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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추 May 24. 2020

네가 애 안 낳는다고 하니까.

엄마, 왜 아이돌보미야? ①

  "엄마, 우리는 애 안 낳으려고." 

  

  학창 시절 그려 본 나의 30대 중반은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서 딸, 아들 하나씩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었다. 30대 중반이 되면 교과서에 나오는 가족처럼 나는 아들 손을, 남편은 딸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있을 줄 알았다. 어느덧 서른여섯, 지금 내 옆에는 내 손을 잡아 주는 딸도, 아들도 없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 그리던 모습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할 때쯤 나는 꽤  남자를 만나게 됐다.


  나는 무얼 하든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꼼꼼히 따져보는 편이다. 내 나름대로 내세울 만한 이유가 없으면, 누가 뭐라 해도 잘 움직이질 않는다.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금방 만들어 냈다. 같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다. 동거를 하는 것도 괜찮았지만, 결혼을 하면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 가족 수당 등 작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결혼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시가가 멀고 명절에 불려 다닐 일이 없다는 이유가 한몫했다. 결혼할 이유가 생기자, 나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며 그와 결혼을 강행했다.     


 하지만, 애를 낳을 이유는 결혼 5년 차인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 나는 남편과 둘이서 충분히 행복하다. 여기에 아이가 생긴다는 상상을 하면, 잃게 되는 것들만 떠올라 미간이 찌푸려진다. 육아야 남편이 분담한다고 하더라도 임신과 출산은 온전히 여자의 몫이다. 일정기간 동안 일도 하지 못할 거고, 건강도 악화될 거고, 좋아하는 여행도 가지도 못할 거였다. 아이를 낳으면 차원이 다른 행복이 찾아온다는 출산 경험자의 말도 와 닿지 않았다. 나에겐 이미 다양한 차원의 행복이 존재했다. 일을 통해 성취감을 얻는 행복, 백패킹 가며 자연을 가까이하는 행복, 책을 읽으며 새로운 생각을 얻는 행복. 아이를 통해 행복을 얻겠다고, 나머지 행복을 빼앗기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는 이런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직장도 탄탄하겠다. 왜 애를 안 낳아. 육아 휴직도 되고 뭐가 문제야.”

  “엄마, 난 육아 휴직도 싫어. 계속 일 하고 싶어.”

  "아니, 왜? 내가 다 키워줄게. 너는 낳기만 해."

  "엄마가 왜 키워 줘. 그게 문제가 아니야. 우리는 지금도 행복해. "     


  엄마는 우리가 아이를 키울 여력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내가 아기를 낳기만 하면 당장 시골에서 올라와 애를 키워주겠다고 했다. 손주를 얻으려는 엄마의 제1 전략은 '너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 낳기만 해라'였다. 엄마가 하도 매달리니, 내가 불효를 저지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아주 살짝 들기도 했다. 하지만, 황혼육아를 시키는 건 오히려 엄마를 고생시키는 꼴이지 않는가. 내가 꿈쩍 않자 엄마는 전략을 바꿨다. 두 번째 전략은 '앞으로 후회한다' 전략이다.     


  "지금 젊으니까 괜찮지. 나중에 나이 들어 봐라 적적해서 어떻게 사냐."

  "뭐, 애가 보험이야? 나이들 것 대비해서 낳게."

  "나중에 애 갖고 싶으면 어떡하려고. 그땐 낳고 싶어서 못 낳잖아."

  "나이 들어서 정말 애를 원한다면, 입양할 거야."

     

  엄마는 자꾸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말을 했다. 이 전략은 다른 사람들과 발맞추어 가는 걸 강요했던 기성세대의 전형적인 자극 전략이다. 나는 이제 그런 것에 이골이 났다. 그저 여자는 교대 가서 선생질하다가 결혼하는 게 최고라는 그 말을 이미 충실히 따랐다. 더 이상은 그런 프레임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도 내가 넘어가지 않자, 엄마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가부장제 카드!   


  "애를 안 낳으면 네가 안서방네 대를 끊기게 하는 거잖아."

  "엄마, 무슨 조선시대야? 대이야기가 왜 나와. 그리고 사실 안서방이 나보다 더 애 안 갖고 싶어 해."     


  남편도 옆에서 거들었다. "맞아요, 어머니. 제가 더 적극적으로 낳지 말자고 했어요." 역시, 가부장제 전략에는 가부장제로 맞서는 게 답인가 보다. 여자는 남자의 부속품이라는 엄마의 가부장적 고정관념 덕분에, 남편이 아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엄마는 그 뒤로 더 이상 나에게 출산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 나이에 손주도 없으면, 나는 무슨 재미로 산다냐.”

     

  엄마는 손주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당신도 작고 예쁜 손주를 안아보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남편하고 죽고 못 사는 것도 아니고, 자식들은 이미 품을 다 떠난 외로움을 손주로라도 달래고 싶은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엄마에게 자식이 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니 다른 자식한테 손주를 기대해 볼 만하건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둘째는 아예 결혼할 생각이 없었고, 막내는 늦둥이라 아직 어렸다. 우리 집에서 막내만이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를 거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이제 겨우 대학생이 된 그였다. 그러니까, 엄마가 손주를 보는 일은 적어도 10년은 기다려야 했다.



      

 “엄마, 왜 아이돌보미 시작했어?”

 “네가 애 안 낳는다고 하니까.”      


  엄마는 아이돌보미를 하게 된 첫 번 째 이유로 내 비출산을 들었다. 손주 보고 싶은 마음을 아이돌보미로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돌보미를 하면 돈도 벌고 아기도 볼 수 있으니 엄마 입장에서 1석 2조 인 셈이다. 엄마는 채원이라는 아이를 아이돌보미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돌보고 있다. 돌이 되기 전부터 봤던 채원이는 이제 어린이집에 다니고 말을 곧잘 하는 다섯 살이 됐다. 채원이는 낯을 많이 가리는 아기라 집에서 아이돌보미를 구할 때 애를 먹었다고 한다. 새로운 사람만 보면 울어 젖히니 아이돌보미 입장에서는 다루기 힘든 아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 우리 엄마는 처음 만날 때부터 울지 않고 잘 따랐다. 


   세 자식들은 모두 타지에 나와 있고, 아빠는 퇴임 후에 본인이 하고 싶었던 꿈을 펼치느라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채원이다. 엄마에게 채원이는 손주나 다름없었다. 길가다가 아기 물건을 보면, "에고 귀여워라, 이거 채원이 하면 예쁘겠다."하고 채원이 생각을 한다. 돈을 잘 쓰지 않는 짠돌이 엄마 지갑을 열 정도로 채원이를 무척 아낀다. “채원이 사진 보여줄까?” 엄마는 나를 만날 때도 채원이 사진을 자주 보여준다. 이제 막 걷기 시작했을 때 모습, 밖에 산책 나갔을 때 꽃이랑 찍은 사진, 잠들어 있는 사진 등등. 나도 옆에서 채원이가 커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엄마, 채원이 없으면 어쩔 뻔했어.”

  “그니까. 나도 그래. 그냥 내 손주 같아. 예뻐."

  "다행이다, 엄마. 나 애 안 낳은 만큼, 육아에 들어갔을 정성을 엄마한테 쏟을 게. 엄마한테 잘할게" 

  "말만 들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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