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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추 Jun 11. 2020

엄마, 우리 레시피 교환하자

프롤로그

  내 나이 서른여섯. 나는 아직도 엄마에게 반찬을 받아다 먹는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지는 8년이 넘었는데, 내 식탁에는 엄마의 손길이 가득하다. 마늘종 장아찌, 멸치 볶음부터 갓김치, 파김치, 무김치, 묵은지 등 각종 김치 까지. 어느 날은 분명히 내가 차린 밥상인데 밥 빼고는 엄마가 해 준 반찬들로만 차려있었다. 문득 내 밥상이 부끄러워졌다. 우리 엄마는 올해 60대에 접어들었다. 그래, 요즘 나이 60이면 아직도 한창인 나이다. 그러니 더더욱! 엄마의 가장 젊은 시절을 자식들 뒷바라지하는 데에 쓰게 만들고 싶지 않다. 올해는 반찬 독립을 하리라 다짐했다. 


  반찬 독립을 위해 한창 새로운 반찬 만드는 재미에 빠질 무렵이었다. 직장 동료들과 점심시간에 수다를 떨다가 반찬 이야기가 나왔다. "저는 이제 엄마한테 반찬 안 받으려고요." 어머니가 아프시거나 돌아가신 동료들은 화들짝 놀라며 만류했다. "아니, 왜 그래. 그냥 먹어. 지금 안 먹으면 또 언제 먹게 될지 몰라. 해주실 때 많이 먹어 둬." 내 귀는 왜 이렇게 얇은 걸까.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 엄마도 내가 맛있게 먹는 거 좋아하니까. 엄마가 나한테 해줄 수 있을 때까지는 나도 날름날름 받아먹어야지.'


  지난 어버이날, 엄마가 병원 진료 때문에 서울에 올 일이 생겼다. 엄마가 집에 다녀가고 나면 맛있는 반찬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나는 흑심을 품고 엄마에게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매달렸다. 하지만 엄마는 막내네 집으로 향했다. 얼마 전에 독립한 막내가 엄마가 해준 반찬이 먹고 싶다고 했단다. 엄마를 모시는 데에 실패한 나는 엄마를 보기 위해 막내네 집으로 향했다. 집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막내는 작은 원룸에 살았는데, 온 집안이 엄마가 가져온 반찬거리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는 겨우 마련한 빈 공간에서 식재료들을 열심히 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세상에, 뭘 이렇게 많이 샀어. "

  "안 그래도 시장에서 여기까지 이거 다 들고 오는 데 너무 무거워서 아이고야, 어버이날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 싶었다."


  엄마는 손은 여전히 분주히 움직인 채로 웃으면서 말했다. 좁은 방에서 파를 다듬고, 멸치를 볶고, 장조림을 하고. 어느새 엄마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간단하게만 한다던 엄마의 말이 무색하게 4시간 정도 흘러서야 다섯 가지 반찬이 완성됐다. 늦은 시간에 퇴근해 집에 도착한 동생도 놀란 기색이었다. "엄마, 장조림만 하는 거 아니었어?"


  막내가 엄마가 해 준 장조림이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엄마는 다섯 가지 반찬을 뚝딱 해냈다. "넌 왜 엄마한테 반찬을 해달라고 해서 엄마 고생시키냐." 나는 동생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엄마가 지난번에 보내 준 반찬 다 먹었냐고 해서, 다 먹었고 장조림이 맛있더라고 했을 뿐이야." 동생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아차! 나도 그랬었지. 엄마가 반찬 필요하냐며 물어보면, "응, 엄마 한 거 있으면 보내주면 좋지."라고 대답하곤 했었다. 그때도 엄마는 이 고생을 했겠구나 싶었다. 분명 있던 반찬을 주는 게 아니라, 나에게 주려고 반찬을 만들었을 거다. 물론 엄마야 자식들 먹는 거니까 힘든 내색 안 하고 뿌듯해 하지만, 나는 우리 엄마가 그런 노동을 할 시간에 조금 더 쉬었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일주일 내내 일하는 엄마다. 한동안 사그라들었던 반찬 독립 의지를 불태웠다.


   "이번엔 정말이야, 기필코 반찬 독립을 하고 말겠어!!!"


  나중에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 생각나지 않겠냐고? 당연히 생각나겠지. 하지만, 엄마의 음식을 엄마가 없는 동안에도 해 먹을 수 있다면? 처음에 결심한 반찬 독립은 그저 엄마에게 손 안 벌리고 나 스스로 반찬을 해 먹어야겠다는 뜻이었는데, 점차 방향이 달라졌다. 내가 말하는 엄마 밥상 독립은 이런 거다. 엄마가 없어도 엄마가 해준 밥을 먹는 것처럼, 엄마를 생각하며 오래오래 곱씹을 수 있는 것. 엄마가 알려준 비법대로 고사리나물을 해 먹으면서 엄마와 고사리 꺾던 추억을 생각하는 것. 엄마가 제일 잘하는 강된장을 나도 똑같이 해보면서, 엄마의 땀방울을 생각하는 것. 그러니 엄마의 밥상으로부터 독립해야 오래도록 엄마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엄마로부터 온전히 받기만 하는 건 싫었다. 나도 엄마에게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나는 엄마처럼 오래 먹을 수 있는 반찬을 만드는 데에는 취미가 없지만, 요리에 있어서는 꽤나 진취적이라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것에 잘 도전한다. 나만의 레시피를 개발하기도 한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엄마에게 직접 요리를 해드릴 기회가 없지만, 내가 즐겨 먹는 요리를 엄마가 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일 것 같았다.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 레시피 교환하자, 어때?"

  "뭐라고?"

  "엄마가 잘하는 거 나한테 알려주고, 나도 엄마한테 알려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 해보는 거지. 그리고 어땠는지 이야기 나누고. 왜 있잖아, 교환 일기장처럼 우리는 교환 레시피를 쓰는 거지."

  "그럴 듯한데? 그래 하자."


  그렇게 또 나는 엄마와 자주 통화할 거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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