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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추 Aug 19. 2021

나한테도 기다려주는 친구가 생겼다!

여덟 살의말

  겸이는 첫날부터 눈에 확 들어왔다. 아니 귀로 먼저 들어왔다는 표현이 맞겠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분명 가까이서 말하는 것 같았는데,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니 뒤쪽에 앉은 밤톨 머리 학생이었다. 딴딴한 볼이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계속 소리가 나왔다.  

 “하하하. 선생님 봐봐.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어? 나 그거 아는데. 그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거 봤어요.”

 겸이 목소리는 곧바로 공기를 가로지르며 내 귀에 꽂혔다. 귓속뼈까지 울리는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른 학생들의 고자질 소리까지 들렸다. 

 “선생님, 겸이가 저한테 욕했어요.”

 “선생님, 겸이가 저를 밀었어요. 

 “선생님, 겸이가 큐브 혼자 다 가지고 놀라고 해요.” 

  겸이는 양보를 몰랐고, 수틀리면 거친 욕을 하거나 폭력을 쓰기도 했다. 나는 만만치 않은 어린이를 만났구나 싶었지만, 그보다 겸이가 가진 장점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겸아, 수학 시간에 집중해서 듣는구나. 고마워."

  "겸이가 발표를 자주 해주니까 선생님이 수업할 맛이 나."

  애석하게도 내가 하는 말은 겸이의 귀에 가 닿지 않는 것 같았다. 1학기가 다 지나가도록 겸에게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제풀에 지칠 때쯤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인사하고 나가려던 겸이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숙제 거리를 깜박하고 안 가져갔단다. 책상 서랍을 뒤적이면서 수학익힘책을 찾았다. 그때 문밖으로 향하던 한 친구가 멈춰 서서 겸이에게 말했다. 

 “겸이야 천천히 해.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응. 고마워!”

  겸이가 선뜻 고맙다는 말을 한 것도 놀라웠지만, 나를 매료한 것은 그다음 말이었다. 

 “와, 나한테도 기다려주는 친구가 생겼다!”

 겸이는 원래도 살짝 내려간 눈이 입꼬리와 붙을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여전히 거친 목소리였지만 이번엔 달콤함이 묻어났다. 내 귀에도 술술 들어왔다. ‘기다려주는 친구’라는 말이 닿았을 때는  

  "겸아, 기다려주는 친구가 생긴 게 좋아?"

  "네. 기다려주는 건 진짜 친하니까 그런 거잖아요."

  이후로 겸이는 조금씩 달라졌다. 쉬는 시간에 “선생님 겸이가”로 시작되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기다려 주는 친구가 어떤 의미길래 겸이가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 


 누구나 기다려본 경험이 있다. 봄이 오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오기를. 여기서 ‘오다’의 주어는 ‘나’가 아니다. 내 바람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타자가 오는 행동이 꼭 필요하다. 나는 그저 기다릴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기다릴게”라는 말은 단순한 수동 표현이 아니다. 내가 상대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상대가 오기를 바라고 있으므로,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은 자연스럽게 내 기쁨으로 연결된다. 또한 상대는 누군가의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행복으로 차오른다. 서로에게 행복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인 셈이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겸이의 말처럼 '진짜 친해야만' 가능하다. 

 겸이는 기다려주는 친구를 통해 자신도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는 겸이에게 기회를 줬고, 겸이는 자신이 기쁨이 되는 순간을 맛봤다. 이 어마어마한 일이 어린이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저 이런 장면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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