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아이돌보미야? ②
할아버지는 고모네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이제 막 낯선 땅 군산에 발을 내디딘 할머니와 4남매 또한 고모네에 신세를 졌다. 당시 고모는 자전거 점포를 꽤 크게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전거 점포를 돕고 고모네 식구들에게 밥 해주는 일을 했다. 엄마네 식구들은 엄마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독립을 할 수 있었다. 작은 단칸방이었지만 눈칫밥을 먹지 않아서 좋았다.
엄마에겐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언니는 늘 집에 누워만 있었다고 한다. 돈이 없었던 탓에 따로 병원에 다니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늘 아픈 언니를 옆을 지켰다. 어느 날 엄마가 일어나 보니 언니 옆에서 할머니가 울고 있었다. 언니의 얼굴이 유독 하얬다. 지게꾼 아저씨가 와서 언니를 훌러덩 메고는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어디 멀리 땅에 묻었다고 했는데 엄마네 가족들은 그곳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자식 하나가 죽었지만 할머니는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 사이에 막내가 태어났고, 또다시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 자식이 생기지 않도록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 했다. 할머니는 생선장사며 튀밥 장사며 할 수 있는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하기 시작했다.
"이제 네가 밥해먹어야지." 할머니가 바빠진 만큼 장녀가 되어 버린 엄마에게 집안일이 돌아갔다. 엄마는 10살 무렵부터 밥을 해 먹고 동생 둘을 돌보며 지냈다. 엄마보다 4살 위인 오빠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무를 해오거나 기찻길에 떨어진 석탄을 주우러 다녔다. 여름이면 저녁에 아이스크림 장사를 나가기도 했다. 엄마도 12살 무렵부터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농작물을 받아 왔다. 토마토 밭에 나가 일을 도와주고 토마토를 받아오는 식이었다.
일이 없는 날에는 막냇동생을 업은 채로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고 팔방 놀이했다. 언젠가는 실컷 놀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가게에서 눈깔사탕 하나를 몰래 쏙 집어 든 적이 있다. 엄마는 뒤에 업은 동생을 신경 쓸 틈도 없이 냅다 뛰었다. 어떻게 알아챘는지 주인아주머니가 멀리서 쫓아왔다. 엄마는 집으로 얼른 들어가 이불속에 숨었다. 아주머니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나오라고 소리쳐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할머니에게 '뒤지게' 혼났지만, 엄마는 할머니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했다.
그렇다고 엄마가 부모님이 어서 일을 끝내고 집에 오기만을 바란 건 아니다. 할머니는 집에 돌아오면 늘 엄마에게 저녁거리를 사 오는 심부름을 시켰다. 자식이 넷이나 있는데도 할머니는 꼭 엄마를 불렀다. 며칠 분량을 미리 사두면 좋으련만, 번 돈이 얼마 되지 않으므로 꼭 한 끼 분량 정도만 사 올 수 있었다. 엄마는 매일 같이 심부름을 갈 수밖에 없었다. 불만 가득한 얼굴로 집에서 나오면 옆집에서도 친구가 같은 표정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옆 집도 심부름은 꼭 딸을 시키는 모양이었다.
엄마가 아무리 떠올려 보려고 해도 어린 시절 부모님과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없다. 엄마에게 부모님은 집에 없거나 심부름을 시키거나 둘 중 하나였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컸다. 그냥 그렇게 다들 사니까, 원래 그런 건 줄만 알았다. 엄마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은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어른들 없이 집에서 지내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엄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바빠서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얼마나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