이자 무려 신혼여행 스냅성지가 되어있었다.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도착한 피렌체 중앙역은 오래된 유럽의 소도시 같은 기운이 감돌았다. 가보지 않았지만 상상 속의 베를린 같은 느낌이랄까.


역사 내 간판이 옛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곳. 게다가 호텔까지는 트램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트램이라니. 이름만 듣고는 무슨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기름칠 잔뜩 한 중세시대의 트램인 줄 알고 실망했는데 무려 에어컨이 빵빵한, 어느 대중교통보다 더 현대적인 교통수단이었다.


트램을 타고 둘러본 도시의 풍경은 조금 스산했다. 이탈리아에 도착해서 마주한 유색인종의 비율이 가장 높았고 기온은 40도. 길거리는 유적지인듯한 건물과 현대적인 풍경이 겹쳐 보였다.


피렌체의 이런 ‘이상한 풍경’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배가 됐다. 네모 반듯한 창문과 문이 이어진 전형적인 유럽식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10대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법한 인테리어의 호텔 인테리어가 펼쳐졌다.

@ The Social Hub Florence / 더 소셜 허브 플로렌스

피렌체 중앙역 근처의 오래된 호텔을 뒤로한 채 두 정거장이나 떨어진 이곳으로 예약한 남편의 센스가 돋보였던 곳. 체크인도 체크아웃도 루프탑 바도 룸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젊음의 열기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호텔은 체크인을 한 순간부터 체크아웃을 하는 순간까지 피렌체 안의 또 다른 미래도시 같은 느낌을 주었다.

피렌체는 걷는 도시로도 유명했다. 골목골목 예쁜 풍경이 줄지어 이어졌고, 야경으로 유명한 베키오 다리와 노을로 유명한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약간의 수고로움을 더하면 모두 걸어서 볼 수 있었다. 노을을 보러 간 바로 그날, 무려 하루 3만보를 걸어 피렌체 주요 관광지를 모두 둘러보기도 했다.

@ 베키오 다리
@ 미켈란젤로 광장 / 이탈리아 광장 중 가장 안전한 느낌이었다

노을은 과연 멋있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강가로 내려오는 길에 있던 장미정원도 멋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빙글빙글 돌지 않고 장미정원을 통해 오르내리면 훨씬 짧게 광장에 오를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꼭 이 루트를 이용해 오르기를 권합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무대가 되었던 성당이나 피렌체의 주요 관광지에 방문하지 않았다. 우선 그 장소들의 존재를 겉핥기로 라마 알아차리기 위해 예약했던 피렌체 도착 첫날의 야경 투어를 이탈리아 기차 연착으로 놓쳐버리면서 그저 여행 막바지 무한 힐링을 콘셉트로 피렌체를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한국에서 미리 예매한 우피치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보르게세에서 시작해 우피치로 끝나는 여행이라니.

@ 우피치 미술관

우피치 미술관이 소장한 미술품의 양은 아주 방대해서 당일로 본다면 최소 4시간, 여러 날에 걸쳐 미술관을 둘러보는 방문객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 투어가이드 없이 보기 어렵다는 평이 많아 가장 저렴하고 짧은 투어를 선택했는데 조금 후회했다. 부디 우피치 미술관은 전문 미술 전공자의 가이드를 받으며 둘러볼 수 있기를 추천한다.


그럼에도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을 오래도록 볼 수 있어 좋았고 피렌체의 엄청난 후원자, 메디치 가문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우피치 미술관을 나와 잘못 들어선 골목에서 꽤 맘에 드는 카페를 발견해 그곳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알고 보니 그 길이 델리골목이어서 유명한 샌드위치 집에 긴 줄이 서있기도 했다.

@ ditto Artigianale / 피렌체 카페 추천

피렌체에서 로마 떼르미니를 거쳐 다시 공항으로 왔다. 피렌체로 향하던 기차의 무기한 연착이 다시 한번 벌어질까 걱정되어 부지런을 떨었던 덕에 공항에 4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시내에서 사지 못했던 가족들의 선물도 사고, 포지타노에서 맛있게 먹었던 올리브 오일 한 병을 구한 후 비행기에 올랐다. 언제 또다시 이런 선물 같은 여행길에 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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