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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추 Jan 22. 2021

너희한테는 그렇게 못해줬어

엄마, 왜 아이돌보미야? ④

얼마 전, 한파 속에 내복만 입고 혼자 돌아다니던 아이가 구조됐다. 아이 엄마는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아이 혼자 집에 두고 일하러 나갔다고 했다. 혼자 집에 있던 아이는 잠시 집 밖으로 나왔다가 문이 잠겨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 아이의 엄마는 아동복지법상 유기, 방임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았다. 아이 엄마에게 험한 비난이 쏟아졌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아동 학대에 굉장히 민감한 시기였다. 나는 아이가 방치됐던 것에 화가 나면서도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어려운 상황이 짐작이 되어 안타까웠다.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이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엄마, 엄마도 우리 어렸을 때 우리만 집에 가둬두고 나간 적 있잖아."

"일하러 가야 는데 어쩔 수 없이 그랬지."


엄마는 육아를 하면서도 조금 아리도 살림에 보태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내 최초 기억은 4살 정도 때의 일이다. 낮잠을 자다가 일어났는데 아직 말도 못 하는 동생만 옆에서 자고 있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무서워서 뒷집으로 통하는 문 앞 수돗가에서 아저씨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 이게 실제 있었던 일인지 궁금해서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그 옛날 집 구조가 사실과 맞아떨어졌다. 엄마는 아마 연탄 배달 나갔을 거라고 했다. 아빠가 차린 보일러 가게가 시원치 않자, 엄마가 연탄 배달을 돕고 나선 것이다. 보일러 가게를 정리하고 시골에 있는 아빠 본가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할머니(아빠의 엄마)와 함께 농사일을 다녔다. 엄마는 그때도 나에게 어린 동생을 맡기며 과자 한 봉지 쥐어주고 잘 놀라며 집 문을 잠갔다.


"엄마, 요즘은 진짜 그러면 큰일난다. 진짜. 세상 달라졌지."

"그러게. 나는 너희들 그렇게 못 키웠는데 말이야."


엄마는 스물다섯 살에 나를 낳았다. 그 시절엔 다들 그 나이 때면 아이를 낳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를 위해 할머니(엄마의 엄마)가 산후조리를 도와주며 아이 돌보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할머니는 늦둥이 막내가 태어났을 때도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아기들의 기본 욕구를 해결해주는 것 위주로 가르쳐주셨다. 할머니에게 기저귀는 어떻게 갈아야 하는지, 젖은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씻길 땐 어떻게 해야는지 같은 것을 배우며 엄마는 우리를 키웠다.


“나는 키운다고는 키웠는데. 그땐 몰랐지.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하고. 많이 안아주고 그런 걸 못해줬지.”


먹고사는 게 바빴던 엄마에게는 아이 셋을 그저 아프지 않게 키워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사실 그 외에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몰랐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여기저기 육아 정보가 넘쳐난다. 티브이에서 유튜브에서 책에서 따라가야 할 육아법들이 정말 많다. 양육자들은 하나라도 놓칠 세라 대화법도 배우고 좋다는 체험도 다니느라 바쁘다. 집마다 지능이나 감성 발달에 도움을 주는 장난감과 교구도 한가득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옛날에 엄마가 하던 방법대로 하면 방임이 되어버린다.


"내가 다시 돌아가서 너희들 키우면 좋겠지만, 그러지는 못하니까. 혹시라도 태어날 손지들 위해서 배울라고도 아이돌보미 한 거지. 애들 태어나면 내가 더 잘해줄라고."


내가 아이를 낳기만 하면 무조건 다 키워주겠다던 엄마는 요즘 세상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변화를 준비했다. 손주가 태어나면 예전처럼 하면 안 되니까, 시대에 맞춘 양육 기술을 장착하고 싶었던 거다. 엄마는 아이돌보미 보수교육 때 다양한 놀이들을 배운다. 나와 있을 때면 내 앞에서 보란 듯 실습해본다. 그러다가 종종 중얼거린다.


"너네들 자랄 때 이렇게 해줬으면 참 좋았을 텐디."


엄마는 더 잘 키우지 못한 걸 미안해하지만, 엄마는 엄마 방법대로 우리를 잘 키웠다.  엄마는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을 먹일 때면 우리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착하고 예쁘고 건강하게 크렴"하고 말하곤 했다. 생일날에 떡을 해주면 잘된다고 해서 해마다 손수 시루떡을 쪘다. 물건을 사면 동생과 나눠먹으라고 꼭 하나만 사줬다. 나눠먹는 게 익숙한 우리는 별로 싸우지 않고 자랐다. 요즘 애들은 가지고 있는 게 넘쳐서 자기 것밖에 모른다며 열변을 토하는 엄마는 여전히 훌륭한 양육자다. 덕분에 나는 모난 데 없이 잘 자랐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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