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대학생의 주저리 주저리
나는 현재 대학생이지만, 대학 교육이 본래의 목적을 잃어간다고 생각한다.
학점에 목숨을 거는 학생들, 일단 졸업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듣기 싫은 수업과 하기 싫은 공부를 강제로 한다. 해외 대학과 달리 출석이 성적에 미치는 영향도 엄청나서 그저 시체처럼 강의실에 앉아만 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변한 것은 이름뿐인 듯하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전문적 지식을 얻으려면 분야의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야 했으며, 얻고 싶은 정보를 얻기 위해 몇십 권의 책을 탐독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는 내용이 있을 때, 인터넷에만 검색을 해도 빠른 시간에 명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전달해 준다. 유튜브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눈 앞에 등장해 "무료로" 경험담을 들려주며, 조언까지 전한다.
세상은 변했다. 지식 전달의 수단으로써 대학은 경쟁력을 잃었다.
1972년, 리드 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한 스티브 잡스는 필수 과목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는 학교의 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듣고 싶은 과목의 수업에만 들어갔다. 이때 들을 가치가 없는 수업들을 위해 부모님이 비싼 학비를 낸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 1학기만 수강한 후 리드 대학교를 중퇴하였다.
하지만 잡스는 리드 대학교를 떠나지는 않았다. 퇴학 후에도 수업을 청강할 수 있도록 조치를 받았고, 그 후에도 18개월 동안 학교에 머물며 여러 강의를 자유롭게 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그중 흥미를 보였던 캘리그래피 강의가 애플이 만든 "트루타입 폰트" 초석이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처럼 자퇴를 하라는 것이 글의 요지는 아니다. 다만 본인의 전공에 불만을 갖고 졸업장을 따야겠다는 압박감에 치여 사는 학생들이 있다면, 정말로 듣고 싶은 수업을 들어보자.
그리고 그 문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내가 스페인어를 배운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당시에 나는 전역하고 세계여행을 준비하며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은 이랬다.
"우리 학교에 스페인어과가 없다면, 다른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 되지 않을까?
외국어에 있어 국내 최고의 교육기관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닌가?"
무턱대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전공수업을 청강하기로 마음먹는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학 중인 친구에게 부탁하여 스페인어과 원어민 교수님의 이메일을 알아냈고,
수업을 들어도 괜찮겠냐는 요청을 드렸다.
" 본인 수업이 좋다고 청강을 하겠다는 학생을 뿌리치는 교수님이 얼마나 될 것이며,
설령 안 된다고 거절당하면 어때? 내가 잃을 건 하나도 없었다. "
그렇게 한 학기 동안 외대에서 수업을 들었으며, 수업이 없는 날에는 혼자 공부하기를 반복했다. 수업 자체가 도움이 된 부분도 있지만 정기적으로 매주 수업에 참여해 학우들을 만난 것이 큰 동기부여가 되었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교수님께 직접 물어볼 수 있어 좋았다.
바뀐 환경을 원망하고 탓하기보다,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열정적으로 덤벼 들었던 24살의 나를 돌아보며,
다시금 능동적인 학생이 되리라 다짐해 본다.