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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추 Sep 08. 2020

애기들이 참 예뻐

엄마, 왜 아이돌보미야? ③

"채원이가 제일 예뻤는데, 채원이 동생 생기니까 또 갸가 예뻐 죽겄어."


엄마가 3년 넘게 돌보고 있는 채원이에게 동생이 생겼다. 채원이네는 갓 태어난 채원이 동생도 엄마가 돌봐주기를 원했다. 원래 엄마는 오전 시간에 다른 집 아이들을 돌보다가, 채원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오후 3시 무렵부터 채원이네 집에 갔다. 채원이 동생을 돌보기 위해서 엄마는 오전 시간도 비웠다. 이제는 아예 채원이네 집에만 나간다. 그동안 많은 아이들을 돌봤지만 엄마의 1순위는 늘 채원이었다. 그렇게 엄마에게 예쁨 받던 채원이도 동생에게 밀리고 말았다. 첫째로 태어나서 동생들에게 질투심을 느끼며 자란 나는 채원이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채원이가 알면 서운하겠다. 원래 둘째가 더 예쁘다며? 그런데 엄만 진짜 엄마도 아니면서 왜 갸가 예쁘대?"

"원래 내 나이 되면 어린 애기들이 그렇게 이쁜가 벼. 손주 볼 나이가 돼서 그런가."

"응? 그런가?"

"다들 그렇게 얘기하던디? 다들 애들이 예뻐 죽겄댜."


여기서 엄마가 말하는 '다들'은 수많은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엄마의 '다들'은 4명 정도 되는 어울림 친구들이다. 아프고 나서 조리사 일을 그만둔 후, 엄마는 집에서 쉬는 법 없이 농촌기술센터에 다니며 이런저런 기술들을 배웠다. 출장요리, 폐백, 압화 등을 배우며 만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다섯이 모여 '어울림'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었다. 어울림은 엄마 나이 또래는 열에 아홉은 한다는 등산 모임으로 시작했다. 산에 다니다 보니 서로 잘 맞아서 곧 여행 모임으로 확대됐다.  


엄마에게 전화했을 때 주변이 좀 떠들썩하다 싶으면 부동산에 있는 거다. 어울림 친구 중 한 분이 부동산을 운영한다. 부동산은 위치상으로도 적당할 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모이기 좋은 곳이다. 어울림 사람들은 심심하면 거기에 모여서 수다도 떨고, 음식도 나눠먹고 여행 계획도 짠다. 엄마 삶에서 아이돌보미 다음으로 즐거움을 선사하는 곳이다. 


엄마는 나에게 어울림 발 소식이 세상 전부인양 전달하고는 한다. 그러니까 엄마 말은 어울림 친구들이 하나같이 손주 볼 나이가 되어 아기가 예쁘다고 하니, 세상 사람들 누구나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거다. 엄마의 말을 조금 더 옮겨 보자면 이렇다. 나이 먹으니까 아기들이 더 예뻐진다. 자식들을 키울 때 예쁘긴 했지만 이렇게 까지는 아니었다. 엄마 또래는 대부분 20대 초중반에 아이를 낳았으니, 본인들도 어려서 자식 낳고 키우는 데도 벅찼다. 이제는 먹고 살만 하니까 여유가 생겨서 애들이 더 예뻐 보인다. 


엄마 말을 듣다 보니, 할머니들의 손주사랑을 과학적 근거로 풀어낸 글*이 떠올랐다. 어울림 친구들과 엄마는 모두 완경기를 경험했다. 완경**은 더 이상 직접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자신의 유전자를 번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게 아니다.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어린 손주를 양육하는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완경기가 지난 할머니가 자손을 번창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할머니가 양육을 함으로써 손자들이 무사히 어른으로 성장하는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즉, 고령 여성이 위험한 출산 하느니 안전하게 손자를 양육하는 것이 가족 공동체에게 이로운 것이다.


그런데 잠깐! 이 글 내용은 순전히 자신의 유전자를 일정 정도 가지고 있는 친손주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가 예뻐하는 채원이나 채원이 동생이나 본인 유전자는 0.01%도 섞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엄마는 뭐가 그리 애들이 예쁘다는 걸까. 


"웃을 때가 예쁘지. 울고 떼를 쓸 때는 미워지다가도 웃는 모습 보면 금세 마음이 사르르 녹아. 안 보면 생각나고 보고 싶더라. 가만히 있으면 웃는 얼굴이 떠오르고 주말에 쉬었다가 월요일에 가면 더 큰 것 같고 예뻐."

"진짜 손주 있었으면 보고 싶어서 앓았겠네."


어쩌면 자기 손주가 아니더라도 예뻐하고 잘 키우려고 하는 우리 엄마는 인류 공동체를 번성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돌보미를 기꺼이 하려는 사람들은 혈연 가족 공동체를 넘어선 인류애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어마어마한 일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쓴다.



*장대익,「음매 내 새끼」,『조선비즈』, 2015.04.25.

**여성의 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주는 폐경이란 말 대신 완경이라는 단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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