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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추 Jun 25. 2020

세상 모든 엄마가 될 거야

프롤로그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출산한 또래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비출산은 나에게 많은 자유를 주었다. 결혼 전과 후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행을 언제든 떠날 수 있었고, 친구를 만나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내 관심 분야의 모임도 유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내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경력 단절 없이, 착실하게 내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 내게 아이가 없다는 점은 내가 하는 일에 있어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선생님, 애 낳아보셨어요? 애도 안 낳아 보셨잖아요."

  

  그렇다. 내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의 교육방식에 불만이 쌓인 학부모에게 공격하기 좋은 빌미를 주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 정말 내가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그 입장을 몰랐던 걸까?' 하는 생각에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이 질문에 대답하다 보면, 내가 휘말릴 것 같아 화제를 재빠르게 전환했다. 그 뒤로 또다시 그 말을 듣는 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해야겠다고 결론 내렸다. "육아와 교육은 다릅니다. 저는 학교에서 육아가 아닌, 교육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작년에 교직생활 처음으로 1학년을 맡았다. 1학년을 맡은 지 한 달이 겨우 지날 무렵, 한 아이가 다가오더니 옷에 오줌이 묻어서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했다. (1학년 경험이 많은 선배 교사들로부터 여벌 옷을 꼭 준비해 두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가정에 미리 연락해서 속옷까지 준비해두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아이는 알아서 잘 입고 왔고, 입었던 옷은 가방에 잘 정리해서 넣게 했다. 그런데 방과 후에 해당 보호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00 이가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고 들었어요. 바지는 아직 바닥에 앉아서 갈아입은 아이라, 더러운 화장실 바닥에 앉아서 갈아입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아차 싶었다. 혹시 여기서 '선생님이 아이를 안 키워 봐서 모르시나 본데'라는 공격이 나오면 내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멘트로 냉정하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저는 교육을 하는 사람인지라 그것까지 책임지기엔...?" 아니, 너무 무책임한 말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엔 정말 내가 생각이 짧았다. "아, 그렇네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네요. 속상하셨겠어요." "그러게요 선생님, 저도 아이를 키워보니까 애들이 그렇더라고요. 다른 아이들도 혹시 이런 일이 있을 땐 다른 편한 장소를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 전화드렸어요." "네, 그래야겠어요. 좋은 방법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전화는 훈훈하게 끝이 났다.    


  나는 그동안 5, 6학년 담임만 해왔다. 2차 성징에 들어가는 청소년기 아이들만 가르치다가 화장실 사용하는 방법부터 가르쳐 줘야 하는 1학년 아이들을 맡으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청소년기야 내가 경험했던 것들이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때의 경험을 살려가며 지도하면 됐지만, 초등 1학년 때의 기억은 전혀 없다. 그 시절에 내 몸 움직임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했는지, 내가 관심 있는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모른다. 1학년 담임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나는 올해 다시 1학년 담임에 도전했다. 작년에 경험을 해 본 덕분에 많이 능숙해졌다. 1학년 어린이들은 선 그리기가 잘 안된다는 것, 공을 위로 던지는 게 잘 안된다는 것, 자기가 몇 번인지도 잘 까먹는다는 걸 이제는 잘 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건지, 젓가락질할 때 어떤 손가락으로 고정시켜야 하는지, 책을 가방에 넣는 방법도 가르쳐 주고 있다. 1학년 담임을 하다 보니 교육과 보육이 분리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1학년 담임을 하는 동안에는 "저는 교육을 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이 방패가 되어 줄 수 없다. 


  어린이의 발달과정을 잘 살펴야 하므로 애를 낳아보고 아이를 키워 본 보호자들과 소통할 필요가 있었다."00 이가 젓가락질을 엄청 잘하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잘하나요?" "그게요 *** 젓가락이라고 있는데요. 3단계로 분리되는 건데 어렸을 때부터 그걸 썼어요. 하나씩 떼면서 쓰다 보니까 지금은 잘하더라고요. 어렸을 때 쓰던 거 있는데 지도에 필요하시면 보내드릴까요?" 이제는 아예 보호자님들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내가 모르는 부분을 인정하고 나니 보호자님들 앞에서 배움의 자세로 전환됐다. 더 나아가 나도 엄마의 입장에서 서보고 싶어 졌다. (학교에서 보호자의 역할은 대부분 엄마가 담당하지만, 그런 의미에서의 엄마가 아니다. 단지 남성인 아빠의 입장은 굳이 생각해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난 적극적으로 엄마가 되어보기로 했다. 놀라지 마시라. 갑자기 출산 욕구가 생겼다거나 입양을 결정한 건 아니다. 간접 경험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나를 낳아준 우리 엄마, 내가 만나는 학생의 엄마들, 소설과 영화 속 엄마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엄마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그들이 내뱉은 말에 담긴 의미들을 찬찬히 들여다볼 생각이다. 엄마가 되기를 포기한 나는, 오히려 세상 모든 엄마가 되어 볼 수 있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럴 수도 있구나' '저럴 수도 있구나'하며 다양한 엄마의 모습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장점을 살려, 엄마의 말들을 모을 생각이다. 엄마들의 말을 수집하는 것. 새로 찾은 내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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