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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킴이 Mar 07. 2024

[추모글]나는 대한민국의 힘없는 공무원입니다.

글쓰기에 앞서 세상을 달리하신 김포시 공무원분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제 퇴근 길에 뉴스를 보다가 악성 민원에 시달리신 김포시 공무원분께서 생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 또한 몇 년 안되는 공직 생활 속에서 다짜고짜 전화해서 소리치는 민원인, 말꼬리 잡으면서 계속 비꼬고 괴롭히는 민원인, 앞 뒤 전후사정은 듣지도 않고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며 면전에 대고 욕설, 고성을 시전하는 민원인을 겪으며 여러번 면직의 고비를 넘겨왔기에, 이 소식이 더더욱 나 자신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분들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공무원들이 하는 게 뭐가 힘드냐고, 내 세금 받으면서 일하는 것들이 이런거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맨날 동사무소 가면 직원들 다 놀고 있는데, 왜 월급 받냐고. 

그런데요, 아무리 세금 받고 일하는 공무원이라고 해도 인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닌 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와 함께 일하는 많은 공무원 동료분들께서는 민원인께서 힘든 사정이 있다면 도와줄 방법을 찾고, 어려운 문제를 겪고 계시면 해결 방안을 찾으려 노력하는 그런 공무원분들도 계십니다. 쌓여 있는 업무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입직할 때의 초심을 지키시는 분들도 정말 많아요. 그런데 그런 분들 중에 시간이 지나면 보통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분이 대다수입니다. 왜그럴까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민원인분들을 최선을 다해 돕는다 해도 이따금씩 들어오는 악성 민원을 받다보면 이 짓이 정말 부질없어지거든요. 아무리 월급 받고 하는 일이지만, 그 월급에 사람의 인격을 모독할 수 있는 항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데, 왜 다른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에는 그렇게 서슴없이 행동하는 지 정말 수없이 묻고싶어집니다. 

민원처리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화날 수 있죠, 시스템이 안되어 열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경우처럼 도로 공사로 인해 차가 밀리니 힘들어 짜증이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람을 괴롭히거나 인격을 모독하면 안되는 거잖아요. 남의 집 귀한 자식이, 내 피를 전부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자식이 생을 달리할 만큼 그렇게 괴롭혀서는 안되는 거잖아요. 사람이니깐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비단 저와 함께 일하는 공무원 동료 분들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고객 서비스를 담당하는 모든 분들께서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들이 고통받을 때마다 매일밤 멍든 마음으로 그 힘든 시간을 지켜보고 계시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제발, 본인의 감정이 상한다고, 분이 안 풀린다고 다른 사람의인생을 벼랑 끝까지 내모는 행위는 멈춰주세요.

그리고 이 글을 끝마치며 저는 대한민국 민원 시스템의 변화와 각성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남기겠습니다. 악성민원에 대한녹취로 공무원들에 대한 신변 위협이 과연 해소될까요? 칼 들고 들어오는 사람, 청사에 신나를 뿌리는 사람들이 정말 그 녹취 하나에 근절될 것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밑도 끝도 없이 욕설하고 사람을 괴롭히는 분들이 과연 녹음하나 한다고 달라질까요?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가 없다면, 이번에 겪은 마음 아픈 일은 계속 반복될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에 유능한 공무원들을 계속해 사지로 몰아넣고 싶은 게 아니라면, 반드시 이 시스템은 변화해야 합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 한켠이 아린 이번 일을 겪으며, 돌아가신 공무원 동료분과 그 유가족 분들께, 한없는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면감각이상이라는 진단을 받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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